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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代)에서 약연이 끝날 줄 알았는데.........”
나평자의 아버지 나정구와 오동호의 아버지 오달석은 견원지간이었다. 두 사람 다 안성 토박이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녀 죽마고우나 다름없는 데도 그들은 달랐다. 그건 그들의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이념갈등 때문이었다. 쉽게 말하면 나평자의 증조할아버지는 일정 때 순사부장출신으로 위안부 공출은 물론이고 전쟁총받이 징용에 앞장섰다. 하지만 오동호의 증조할아버지는 독립군 자금 지원에 앞장섰다. 그러나 보니 서로가 눈엣가시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균형이 쉽게 깨지지 않은 것은 서로의 장점이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 다 만석지기에다 나평자 증조할아버지는 충남도청에 배경이 있었고, 오동호의 증조할아버지는 처갓집의 시동생이 종로경찰서 주요간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물어뜯어 상처를 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아버지 대에 이르자 결딴이 났다. 해방과 함께 친일행적이 두려워 아버지를 따라 월북한 나평자의 할아버지가 6.25 막바지 때 장교가 되어 안성 땅을 밟은 것이다. 그는 제일 먼저 오달석의 아버지를 악질 지주로 몰아 처단했다. 그러자 오달석은 복수를 다짐하고 부산으로 내려와 자원입대했다. 그때 나이가 17살 때이다. 그럴 즈음 유엔군 참전과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 되자 나정구는 가족으로 버리고 수고산에 숨어 있다가 토벌대에 생포되고 만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토벌부대원이 바로 오달석이었다. 오달석은 그를 재판에 넘겼다. 그 결과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할아버지한테 도움을 받은 친일파 정치인과 법조인을 총동원하여 무죄를 선고 받고 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또 다시 자리를 폈다. 오달석도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친일 세력들이 자신의 땅은 차지하고 없었다. 오직 남은 것이라고 수고산 산자락에 1필지뿐이었다. 반면에 나정구는 예전보다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당함을 몇 번이고 나라의 호소했지만 번번이 친일 파 자손들에 의해 기각됐다. 그래서 아예 모든 걸 접고 수고산에 파고 든 것이다. 거기서 들병장수 지금의 용인댁을 만나 오늘에 온 것이다. 그런데 아들놈이 그 원수 집안과 엮이다니.....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그 자손들이야 무슨 죄나 싶어 말았는데...... 나평자의 생각은 달랐다. 집착했다. 한학자 행세를 하는 아버지가 들통날까봐 병적으로 오동호를 괴롭힌 것이다. 처음에는 보다 못해 다 찾아가 모든 게 다 과거지사라고 했지만 나평자는 결코 그럴 수 없다며 날을 세웠다. 그러면 당사자들이라도 무시하고 살면 되는데...... 며느리 고순옥은 철저한 나평자의 아바타였다로 오영감은 말을 마쳤다. 그리고 그는 답답한지 가슴을 마구치고 담배를 빼물었다. 이번에도 최반장이 라이터를 켜 내밀었다. 오영감은 담배에 붙이려다 말고 물었던 담배를 두 동강 내 바닥에 팽개쳤다. 최반장은 묵묵히 수고산을 바라봤다. 수고산은 그날의 아픔이 되살아난다는 듯이 구름을 붙잡고 있었다. 그건 마치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수고산에 젖은 피도 만만치 않았겠네요?”
최반장이 푸념처럼 한마디 뱉고 담배를 빼들었다. 그러자 오영감이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나정수 그 놈이 아녀자를 총받이로 끌고 가 몰살을 시켰지. 오직하면 무기징역을 받았겠어.”
“하지만 결국 1년 만에 풀려났잖아요.”
“하늘도 결국 정의 편이 아니더구먼. 오직하면 지금 까지 저 산이 울겠어.”
“산이 울어요?”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통곡을 하지....... 원한을 풀어 달라고…….”
“그렇다면 아직까지도.......”
“내가 오죽하면 오늘내일하는 고놈 생전에 찾아가 사죄를 요청했겠어.”
“그럼, 나정수 씨가 많이 아팠다는 겁니까?”
“물론이지. 암에 걸려 마지막 길만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서 이제는 달라질 거라 생각하고 찾아간 거지.”
“그래서 사죄했나요?”
“아냐. 그 놈은 끝내 거부했어. 그리고 이런 말까지 하더군. 저 산꼭대기 바위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 못하고 간 게 한이라고....... 그는 끝내 악한의 길을 택했어.”
“그렇다면 그 사실을 나평자가 목격했겠네요?”
“애석하게도...... 그 자리에 있었어.......”
“그래서 복수차원에서........”
“그러니까 미치고 팔짝 뛸 일 아니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뭘 잘한 게 있다고........ 딸내미를 앞세워 그 지랄을 하겠소.”
“어르신이 보시기에 어느 정도였어요?”
“그 언젠가 농기구 수리하려 왔다가 잠깐 들렸는데 난리 아니더군요. 며느리 고것이 눈이 뒤집혀 우리 동호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며 빨리 가게 명의를 자기 앞으로 돌려 달라고 말이에요.”
“아무 이유도 없이요?”
“아니오. 아들놈한테 물으니 장모를 만나고 온 뒤로 저런다고 하데요.”
“그렇다면 장모 나평자한테 사주를 받고요.”
“맞아요. 그 악녀의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그것마저 넘겨주면 또다시 무일푼이 되는 거라 버텼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어요.”
“왜요?”
“손녀딸 사랑 이를 볼모로 악랄하게 요구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명의 변경을 해줬겠네요?”
“네!”
“고것들은 사람이 아니야! 사탄이라고!”
훌쩍이며 묵묵히 듣고 있던 용인댁이 소리쳤다. 그녀는 얼마나 분노가 치미는 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오영감이 다가와 살며시 등을 쓸어주었지만 그녀는 아랑곳없이 소리쳤다.
“아들 교통사고 건도 그래.........”
“뭐....뭐가요? 교통사고 사건 부를 조회해보니까 피의자 운전조작 미숙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종결 되어 있던데요.”
“무슨 소리야 그 인간 외곽에 자동차 운전교습소까지 차린 운전의 도사야. 그런 인간이 운전 미숙이라니 말이 돼요!”
“그렇다면 그건 고의적이라는 말씀인가요?”
“나는 그렇다고 봐요.”
“그 증거가 있나요.”
“있고말고. 고놈이 나평자한테 사채를 쓰고 있었어.”
“그렇다면 그걸 탕감 조건으로....... ”
“그건 뿐만 아니라 상대가 저 지경이 됐는데도 불구속으로 풀려났어.”
“그건 그러네요. 하지만 가계마저 빼앗았는데 굳이 사고까지. 그렇다면 보험금까지 노렸다는 거예요?”
“아니요. 아들은 보험을 싫어했어요. 자동차 보험 같은 필요한 건 외에는 들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뭘 노리고.........”
“모르긴 해도 동호의 발명특허가 많아 사용료가 엄청나다고 들었어요.”
“대략 얼마나?”
“걔가 맨들 걸 안 쓰는 전자회사가 없다고 하니까 아마 수천만 원은 될 거라고 하던데요?”
“그렇다면 노릴 만하겠네요. 그렇다면 그 사고로 해서 수혜자 변경이 됐나요?”
“어림없는 소리....... 우리 동호가 어떤 놈인데..... 단 일 푼도 건드리지 못했어요.”
“그걸 어떻게?”
“사고를 예견하고 대리행사 권을 교장선생님으로 지명해 뒀거든요.”
“교장 선생님이시라면? 민국기 선생님이요.”
“그걸 어떻게?”
“아드님께서 은인이라고 적어두어서요. 대단하신가 보죠?”
“물론이죠. 아드님이 대법원 판사 출신으로 서울서 큰 로펌을 운영하고 있어요. 딸은 행정법원에 판사로 있고요.”
“대단하네요. 하지만 많은 돈이 걸린 문젠데 아무리 은인이라고 해도.....”
“헛소리 하려거든 그만 가 봐요!”
오영감은 버럭 화를 내며 용인댁의 손을 끌었다. 최반장이 황급히 막아서며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그동안 그런 유사한 사건이 많아서요.”
그때서야. 오영감은 화를 풀고 주저하더니 담배를 물었다. 최반장은 이번에도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 내밀었다. 오영감은 거부하지 않고 불을 붙였다.
이때, 본청과 뭔가를 주고받으며 조회를 하던 박형사가 다가와 최반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나평자가 확실합니다.
최반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오영감과 용인댁을 쳐다봤다. 오영감이 담배연기를 내뿜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순간 최반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건진 시신이 사돈 나평자 씨랍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놀랍게도 무표정으로 말했다.
“천벌이 내렸구먼........”
최반장은 때를 놓치지 않고 다그쳤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어르신들이 계시는 이곳에서 발견됐을까요?”
오영감과 용인댁은 애써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러나 최반장은 틈을 주지 않고 또다시 다그쳤다.
“그렇다면 아드님께서 혹시 두 분의 원한을 풀어 드리려고......”
“뭐야! 그럼 우리 아들이 살인자라는 거야! 초등학교3학년 수준 밖에 안 되는 반편이가!”
“사....살인을 했다기 보다는 그렇지 않았나 허는 거지요.”
그러나 오영감은 더욱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무리 의심으로 밥 먹고 사는 인간들이라지만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가더라고!”
오영감은 더 이상 심문은 거부하겠다는 듯이 용인댁의 손목을 움켜쥐고 입구 쪽으로 내려갔다. 때마침 과수대 SUV차량이 경광등을 밝히고 움직였다. 용인댁이 멈칫하며 쳐다봤다. 오영감은 다짜고짜 손을 끌었다.
최반장은 다시 저수지 가장자리에 올라서서 그들을 쳐다봤다. 주위는 서서히 먹물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최반장은 다시 수고산을 쳐다봤다. 정상은 어느새 핏빛이 된 구름을 물고 바동댔다.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듯이…….
이때 박형사가 다가서며 물었다.
“반장님 어때요?”
“어떠긴 진실을 향한 의문의 껍질을 한 커플 벗은 거지....... 가더라고…….”
하며 입구 쪽으로 향했다. 박형사는 무슨 말인가 덧붙이려다 그만 두고 최반장의 뒤를 따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