21
그 시각.
용인 동부경찰서가 보이는 근처 한 골목에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승용차에는 늦은 시간인데도 운전석에 한 사내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체 자고 있었다.
이때였다.
주차관리라는 완장을 찬 한 사내가 다가가더니 운전석 유리창을 두드리며 말했다.
“갈 겁니까? 주차 할 겁니까?”
그때서야 운전석의 사내는 모자를 팽개치고 바르게 앉더니 창문을 열었다. 그는 정형사였다. 밤새 잠복을 한 듯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새집처럼 부석거렸다. 주차관리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러자 정형사는 주머니에서 신분증 꺼내 보이며 말했다.
“근무 중입니다.”
그때서야 사내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수고하십니다. 무슨 사건이라도 났습니까?”
정형사는 대답 대신 도로 중간쯤에 자리한 카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월광(月光) 카페 언제 오픈합니까?”
주차관리인은 정형사의 손가락을 따라 유심히 보더니 싱겁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영업 중인데요.”
“그래요!”
정형사는 재빨리 운전석 차문을 열고 나와 카페를 주시했다. 주차요원 말대로 영업 중이었다. 얼마 전에 화장실 가면서 볼 때까지만 해도 셔터가 내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주차관리인은 이런 정형사가 미덥지 않다는 듯이 덧붙였다.
“저 카페는 관공서를 상대로 점심 장사를 해요. 시골이다 보니 아침부터 커피 마시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요. 그래서 보통 10시에 열어서 공무원들 퇴근 시간에 맞춰 문을 닫아요.”
그리고 그는 주차영수증을 꺼냈다. 그건 계속 주차를 하려면 주차 증을 끊으라는 제스처였다. 정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차요원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고 시간을 기재한 다음 내밀었다.
“공무 중이라 시니까. 야간주차비는 면제하고 지금 시간 11시 15분부터 체크합니다.”
“고맙습니다.”
정형사는 주차 증을 받아 차 앞 유리창에 놓고 문을 닫은 다음 카페 쪽으로 걸어갔다. 카페 앞에 다다른 정형사는 유리창 너머로 안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주인인 듯한 중년 여성이 카운터에 앉아 조간신문을 보고 있었다.
기다려야 했다. 마냥 기다려야 했다. 형사들의 숙명처럼…….
그러나 기다림도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마냥 기다리는 거고, 두 번째는 만남이 약속된 기다림이다. 확실한 것은 두 기다림 모두 만남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게 성사되었을 때 모두는 즐거워한다. 왜냐면 자신의 목표가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정형사는 들어갈까 하다가 망설였다. 그건 자신의 목적은 차를 마시러 온 게 아니라 오동호의 흔적을 찾는 거니까...... 그는 주위를 둘러 봤다. 마침 건너편에 분식점이 보였다. 그는 발길을 옮겼다.
행복분식점은 보기와는 달리 홀이 넓었다. 역시 손님은 없었다. 문을 열자 차임벨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위장 장갑을 낀 채 주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습관처럼 낡은 쟁반에 물 컵을 올린다음 생수를 받아 다가오며 말했다.
“뭘 드릴까요?”
“김밥 두 줄에 어묵 1인분만 주세요.”
아침을 거르고 보니 이 정도는 먹어야 할 것 같아 평소보다 넉넉히 시켰다.
그러자 아줌마가 물 컵을 내려놓으며 다시 물었다.
“원조김밥으로요?”
“네.”
확실한 메뉴는 모르지만 정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는 가져온 쟁반을 옆구리에 끼며 말했다.
“이제 개시라 시간이 걸릴 테니 저기 신문 보고 계세요. 곧 대령할 게요.”
정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 역시 고개를 조아린 다음 주방으로 들어갔다. 정형사는 가리킨 신문을 들고 카페가 잘 보이는 창문께로 다가가 앉았다. 카페는 변함이 없었다. 주차관리인 말대로 점심때가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정형사는 신문을 펴들었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그건 <월곡 저수지 살인사건>이란 타이틀 때문이었다. 신문 타이틀의 골자는 이러했다.
<월곡 저수지 살인사건 초등수사 미비로 피해자 사고 막지 못함>
<경찰, 관할 문제로 피해자 비극 초래.>
정형사는 깜짝 놀라 휴대폰을 꺼내 단축 다이얼 4번을 눌렀다. 단축번호 1번은 어머님이고 단축번호 2번. 3번은 나중에 결혼하면 정하려고 비워뒀다. 그리고 4번은 최반장이고 5번은 박형사다.
신호는 계속 가는 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아침신문을 대한 서장이 수사과장과 수사반장을 호출해 진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
“똥개 개자식!”
정형사는 자신도 모르게 탁자를 쾅! 쳤다. 무슨 일이라는 듯이 주방에서 아줌마가 쳐다봤다. 정형사는 재빨리 표정을 바꾸고 웃으며 말했다.
“모.....모기가.....”
그러자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것들도 동면을 하나 봐요. 봄이면 정확히 기어 나와요.”
정형사도 맞장구쳤다.
“우리 아파트도 그래요. 지하실에 약을 쳐도 통로를 타고 기어오나 봐요.”
“그러니까 말에요. 그렇다고 가게에 약을 뿌릴 수도 없고..... 아무래도 돈이 좀 들긴 하지만 그걸 사야겠어요?”
“그게 뭔데요?”
“초음파 모기퇴치기라고 충전해서 켜기만 하면 고것들이 싫어하는 초음파가 나와 머리가 아파 죽어버린다고 하던데요.”
“효과는요?”
“글쎄요. 옆 가게에서 사서 쓰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던데요.”
“그래요. 그럼 저도 그걸 사야겠네요.”
“그러세요. 그게 더 경제적일 것 같아요.”
하며 아주머니는 느슨해진 위생장갑을 잡아당기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정형사는 신문을 접고 창문 넘어 카페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나 여전히 손님은 들지 않고 주인인 듯한 중년 여인이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하는 건가. 아무리 수사의 정점은 잠복이라고 하지만 슬슬 짜증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내내 뒷북친 꼴이니 더욱 그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