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점심을 먹고 수사본부에 들어서자 이형사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목격자로 보이는 사내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녀석이야?”
최반장이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이형사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일어나 고개를 조아렸다.
“네. 그리고 기본 신상은 정리해 뒀습니다.”
하며 정리하던 서류를 가리켰다. 그러나 최반장은 심드렁하게 한마디 뱉을 뿐이었다.
“수고했어.”
이 형사는 직감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조아린 뒤 출입문을 나섰다.
“그럼 저도 이만.......”
목격자라는 사내도 이때라는 듯이 고개를 조아리고 출입문을 향했다. 그러자
박형사가 막아서며 자신의 자리 앞으로 인도했다.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기본적인 것은 다 말씀 드렸는데요?”
그러자 박형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는 상세하게 해보자고........”
목격자는 여전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박형사를 쳐다봤다. 박형사는 조금 전에 이형사가 작성 놓은 서류를 보며 소리 내어 읽었다.
“홍달식. 나이 32세. 직업 무직. 주거부정....... 폭력 및 절도 15범.”
“화려하시구먼. 황동팔이 하고는 어떤 사이야?
박형사는 서류를 내려놓고 물었다.
“오다가다 만난 형이요.”
“그것 말고”
“빵 동깁니다.”
“그날, 어떻게 된 거지?”
“철거 폭행 건으로 황 사장 대신에 총대를 메고 들어간 보상금 수금하러갔다가 우연히 만났죠.”
“그래서?”
“수금해달라고 하니까. 그 형이 알았다며 근처 술집으로 데리고 가서........”
“가서?”
“술을 마셨죠. 각자 소주 1병 씩.”
“그리고......”
“또다시 술을 시키려는데 그 형이 갑자기 머리를 감아쥐고 괴로워하더니 구토를 시작했죠.”
“그래서?”
“급한 김에 밖으로 데리고 나와 전봇대로 인도했죠. 그러자 그 인간이 전봇대를 붙들고 똥물까지 토하더라고요. 그때 카메라에 찍힌 거죠.”
“다른 것은?”
“다른 거라뇨?”
“인마 그 주위에 이상한 것 못 봤어?”
“글쎄요......”
그리고 그는 뭔가 생각하더니 무릎을 치며 말했다.
“맞아요. 건너편 전봇대에 검은 것으로 올 도배한 한 인간이 기대서서 작은 컴퓨터로 뭔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저랑 눈이 마주치자 저한테 다가왔어요.”
“그래서?”
“겐세이 붙으면 조저 버리려고 노려보니까. 그 인간이 그러더라고요.”
“뭐라고?!”
“자기가 돌볼 테니까 들어가 마저 마시라면서 5만 원짜리 한 장까지 쥐어주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무슨 횡재냐 싶어. 그 인간한테 맡기고 들어와 술을 마셨다?”
“네. 그리고 한참 있다. 오줌 누러 밖에 나가보니까 두 인간 다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갔나보다 하고 들어와 다시 마셨죠.”
그때였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정형사가 갑자기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홍달식에게 다가섰다. 홍달식은 왜 이러냐는 식으로 쳐다봤다. 정형사는 말없이 핸드폰 조작을 하더니 그에게 화면을 내보이며 물었다. 오동호의 사진이었다.
“이 인간 맞아?”
“그.......글쎄요. 검은 모자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어서........”
“그럼, 말투는? 어눌했나?”
“아뇨. 정확하던데요.”
그러자 정형사는 핸드폰을 끄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박형사는 계속 질문을 했다.
“그래서 그 뒤 어떻게 됐나? 황동팔이 만났나?”
“아뇨.”
그리고 그는 뭔가 생각난 듯 또다시 무릎을 치며 말했다.
“아참 그 인간이 휴대폰을 놓고 가서 전해줄려고 그 근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안 보이던데요.”
그리고 그는 중얼거렸다.
- 명색이 사장이라 놈이 노인네들처럼 폴더 폰이 뭐야…….
“지금 뭐라는 거야?!”
묵묵히 듣고 있던 최반장이 다가서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값나간 것이면 팔아서 담뱃값이라도 하려고 그랬는데 후진 폴더폰이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갖고 있나?”
“네.” 하며 그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낡은 폴더 폰을 내밀었다. 최반장은 받아 옆에서 기웃거리는 정형사에게 건네며 말했다.
“통화 기록 조회해봐?”
그러자 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별거 없어요. 짱께집에 짜장면 시켜 먹은 것 밖에........”
그러나 최반장은 홍달식의 머리를 쳐들며 다그쳤다.
“솔직히 말해. 그 뒤로 황동팔이 만났지?”
하지만 그는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그 인간이 어디 있는데요? 있는데 아시면 알려줘요. 이번에는 기필코 장학금 받아내고 말테니까.”
“진짜지? 너 만약에 밝혀지면 범인은닉죄야.”
그러나 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딴전 피었다.
이때였다. 황동팔의 휴대폰을 유심히 살펴보던 정형사가 다가서며 소리쳤다.
“이 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구라를 쳐!”
뭔가 단서를 찾은 듯 싶었다. 그러자 홍달식의 표정이 달라지며 실토했다.
“사....사실은 한번.........”
“상세하게 말해봐.......”
최반장이 또다시 홍달식의 머리를 쳐들며 다그쳤다. 홍달식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세히 실토를 했다.
“전화가 왔었어요. 전화를 받으니까 동팔이 형이 말했어요. 장학금 줄 테니까 고삼저수지 초입으로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택시를 잡아타고 갔죠. 근데 그 인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낚시꾼들 주차장에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누군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어요. 그래서 깜짝 놀라 쳐다보니까 검은 모자에 마스크를 한 동팔이 형이 한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말했어요. 자기만 한번 도와주면 현찰로 오백만원을 주겠다고.”
“그래서?”
“그런다고 했죠. 전 그때 몹시 궁했으니까...... 그러니까 그 형이 주차장으로 데리고 가더니 허름한 차를 가리키며 타라고 했어요. 그래서 씨발 탔죠. 그러자 존 나게 달리더니 차를 세우고 말했어요. 트렁크에 물건을 저기 저수지에 버리면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했죠.”
순간 최반장과 박형사. 정형사의 눈이 반짝였다. 최반장은 틈을 주지 않고 다그쳤다.
“그곳이 월곡 저수지 맞지?”
“글쎄요. 저는 처음 와 본 곳이라 몰라요. 더욱이나 밤이었고.”
“좋아 그랬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나?”
그러나 홍달식은 아무런 표정 없이 싱겁게 대답했다.
“모르죠. 난 그냥 그 형과 철거반할 테 그렇게 버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것이나 했죠.”
“그게 뭔데?”
“뭐긴요? 진압하면서 피가 묻은 연장들이죠. 그래서 의심 않고 버렸죠. 더군다나 대형쓰레기 봉투에 담겨 있어서요.”
“그리고?”
“그 인간이 약속대로 오백만원을 현찰로 주어서 가지고 왔죠.”
“그 인간은 어디로 가고?”
“용인에 볼일이 있어 간다며 시내에서 내려주고 갔어요.”
“그 뒤로 연락이 오지 않았나?”
“네.”
“그때 휴대폰을 줬나?”
“내가 미쳤어요. 확보한 보험을 버리게.......”
“그러니까 갈 때 아예 가지고 가지 않았다?”
“물론이죠.”
“그렇다면 달라는 소리도 안 했나?”
“네. 그래서 지금 제가 쓰고 있죠.”
그리고 그는 할 말 다 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형님. 담배 한 까치만 빌립시다.”
그러자 박형사가 주머니에 담배 한 개 빼 내밀었다.
“불도?”
박형사는 말없이 라이터를 꺼내 붙어주었다. 그는 담배 연기를 두어 번 길게 들이마시고 내뿜은 다음 말했다.
“형님 그럼 전 이만 가 봐도 되죠?”
그리고 그는 출입문을 향했다. 그러나 막을 수가 없었다. 붙잡아둘 이렇다 할 거리가 없어서였다. 순전히 임의동행에다가 허가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출입문을 나서며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반장님 저대로 놔둬도 될까요?”
“증거가 없잖아.”
“그래도 저 녀석 진술에 의하며 나평자 시체 유기가 확실하잖아요.”
“쓰레기를 버렸다잖아?”
“그럼 그대로 두자는 겁니까?”
“아니지. 사건은 마무리 지어야지.”
“어떻게요?”
“먼저 정형사는 국과수에 보낸 쓰레기봉투에 지문결과 하고 그날 저 녀석이 타고 나왔다는 차량 조회해봐.”
그러자 정형사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의견을 제시했다.
“차량조회요? 대포차가 확실할 텐데요?”
최반장은 예상외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어떻게 해서라도 단서를 찾아보자는 거지.”
그때서야 정형사는 입을 다물었다. 최반장은 애써 진정하며 박형사를 보고 지시했다.
“박형사는 지금 당장 나가 황동팔이 흔적을 찾아보고, 정형사는 그 녀석 폰을 신 교수한테 의뢰해 혹시 조정할 수 있는 악성 바이러스가 심어 졌을지 모르니까.”
“네.”
박형사와 정형사가 고개를 조아리고 돌아섰다.
이때였다.
수사과장이 문서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
“그건 뭡니까?”
최반장이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평자 재 감식결과지야.”
수사과장은 한숨을 내쉬며 결과지를 건넸다. 최반장은 받아들고 읽어 내려갔다.
“시신 재 부검 결과 심장마비사가 확실함. 기타 봉투의 지문 미 발견.”
묵묵히 듣고 있던 정형사가 투덜거렸다.
“완전히 귀신 곡할 노릇이구만.”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한마디라도 반박을 하나 싶었던 박형사는 고개를 조아리고 출입문을 나섰다. 수사과장이 최반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 녀석은 어디가?”
“지푸라기 잡으려고요?”
“황동팔이?”
“그걸 어떻게?”
“그렇게 얘기됐어. 증거대로 황동팔을 검찰에 송치하기로......”
“그리고 종결하시겠다.”
“그러면 어쩌겠나? 오동호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다. 외압만 심해지니........”
수사과장은 한숨과 함께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정형사가 라이터를 꺼내 내밀자 밀치고 천정만 올려다봤다. 그리고 푸념처럼 말했다.
“너희들 마음은 알아. 하지만 아닐 때도 있는 거야. 무리해서 결코 좋을 것 없으니까? 이건 나와 서장님의 욕심을 차리자는 거 아냐. 이 엿 같은 경우가 순리가 되어버린 세상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그러나 누구하나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그렇게 자신의 책상에 앉아 시름없이 천정만 올려다 볼 뿐이었다.
이때였다. 정형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곳이야?!”
“무슨 소리하는 거야?”
최반장과 수사과장이 놀라 바로 앉으며 이구동성으로 다그쳤다. 그러자 정형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정나리를 미행해서 오동호를 목격한 그 유아원이요.”
“그게 어쨌는데?”
“가방을 전달 받은 오동호가 분명히 출입문을 나갔는데..... 밖에 나가보니까 보이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뭐야?”
“그 문이 아지트와 통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그걸 어쩌자고?”
묵묵히 듣고 있던 수사과장이 다그쳤다. 정형사는 단호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자는 거죠.”
그러나 수사과장은 난색을 표하며 다그쳤다.
“겨우 수습했는데 다시 전쟁을 시작하자고?”
정형사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저는 전쟁재개를 하자는 게 아니고 확실히 하자는 겁니다.”
“뭘?!”
“명분이죠.”
“명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요.”
“그러다 뭐라도 발견되면?”
“당연히 수사를 보강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해야죠.”
“그러면 받아 들여 질 것 같아?!”
수사과장이 가슴을 치며 다그쳤다. 정형사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발부여부와 상관없이 저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슨 오기로?”
“그건 정의구현을 위해섭니다.”
“정의가 뭔데?”
“기본을 지키는 겁니다. 그것마저 무너지면 세상은 무너지고 만다고 봅니다.”
그러자 수사과장이 더욱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인마! 답답한 소리 그만해! 네 말대로 정의가 구현 안 되도 지금 세상은 존재하고 있어! 인마 세상은 누가 뭐래도 선과 악의 공존 속에 존재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그냥 덮어 주자는 겁니까?”
“덮어주자는 게 아니라 시간낭비는 그만두자는 거야.”
“시간낭비라뇨?”
“인마! 아직까지도 내 말을 못 알아듣겠어. 오동호는 금치산자야. 일테면 한정치산자라고! 게다가 빵빵한 법정대리인도 가지고 있다고. 근데 영장이 나오겠어? 고로 우리만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내 말이 틀렸어? 최반장?”
묵묵히 듣고 있던 최반장이 한숨과 함께 말을 뱉었다.
“씨팔! 엿 같아도 그래....... 그냥 황동팔이 구속이나 힘쓰자고......”
그러자 정형사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수사과장이 애써 진정하며 말했다.
“최반장 말대로 해. 그게 현실이니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띠릭!
그 순간 정형사의 핸드폰에서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정형사는 한숨을 내뱉으며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이.....이건?!”
“뭔데 그래!”
최반장과 수사과장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치며 다가왔다. 정형사는 묵묵히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긴 용인 문제의 유아원 전경과 내부 그리고 문제의 출입문으로 통하는 방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지목했던 방은 어린애 장남감과 게임기 그리고 1인용 소파가 놓여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동호가 게임을 하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뭐야!”
정형사와 최반장. 수사과장은 말문을 잃은 채 서로를 쳐다봤다. 그건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행동이 읽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반장은 직감적으로 오동호가 앉았던 의자와 책상을 살폈다. 놀랍게도 책상 밑에 피카추 브로치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이런 교활한 놈이 있나!”
최반장은 잽싸게 떼 수사과장을 쳐다봤다. 그건 이래도 그냥 넘어가야 되겠느냐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 수사과장은 말없이 뺏어 들더니 땅바닥에 팽개치고 구둣발로 뭉개버렸다.
“과장님!!”
최반장과 정형사가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수사과장은 묵묵히 돌아서며 한마디 했다.
“더 이상 웃음거리 되지 말자! 간다!”
그리고 그는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경찰이 도청 당했다면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기 때문이었다. 수사과장은 오른 손을 들어 보이고 출입문을 나섰다. 최반장과 정형사는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