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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툭툭 치며) 아아,
안녕하십니까, 학우 여러분.
기나긴 학창시절이 오늘로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12년간 우리에게 주어진 기나긴 숙제를
마감하게 되어 한없이 기쁩니다.
하지만 이 기나긴 숙제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해봅니다.
12년이라는 학창시절 동안
우리는 학칙이라는 규율을 통해 통제를 학습했고,
상대평가를 통해 경쟁을 정당화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 14시간 이상을 함께 보냈습니다만
주변의 모든 친구들은 전우보다는
잠재적 적에 가까웠습니다.
함께 나아가는 존재보다는
그들보다 한걸음 앞서 나가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들보다 성적이 낮아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것은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참고서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침 받았습니다.
우리는 한 줄로 줄 세워져
개인의 가치를 평가 당했습니다.
지식을 주입하는 식의 교육은
지식을 뱉어내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로 하여금
열등생이 되어 맨 뒤로 배치 받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직 높은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
앞다투어 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왜 주입식 교육이 문제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선진국의 토론식 교육은 왜 되지 않는가를 생각해봅니다.
토론은 늘 문제 인식과 제기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러니 우리 교육 과정은 토론식 교육이 되어선 안되었던 거지요.
‘우리가 왜 경쟁해야 합니까?’
‘우리는 왜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합니까?’
'왜 우리 엄마는 늘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합니까?'
라는 문제 의식이 학생들에게 사고되면 안되니까요.
어른들은 흔히 말합니다.
대학생만 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라고 하지만
선택지를 우리가 정할 수 있는 자유까지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학교는 우리에게 자유를 건네다 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등학교에서 자유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그 자유를 올바르게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처럼
우리에게 참된 무언가가 주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국영수를 중점적으로.
문제 풀이를 중심으로.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기억하고 있느냐를 묻는 시험지 속에서
생각이 아니라 기억에 맞춰진 교육이
과연 우리에게 생각하는 힘을 키워줬는지 자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최우수 졸업생이 된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생각합니다.
나는 가장 말을 잘 듣는 강아지가 아니었나
라고 스스로를 되돌아봅니다.
단지 기억력이 좋은 강아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누군가의 기대 속에서, 누군가의 바람 속에서
그 들에게 맞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졸업과 동시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것입니다.
벌써부터 종종 들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제 너의 적성을 따라가라’ 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적성을 깨울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니,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12년간 국영수만 외치다가
갑자기 자신의 적성을 찾아라고 합니다.
꿈에 대해서 강론을 펼치고
행복에 대해 설파합니다.
지금 우리는 암담한 감옥에서 12년간 복역하다
세상에 나왔을 뿐인데,
세상은 우리에게 ‘그동안 대체 뭘한거야?’ 라고 묻습니다.
꿈이 없다고 하거나 모른다고 하면 책망의 목소리를 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교육이란
한 개인이 그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인간을 동일한 사고를 지닌 인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이 가진 능력을 안에서 밖으로 끌어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슬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학우 여러분.
우리는 이제 바야흐로 끝이 보이지 않았던 수렁에서 빠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동굴을 빠져나와 처음으로
태양과 마주한 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분명 이 태양이 두려워
다시 동굴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하고 자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고
삶을 당당히 선택하고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선택을 따라 살아가지 맙시다.
우리에게 드디어 ‘자유’의 길이 열렸습니다.
구속과 억압의 굴종을 떠나
관념과 약속이라는 잣대를 떠나
스스로 선택하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살아갑시다.
자유를 선택하는 이 길을 더 이상 미루지 맙시다.
여러분들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 늘 영광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글쓰기 좋은 질문) 이라는 책에서 주제를 발췌해 일주일에 한편씩 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