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19/jul/09/corbyn-says-labour-would-back-remain-in-brexit-referendum
https://www.independent.co.uk/voices/brexit-corbyn-labour-remain-vote-alastair-campbell-a8997471.html
https://www.bbc.com/news/uk-politics-48919695
영국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 1949~)이 마침내 브렉시트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코빈 당수는 브렉시트에 대한 제2국민투표를 실시하고 본인은 노동당과 함께 'EU(유럽연합)잔류'를 독려하는 선거운동을 할 것이라고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밝혔습니다.
제레미 코빈은 꽤 오랫동안 유럽통합 회의론자(Eurosceptics)였습니다. 1975년 영국의 유럽공동체(EC) 잔류 국민투표 때는 '탈퇴'에 투표했고, 하원의원 시절인 1993년에는 유럽연합 성립의 기본 조약인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에 반대했습니다. 2016년 브렉시트 제1차 국민투표 당시에 노동당 당수로서 공식적으로는 '브렉시트 반대, EU 잔류'를 천명했지만 매우 소극적으로 선거운동에 임해 노동당 지지자 일부가 탈퇴에 투표하도록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국민투표 이후에도 그는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한다. 우리는 보수당의 브렉시트 정책(테레사 메이와 EU의 브렉시트 합의안)이나 노딜 브렉시트를 반대할 뿐이다"라며 일각에서 제기된 제2국민투표 실시에 매우 소극적이었습니다.
브렉시트는 극우파가 주도했다는 것이 일반의 인식이지만 유럽 좌파 중에도 유럽연합 회의론자들은 꽤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럽연합을 신자유주의와 긴축정책으로 유럽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기구라며 비판해왔습니다. 영국에도 좌파 지식인과 일부 노동조합들 중심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여론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좌파(Left)+브렉시트(Brexit)의 글자를 따서 일명 Lexit라고 합니다. 파키스탄 출신의 영국 언론인 타리크 알리와 사회학자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대표적인 Lexit입니다. 코빈의 측근들 중에도 공보담당 보좌관 소머스 밀른(Seumas Milne)은 BBC 기자 시절부터 유럽연합에 비판적인 기사를 자주 썼습니다. 코빈의 강력한 지지 세력인 영국 최대 노조 Unite의 의장인 렌 매클러스키(Len McClusky), 노동당의 원로 정치인 데니스 스키너(Dennis Skinner), 로니 캠벨, 존 만(John Mann), 케이트 호이(Kate Hoey) 등이 역시 브렉시트 지지자였습니다. 이런 주변 측근들, 그리고 본인의 사상 때문에 코빈은 2016년 이후 시종일관 제2국민투표 요구를 일축하고 조기 총선을 요구해왔습니다.
문제는 2018년 말부터 시작됐습니다. 보수당이 테레사 메이 총리와 EU의 합의안을 놓고 분열될 때 노동당도 단일대오를 갖추지 못하고 EU 잔류, 제2국민투표(Second referendum) 실시를 요구하는 지지자들의 여론에 휩쓸려 혼돈을 거듭했습니다. 여론조사마다 노동당 지지자의 70% 이상이 EU 잔류를 지지했습니다. 노동당이 배출한 총리 토니 블레어(Tony Blair), 고든 브라운(Gordon Brown)과 닐 키녹 전 당수, 그리고 80%를 넘는 노동당 하원의원(MP)들이 제2국민투표 지지를 요구했습니다. 마침내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는 코빈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노동당 하원의원 9명이 탈당해 보수당의 EU 잔류파 의원 3명과 함께 Change UK라는 신생정당을 만들었습니다. 노동당은 동요했습니다.
당의 분열 위기를 직감한 코빈은 2019년 2월 26일 마침내 제2국민투표를 당론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국민투표를 실시할때 선택지에 '잔류(remain)'이 있도록 추진할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국민투표가 성사되면 공식적으로 잔류를 지지할지 여부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코빈에 대한 잔류파 유권자들의 불만은 점점 높아져갔고 2019년 5월의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은 90석을 잃었습니다. 처음부터 제2국민투표를 강력하게 지지해온 자유민주당(Lib Dem)과 녹색당(Green)은 각각 600석, 100석 이상 지방의회 의석을 늘렸습니다. 그리고 같은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노동당은 14%라는 처참한 성적을 얻었습니다. 역시 크게 분열한 보수당(9%)과 함께 영국 정치를 대표하는 양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했습니다. 노동당의 지지자 다수는 EU 잔류를 외치며 자유민주당과 녹색당으로 이탈했습니다.
2019년 5월 3일 영국 지방선거 결과
보수당(CON) 1334석 상실, 노동당(LAB) 82석 상실, 자유민주당(LD) 703석 증가, 녹색당(GRN) 194석 증가, 영국독립당(UKIP) 145석 상실
2019년 5월 23~26일 유럽의회선거 결과
브렉시트당(극우, 노딜 브렉시트) 31.6%(신생정당), 29석
자유민주당(중도, EU 잔류, 제2국민투표 지지) 20.3%(2014년 대비 13.4% 증가), 16석
노동당(중도좌파) 14.1%(11.3% 감소), 10석
녹색당(생태주의 좌파, EU 잔류, 제2국민투표 지지) 12.1%(4.2% 증가), 7석
보수당(중도우파) 9.1%(14.8% 감소), 4석
스코틀랜트민족당(SNP, 중도좌파, EU 잔류, 제2국민투표 지지) 3.6%(1.1% 증가), 3석
웨일스당(Plaid Cymru, 중도좌파, EU 잔류, 제2국민투표 지지) 1%(0.3% 증가), 1석
영국독립당(극우, 노딜 브렉시트) 3.3%(24.2% 감소)
반브렉시트, EU 잔류파 정당 득표율 40.4%
친브렉시트, EU 탈퇴파 정당 득표율 34.9%
노동당의 지지도는 보수당에 못지 않게 급전직하했습니다. 무능한 리더십으로 대혼란에 빠진 보수당의 상황에서 어부지리도 찾지 못한채 노동당은 자유민주당에 밀리고 녹색당에도 위협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코빈의 측근들도 서서히 제2국민투표 실시, 본격적인 잔류 지지로 선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빈의 가장 오랜 동지인 존 맥도넬(John McDonnell, 1951~) 노동당 예비내각 재무장관과 에밀리 손베리 예비내각 외무장관, 케어 스타머 브렉시트부장관이 정식으로 제2국민투표를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역시 코빈이 하원의원이 되기 전부터 동지로 지낸 다이앤 애벗 하원의원도 코빈의 의뭉스러운 브렉시트 정책을 비판하며 결단을 요구했습니다. 대표적인 코빈 지지 논객인 가디언지(紙) 칼럼니스트 오웬 존스(Owen Jones, 1984~)도 "제2국민투표가 불가피하다"고 선언했습니다. 노동당 지지자들은 제2국민투표 지지 뿐만 아니라, 투표지의 선택란에 '잔류'를 넣을 것, 그리고 노동당은 공식적으로 잔류를 지지할 것을 당 수뇌부에 요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코빈은 노동당의 최대 지지기반인 노동조합원들에게 뜻을 물었습니다. Unite, BMG, Unison 등 영국의 주요 노조들은 모두 공식적으로 EU 잔류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심지어 가장 오랜 Lexit이자 코빈의 강력한 후원자인 렌 매클러스키도 제2국민투표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결국 제레미 코빈은 7월 8일 "보수당 경선에서 누가 총리가 되든, EU와 새로운 합의안을 찾든 못하든, 노동당은 제2국민투표를 요구할 것이며 'EU 잔류'를 당론으로 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간 코빈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조기 총선(snap election)'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노동당은 제2국민투표 추진을 우선 정책으로 채택했습니다. 코빈이 2016년 이후 브렉시트에 관해 언급한 것 가운데 가장 명확한 성명이었습니다.
이렇게하여 EU와 영국 정부가 합의한 브렉시트의 잠정 기한이 2019년 10월 31일로 3개월 20일 가량 남은 가운데 영국은 신임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의 '노딜 브렉시트'와 노동당, 자유민주당, 녹색당, 스코틀랜드민족당이 지지하는 'EU 잔류' 선택지 간에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맞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