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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손님! 시키신 음식 나왔어요!”
그러나 정형사는 탁자에 엎드린 채였다. 분식집 주인은 이런 손님은 처음 보겠다는 듯이 가져온 음식 쟁반을 옆자리에 두고 다시 어깨를 흔들었다. 그때서야 정형사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을 하시기에 인사불성으로 자요?”
“아네. 형삽니다.”
정형사는 재빨리 옷매부새를 고치고 바로 앉았다.
“어쩐지 피로가 쌓여 보이더라니까.”
하며 옆자리에 두었던 음식쟁반을 가져다 앞에 두었다. 정형사는 고개를 조아리고 나무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입맛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망설이자 주인아줌마가 쳐다보며 말했다.
“입맛에 안 맞아요. 그래도 우리 용인에서는 맛 집으로 통하는데......”
“아네.”
정형사는 균형 있게 썰어진 김밥하나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구수한 참기름 냄새가 입안에 퍼졌다. 그리고 좌우로 씹었다. 별미였다. 야채 향과 어우러지는 게 씹을수록 맛이 났다.
“어때요?”
아주머니는 자신 있게 물었다. 정형사는 대답대신 엄지 척을 해보였다.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손님들이 몰려 올 테니까. 마저 준비해야지.”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카톡이 울렸다.
카톡 왔숑!
아주머니가 앞치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봤다. 그리고 그녀는 무릎을 치며 말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오씨! 주문을 깜박 잊었구먼. 빨리 싸 넣어둬야지.”
하며 그녀는 서둘러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형사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 사이 그녀는 홀이 보이는 좌대 앞에 서더니 정형사를 보며 말했다.
“왜요? 어묵 국물 좀 더 드려요?”
그러나 정형사는 고개를 흔들고 김밥 한 개를 들어 입안에 넣고 옴질거렸다. 아주머니는 살짝 웃어 보이고 능숙하며 김밥을 말았다. 정형사는 그녀의 행동을 살펴보며 김밥과 어묵을 먹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오 씨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걸려서 였다.
가져온 음식을 다 먹고 물을 마실 즈음에 주인아주머니가 가방과 김밥이 든 검은 봉지를 가지고 홀로 나왔다.
순간 정형사는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의경과 노숙자로부터 들었던 고급 컴퓨터 가방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 눈썰미도 대단했다. 그녀는 김밥봉지를 가방에 넣고 쳐다보며 말했다.
“왜요? 잘 아는 가방이에요?”
“아....아니요. 저도 저런 가방하나 가졌으면 해서요. 수납공간도 많아 뵈고.....”
정형사는 얼렁뚱땅 얼버무리고 가방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왜냐하면 아주머니가 가방을 열 때 노트북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정형사의 눈초리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왜요? 욕심나세요?! 명품이라고는 하던데......”
“그렇다면 꽤나........”
그러자 그녀는 가게 밖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마침 주인이 저기 오네요. 직접 물어 보세요.”
순간 정형사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창밖을 주시했다. 건너편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검은 복장의 한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알 수 없었다. 정형사는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출입문 여는 소리와 함께 그가 들어섰다. 정형사는 잽싸게 그의 손목을 틀어잡았다. 그러자 그가 놀라 소리쳤다.
“이거 왜 이러세요?!”
순간, 정형사 손목에 힘이 빠졌다. 그는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아무리 남녀구분하지 않는 프리섹스 패션시대라지만 이건 너무한 듯 싶었다. 정형사는 정중히 사과한 다음 계산을 하고 분식점을 나섰다. 그러나 그녀들의 탄성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 저치 뭐예요?
- 형사라고 하던데…….
- 아무리 그래도 평범한 시민과 범인은 구분할지는 알아야죠.
그들의 탄성은 정형사가 카페 앞에 다다를 때까지도 계속됐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여자가 말했다.
“저치 여기 자주 오는 사람이에요?”
“아니 나도 오늘 처음 보는데. 우리 서에 근무하는 형사들은 거의 다 아는데........”
“그래요.”
“그건 그렇고 오 씨는 어디가고 아가씨가 왔어?”
“급히 볼일이 있다고 저 보다 찾아오라던데요.”
“그래.”
“돈은 여깃어요.”
하며 여자는 주인아줌마한테 돈을 건네고 가방을 들쳐 매고 출입문을 나섰다.
거리는 복잡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북새통을 이뤘다. 정형사는 카페 출입문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카페와 분식점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분식점의 그 가방이 마음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눈여겨보았는데 인파가 몰려들자 순식간에 보이지 않았다. 입구 쪽으로 다가가며 유심히 살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정형사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카페 안을 유심히 살폈다. 그 사이에 벌써 서너 팀이 들어 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정형사는 팀별로 유심히 살폈다. 그때 그는 말로만 들었던 두 사람을 보았다. 출입문 쪽 창문을 뒤로 하고 앉은 사내와 검은 모자를 눌러 쓴 사내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오동호와 기자가 틀림없었다. 순간 정형사는 출입문 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들어서지 않고 잠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왜냐하면 체포영장도 없는데 어떻게 접근할 것이었다. 자칫 틈을 보였다가는 기자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되니까......... 그리고 다음은 오동호가 왜 기자를 만나냐는 것이다. 그것도 수차례나........ 그렇다면 그에 대한 다큐라도 만들고 있다는 건가? 그것도 가능했다. 그가 지금껏 살아가는 과정을 보면 아픔의 연속이었으니까. 아무튼 결단을 내려야했다.
들어가기로 했다. 형사들의 근성인 맨 땅에 헤딩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들어가 손님을 찾은 척하다가 만약에 아는 사람이면 우연을 빙자한 접근이고,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실수를 빙자하는 것이다. 조금 치사하긴 하지만 일부러 넘어져 그에게 피해를 입혀 사과하는 형식으로 꼬리를 무는 방법이다.
안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웅장했다. 중앙 벽에 악성 베토벤의 데스마스크 대형사진이 걸려 있고 고음반이 여기저기 장식돼 분위기를 자아냈다. 정형사는 다시 한 번 곁눈질로 그들을 살폈다. 순간 그는 쾌재를 불렀다. 오동호는 초면이지만 상대편 기자가 놀랍게도 똥개 견기자였기 때문이다.
정형사는 쇠뿔도 단김에 뽑더라고 다이렉트로 다가서며 소리쳤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견 기자님 아니세요!”
그러자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저....정 형사님이 여긴 어떻게?”
정형사는 청하지도 않았지만 오동호 옆자리에 앉았다. 그건 창문 쪽에 앉은 오동호를 가둬 놓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오동호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벌떡 일어서더니 바지춤을 만졌다. 그러자 정형사가 잽싸게 말했다.
“화장실 가시게요?”
그는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형사는 별수 없었다. 자리를 비껴줘야 했다. 정형사가 일어나 자리를 비껴주자 그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 화장실 쪽으로 갔다. 정형사는 그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고 쳐다봤다. 견기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정형사의 눈치를 읽고 말했다.
“뭘 그렇게 쳐다봐요? 차 안 시키고.”
정형사 역시 차분한 표정으로 바꾸고 말했다.
“아네. 커피요.”
“여긴 무슨 일로?”
“약속도 까먹으셨더군요.”
“그 기사요. 뭉그적거리기에 그럴 의사가 없다고 보여서요.”
“그래도 하루 빌미는 주는 것 아니오?”
“하지만 협상이라는 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요. 용인서 수사과장님 성화가 이만저만 아니어서.......”
“그러면 정과장님고도?”
“양다리는 언제나 50%의 확률을 가지는 것이라서 나야 손해날 거 없죠.”
“하지만 정과장님도 타격이 있을 텐데요.”
“거참,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요. 정과장 정면 돌파를 뻔히 알면서......”
그 순간 말문을 잃고 말았다. 그의 좌우명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교환 교육을 갔을 때 정과장은 분명히 말했었다.
- 나의 좌우명은 무소처럼 거침없이 가라! 야! 그게 바로 우리 형사들의 사명이기도 하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될 것 같아 정형사는 정 과자님 가르침대로 정면 돌파로 마음을 정했다.
“저 양반! 오동호죠?”
그러나 견기자는 예상과는 달리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형사는 기세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을 다그쳤다.
“오동호 와는 어떤 사이죠?”
그러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무슨 사이긴요. 우린 그저 제보자와 기자 사이일 뿐이에요.”
“무슨 목적으로요?”
“거참, 목적은 무슨 목적..... 인생을 송두리 체 빼앗긴 슬픈 피해자가 펜의 힘을 빌리자고 해서 동의한 것뿐이요.”
“그래서 복수의 힘을 보태시겠다.”
그러자 그는 버럭 화를 냈다.
“이 양반이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구먼. 이 사람아! 저 사람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금치산자야.”
“그래서요?”
“그런 자가 어떻게 복수를 꿈꾸겠냐고?!”
“그렇긴 하지만 대리 복수도 있잖아요?”
“이거 너무 나간 것 같은데요.”
“왜요?”
“그를 도왔다간 다칠게 뻔 한데 누가 금치산 자 말을 듣고 돕겠냐고? 정형님 같으면 하겠어요.”
“없다고만 할 수 없죠. 온라인 복수라는 것도 있고..... 최첨단 장비도 활용할 수 있고...... 더 확실한 것은 활빈당을 자처하는 인간들도 있을 거고?”
“정 형사님 지금 소설 쓰는 거요? 기승전결도 없이?”
“요즘은 하도 급변하는 시대고 보니..... 어디 그뿐이에요. 상식에 어긋난 짓들도 많이 하잖아요. 범죄사실이 확연히 들어났는데도 억지로 일관하는 인간들 말이요.”
“그만 둡시다. 나 그런 것 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으니까요?”
견기자는 더 이상 시간 낭비는 않겠다는 듯이 말문을 끊고 화장실 쪽을 쳐다봤다. 정형사 역시 그 시선을 놓지 않고 그 쪽을 주시했다. 그동안 등한시 한 건 아니었다. 잠시 눈을 돌린 건 그의 가방이 그의 자리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사건은 어떻게 돌아가는 거요? 오동호 씨에게 관심을 돌렸다는 건 그 만큼 진척이 됐다는 건데?”
역시 신문기자다운 날카로움이 있었다. 정형사 또한 회피하지 않고 말했다.
“고순옥의 주변 정리는 어느 정도 감을 잡았죠. 그건 그렇고 견 기자님 역시 오동호와 접촉하고 있다는 건 오동호한테 그 만큼 냄새가 난다는 건데? 아참 사건 초기에 우리 사무실 와서도 그런 말씀하셨죠? 전남편한테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그...그랬었나? 그렇다면 직접 물어보시죠?”
하며 처음에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표정을 바꿔 말했다. 정형사는 대답 대신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말은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놀랍게도 오동호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정형사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양반이 왜 안 오지 큰 것 골백번 보고도 오고 남을 시간인데…….”
그러자 견기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변비가 있다고 듣긴 했는데 모르니까 일단 가보시죠?”
그 순간 정형사는 아차, 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아니 이럴 수가!”
화장실 입구로 들어선 그는 뒷문을 보고 주저앉았다. 그는 이미 뒷문으로 빠져 나가고 없었다. 견기자의 변비 말에 화장실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역시 없었다. 정형사는 놈의 가방을 생각해내고 서둘러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정형사도 가방도 사라지고 없었다.
“이 여시 같은 인간이......”
서둘러 거리로 뛰쳐나갔지만 그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견 기자였다. 정 형사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긴급 호출을 받고 들어갑니다.”
정형사는 말꼬리를 물고 소리쳤다.
“그 인간 가방은 요?!”
“가방이요? 오동호 씨가 와서 가져갔는데요. 아참 길이 엇갈렸나 보군요. 그럼 이만......”
“뭐라고요!”
다시 말꼬리를 물려고 했으나 통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순간 정형사는 뒷골이 욱신거렸다. 마치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자신이 화장실로 발길을 옮겼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으로 모두가 한가했다. 그러니 놓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동호는 뒷문으로 나와 어디선가 자신이 자리를 뜨는 걸 확인하고 들어와 가방을 가지고 사라졌다는 것이 된다.
으 아아!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명색이 형사라는 작자가 그런 기본적인 계산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다. 정형사는 하늘을 향해 긴 한숨을 내뿜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때였다.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최반장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들어오라는 한마디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정형사는 하는 수 없이 주차장으로 왔다. 차문을 열려는데 윈도 브러시에 무슨 쪽지가 끼어 있었다. 정형사는 떨리는 손으로 펴 보았다. 순간 그는 신경질 적으로 꾸겨 바닥에 던져 버리고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
그 사이 옆에서 주차증을 끊던 주차요원이 다가서며 말했다.
“아이참 국민의 지팡이가 휴지를 아무데나 버리시면 안 되죠.”
하며 쪽지를 주워들었다. 정형사는 대답대신 지갑을 꺼내 들며 말했다.
“얼마요?”
그러자 그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더니 뭔가를 기재하고 영수증을 내밀었다. 정형사는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계산하고 도로 쪽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요원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자신이 주운 쪽지를 펴보았다. 거긴 혀를 쫑긋 내민 스마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그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멀어지는 정형사 차를 언제까지나 쳐다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