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조금 더 있고 싶었는데...'
대학원생이 된다는 거, 연구원으로서 산다는 거 그리고 졸업논문을 준비한다는 거,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건 정말이지 지옥 같은 일이다. 철야는 기본이고 집에 돌아오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대체 이 악몽 같은 강행군이 언제쯤 끝이 나려나 목 놓아 기다려보지만 시간이란 놈은 원체 수줍음이 많은 녀석이라 쳐다보고 주시하고 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더 바튼 걸음으로 사람의 애간장을 녹인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동이 틀 무렵의 새벽, 모처럼 랩실을 나와 무려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바리바리 빨래 감을 한 무더기 싸짊어지고 어두운 현관문을 들어서니 낯익은 인영 하나가 방문을 열고나와 반겼다.
엄마였다.
평소보다 초췌해 보이는 얼굴이 왠지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것 같았지만, 매일 같이 반복된 피곤한 일상은 오지랖 넓던 나를 어느덧 세상 가장 무심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게다가 채 무얼 느끼기도 전에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말만한 처녀가 며칠이나 외박하고! 대체 뭘 하다 이제 와!"
"졸업 논문 준비하면서 집에 꼬박고박 들어오는 대학원생이 어딨어! 엄마는 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다 몸 상해! 밥은 제때 챙겨 먹니?"
"아! 몰라 시끄러! 귀찮고 피곤하고 힘드니까 말 걸지마! 아 엄마는 잠이나 자지 왜 괜히 나와서 잔소리야 잔소리가! 심심하면 빨래나 해줘."
"어휴... 우리 딸... 허구 헌 날 이렇게 힘들어서 어떻게 하니?"
"됐거든요. 도와줄 거 아니면 신경 끄세요."
"근데 딸! 그건 뭐야?"
엄마가 손에 든 측정 장비를 보고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평소라면 '엄마가 그런건 알아서 뭐하게' 무시하고 말았을 테지만, 그날은 기분이 묘했다. 한바탕 차갑게 쏘아붙인 것도 미안하고 해서 들고 있던 장비를 켠 뒤 우쭐대며 말했다.
"교수님이 테스트해보라고 맡긴 적외선 열 감지 카메란데, 생긴 건 일반 캠코더랑 비슷해 보여도 이렇게 켜면 온도를 색으로 표현해줘. 봐! 엄마 같은 사람은 이렇게 파랗게... 어?"
그 순간 나는 세상 가장 슬픈 표정을 보았다.
쓸쓸히 웃으며 점차 희미해져가는 엄마가 말했다.
.
.
제목을 확인하세요.
출처 | 예전에 썼던 글을 각색해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