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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 교수님을 이리 뵙자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어플로 사람을 조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자 신교수는 뜻밖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박형사와 정형사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황당한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요즘 기계가 아무리 전지전능해 졌다고 하지만 신의 영역인 정신을 어떻게 조작하느냐는 거다. 하지만 신교수는 침착성을 잃지 않고 신중하게 말했다.
“아무리 기계가 발달해도 신의 영역은 결코 넘을 수 없다고 봅니다. 쉽게 얘기하면 기계는 사람의 명령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쇳덩어리에 불과하니까요.”
“그럼, 세기의 대결을 벌였던 알파 고는요?”
“그 녀석 역시 마찬가집니다. 개발자가 저장한 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뒤 명령에 따라 그 진가를 발휘한 것뿐이니까요.”
“아네. 그래서 지금 저희가 궁금한 것은 그 원리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조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상대방 휴대폰에 악성 바이러스를 심어 조정하듯이 말입니다.”
“그건 가능합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좀비 폰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네. 그렇다면 주파수 변형으로 상대방의 두통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겁니까.”
“네.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원격조정의 일환이니까 네트워크 환경만 맞는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요즘 나 홀로 족들이 싸늘한 집안에 들어가기 싫어 원격 명령으로 보일러를 작동 시켜 방의 온도를 데우듯이 말입니다.”
“아네. 그럼 혹시 오동호라는 인물을 아십니까? 그쪽 분야에 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압니다. 몇 번 찾아와 조언을 구하기에 상담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똑똑한 친구가 그리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네. 만나 보신 결과 그 친구는 어땠습니까?”
“평범하다 못해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반장님도 조회해 보셔서 아실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 흔한 교통법규 위반마저도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무슨 일이라도.......”
“아네. 그와 관계된 사람들이 줄줄이 의문사를 하고 있어서요.”
“그래요. 무슨 증거라도 있습니까?”
“아....아직요. 그저 심증일 뿐이죠. 가장 큰 의심은 사건 관계도를 살펴보면 용의자 끼리 서로 물고 뜯어 자멸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겁니다.”
“그...... 그래요.”
신교수는 뭔가 의심 석연치 않다는 듯이 강의용 가방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살폈다. 순간 정형사가 나서며 말을 이었다.
“피해자들의 특징은 한결 같이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려 잠시 코마상태에 빠져 무의식중에 일을 저질렀다는 겁니다.”
그러자 박형사가 거들고 나섰다.
“그리고 문제는 한결 같이 그 사실을 기억을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네. 저도 여기 정군한테서 귀띔을 받아 조사해봤습니다.”
신 교수는 정군을 바라본 뒤 자신의 노트를 뒤적였다.
“그래서 뭘 좀 캐치하셨습니까?”
최반장이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신교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외국 사례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정을 못 받은 건 그게 심령과학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미스터리한 일을 접했을 때 흔히 말하는 귀신 곡할 노릇이라고 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해섭니다.”
“그렇다면 전혀 근거가 없어 추적이 어렵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건 제 추측이긴 하지만 악성바이러스 유포 근거지를 역 추적한다면 뭔가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군요.”
시종일간 암담한 표정을 짓던 최반장이 뭔가 해결책을 잡았다는 듯이 표정을 바꿨다. 그러자 또다시 신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 다음에 이 공식에 대입해서 추궁하면 어느 정도 실체가 보이리라 봅니다. 하며 뒤적이던 노트를 내밀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었다.
“이건 전문 분야니까 정군과 상의해서 푸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명심하실 것은 해답이 나오면 심리학자의 조언을 구하는 게 최선이라 봅니다.”
신교수는 자신의 톤의 높낮이를 조절했다. 그건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조언이기도 했다.
이때였다.
최반장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최반장은 곧바로 받지 않고 발신자만 확인했다.
“받으시죠?!”
신교수는 자신의 의견은 충분히 피력했으니 받아도 된다는 식으로 최반장을 쳐다봤다. 그러자 박형사가 나섰다.
“수사과장님 이세요?”
“응.”
그리고 그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스피커폰을 누르지 않았어도 수사과장의 목소리는 컸다.
“난데. 뻘 짓 그만하고 내일 아침 10시까지 수사본부로 모두 집합해. 이건 서장님의 지시사항이야. 알았지.”
일방적으로 쏘아붙이고 끊어 버렸다. 모르긴 해도 서장님으로부터 질척대는 수사에 한 소리 들은 듯 싶었다. 그러나 최반장은 신교수를 의식해선지 별 말없이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들었다.
“자 이제 마무리 합시다.”
“네.”
박형사와 정형사가 술잔을 들었다. 신교수는 물 잔을 들었다.
“내일을 위하여!”
“위하여!”
한바탕 잔을 부딪치고 입안 털어 넣은 다음 각자 소지품을 챙겨들고 일어났다. 막내인 정형사가 최반장으로 부터 카드를 받아 카운터로 갔다. 나머지는 밖으로 나왔다.
밖은 여전히 초승달이 졸리운 듯 두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바람도 싸늘했다. 정형사가 나오자 박반장 일행은 신교수에게 감사를 표하고 헤어졌다. 이제 그들만 남았다. 찬바람이 불었다. 박형사가 옷깃을 세우며 말했다.
“이제 어떡하죠?”
“어떡하긴..... 오늘은 그만 들어가 쉬고 내일 본격적인 전쟁을 치르자고!”
그리고 최반장은 오른 손을 들어 보이고 거리로 나섰다. 박형사와 정형사도 자신들이 끌고 온 차는 내일 가져가자고 타협한 뒤 최반장의 뒤를 따랐다.
삼거리로 들어서자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멈춰서 각자 손을 들어 보인다음 발길을 놓았다.
이제 집으로 간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집으로 간다.
하지만 발길이 무겁다.
가장 편안한 곳으로 가는데
왜 이리 낯설기만 하는 지
가는 길마저 생소하다.
조금만 가면 집인데
어떤 표정으로 맞아 줄지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어설픈 보헤미안인가
한숨만 절로 나온다.
세 사람의 발길은 유난히 비틀 거렸다. 정형사는 더 이상 발길을 떼지 못하고 망설였다. 택시가 옆에 섰다. 그는 시름없이 올랐다. 그리고 그는 울먹이며 외쳤다.
“용인 대학병원 응급실로 갑시다.”
그리고 그는 좌석을 길게 눕힌 후 그 위에 자신의 번뇌덩어리를 눕혔다. 택시는 말없이 어둠 속을 질주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