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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부지는 예상외로 주변보다 높아 사주경계가 확실했다. 위로는 주차장이 보였고 아랫부분은 노숙자들의 아지트가 한눈에 보였다. 주변은 텐트 치는 데 지장 없게 땅이 잘 골라져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듯 듬성듬성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대로 아지트를 옮긴 게 분명했다. 정형사는 노숙자의 말대로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은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퇴근시간이 지나서인지 비어 있었다. 정형사는 주위를 꼼꼼히 둘러보았다. 입구에는 한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막사 같은 초소에 주차장 일거수일투족을 들어다 볼 수 있는 CCTV화면이 여러 개로 분할 된 채 모니터에 가득했다. 입구를 막고 있는 차단봉은 황색 불을 줄줄이 밝힌 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초소 벽에는 현재 상황을 알리는 전광판이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자동화로 입. 출입 통제가 확실했다.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초소에 다가서자 경고음이 울렸다. 이어서 말이 흘러나왔다.
통제구역입니다. 물러서 주세요.
정형사는 깜짝 놀라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자 더 이상 경음은 울리지 않았다. 정형사는 뒤쪽으로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컨테이너 박스로 향했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작은 창문이 사방으로 나있었다. 그러나 커튼이 처 있어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붕 네 귀퉁이에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물러 서 있어야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냥 최선책이라면 근처에 잠복해 있다가 그가 나타나면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정형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왔던 길로 발길을 옮겼다. 그건 어두워지는데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잠복할 수가 없어 경찰차 서 앞 공터에 세워 두었던 차를 몰고 와 안에서 잠복하자는 거였다.
편의점에 들려 요깃거리와 음료수를 사가지고 주차장으로 돌아 왔을 때는 어둠이 내려앉아 온통 어두웠다. 다행히 주차장 유도등이 밝아 어렵지 않게 매표소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절차는 다른 유료주차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들어서자마자 시간이 기입된 주차증이 나왔다. 정형사는 빼들고 컨테이너 박스와 가까운 쪽에 주차했다. 그리고 시트를 입구와 컨테이너가 보일 만치 눕히고 길게 누웠다. 저녁 요기를 하고 누울까 생각했지만 입맛이 없어 콘솔박스에 밀어 넣었다.
시간이 흐르자 주위는 주차장 외곽을 비추고 있는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존재했다. 간간히 들리던 노숙자들의 발악에 가까운 노랫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초승달이 희미하나마 자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거였다.
정형사는 초승달을 올려다 보였다. 순간 언젠가 잠복할 때 라디오로 들었던 초승달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오동나무 가지 끝에
초생달을 걸었던 밤에
마음을 주고받던 님
약속은 철썩 같았다
누가 먼저 돌아섰나 그리움을 지우고
세월은 우리 사이 멀어지게 했지만
오늘밤도 너를 닮은 초생달
또 떠오르면
그날 다시 생각나 사랑 다시 생각나
두 눈에 이슬 젖는다.
노래 가사가 절절해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거 같았다. 그래선지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려 자신의 18번이 되었다.
정형사는 아직 미혼이다. 어느새 삼십 중반에 들었지만 이렇다 할 계획도 없다. 말은 형사라는 직업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라 고는 하지만 그건 핑계였다.
자신에게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순경 시절 순찰 중에 한 여대생이 치한한테 봉변을 당하는 것을 발견하고 퇴치해준 게 계기 되어 사귀게 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루어 질 수가 없었다. 애석하게도 동성동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헤쳐 나가보려 했지만 양쪽 집안의 반대가 극심해 하는 수 없이 접었다. 진정으로 사랑했는데......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인척하고는 결혼할 수 없지 않는가.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정형사는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사랑은 여기까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서 중매도 들어왔지만 그녀를 결코 잊을 수 없어 거절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초승달을 좋아했다. 그 이유는 달이 자신에게 윙크를 하는 것 같아서란다. 자세히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은 그녀와의 상처가 어느 정도 잊혀 지긴 했지만 저 달을 볼 때면 은근히 생각난다. 그래서 그 생각을 지우려고 일부러 그날의 날씨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체크했다. 하지만 형사라는 직업이 녹녹치 않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초승달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없어 차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하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어 물었다.
개천가의 밤은 고즈넉했다. 그냥 그렇게 고요의 포로가 된 체 잠들어 있었다. 오직 희미한 달빛아래 보이는 건 정형사가 연기를 빨아 마실 때마다 반짝이는 담뱃불뿐이었다. 그건 마치 외로운 반딧불이 같았다.
오동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피로와 졸음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언제 허를 찔릴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자연적인 현상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 그는 누군가 차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밖은 서서히 밝아 있었다. 출근차량 한두 대가 이미 정차 되어 있었다.
재차 차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좌석 호크를 당겨 쳐다보니 그는 뜻밖에도 벙거지 모자였다. 차문을 내리자 그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띨방을 만났나요?”
고개를 흔들자 그는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지금 빨리 동부서 맞은 편 첫 번째 골목으로 가보세요.”
“거긴 왜요?”
“점심 때 쯤 차를 마시러 올 줄 모르니까.”
“그런데 아직 6시 밖에 안됐는데.....”
“지금 가지 않으면 주차하기 힘드니까 미리 가서 짱 박혀 있으라는 거예요.”
“그렇게 주차할 곳이 없나요?”
“아니오. 평소에는 그렇게 많지 않는데. 오늘 군내 방범요원 교육이 있어 차가 몰릴 테니까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 주차장을 많이 이용해요. 경찰서 앞이 환하게 보여서요. 더군다나 형사님께 말한 그 카페도 잘 보여요.”
“아네. 허지만 그걸 어떻게?”
“거참, 내가 뭐랬소. 우리는 용인 보안관이라고.....”
그리고 그는 윙크와 함께 서둘러 가라며 손짓을 했다. 정형사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 곧장 주차장 입구로 향했다. 백미러를 보니 그는 그 자리에 붙박이로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주차비 계산을 하고 그가 말한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한편 돌아 섰으리라 믿었던 벙거지 모자는 정형사의 차가 보이지 않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 주고받더니 이내 끊었다.
벙거지 모자 말대로 그 주차장은 요지에 있었다. 경찰서 정문은 물론이고 문제의 카페도 정면으로 보였다. 정형사는 우선 요기를 하기로 했다. 저녁에 사다가 콘솔 박스에 처박아 둔걸 먹으려는 것이다. 저녁에 먹으러했지만 입맛이 없어 넣어 두었었다. 정형사는 요깃거리 빼 살펴보았다. 날씨가 차갑다보니 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입맛이 되살아나지 않아 도로 넣고 의자를 눕혔다. 잠이라도 충분히 자두자는 심산이었다. 현재로서는 먹는 것보다는 그것이 더 컨디션 조절에 보탬이 된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대폰을 꺼내 알람을 맞춰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형사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소리가 그의 잠을 도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