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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종 포화#4
게시물ID : readers_339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1
조회수 : 3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7/14 19: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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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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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시간. 사람들은 하늘이 붉어지기 전에 다들 학교를 떠난다. 진하는 교내를 돌아다니며 그 시간을 기다렸다. 구도심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아서다.

 한가로히 가습기를 틀어놓은 교장실에서 졸다가, 문득 마음이 동해 학교의 3관을 찾았다.

 학교는 총 4관과 부설건물 하나로 되어있다. 각 4관은 하나의 교차점을 공유하고 있고, 학생들이 사용하는 1관과 2관은 5층까지, 나머지는 4층까지로 되어있다. 그리고 부설 건물에는 급식소와 강당이 붙어있다. 커다란 학교다.

 학생용이 아닌 4관에는 교무실이나 방송실 등이, 진하가 향해가는 3관에는 동아리 부실들이 모여있다.

 3관의 3층, 복도 끝쪽에서 두 번째 교실의 문. 그 윗쪽 창문을 더듬은 진하는 먼지 앉은 창틀에서 열쇠 하나를 찾아냈다. 동아리실 열쇠를 숨겨두는 장소다. 3년 동안 아무도 훔쳐가지 않았다.

 '그럴 사람 없나.'

 속으로 피식거리며 그 열쇠로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연 진하는 하나 변함없는 동아리실 내부로 들어갔다.

 작년. 처음 학교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도 한번 들러볼까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아직 이곳에 소속되어있는지가 혼란스러웠다.

 덜컹이는 피난 차량에서 악몽을 꾸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진하의 경우엔 소속되어있던 모든 그룹이 건재하고 자신만 명분없는 부재를 저지르는 상태의 악몽을 수차례씩 연달아 꿨다. 그 꿈속에서는 친하던 사람일수록 매몰스럽게 진하를 책망했다.

 '좀비를 피해 도망치다 돌아오는게 늦었어.'

 그 당연한 대답이 평소 하던 지각에 대한 변명보다도 훨씬 터무니없는 거짓처럼 여겨져 차마 뱉을 수 없던 꿈이었다.

 아마 공포나 불안감의 돌연변이겠지만, 그것은 출처없는 죄악감이 되어 여전히 자리잡고있다.

 오늘은 어째서 기분이 동했을까. 모르는 사람들이 학교에 많이 찾아와서일까? 개인적인 도피처를 확보해두고 싶은 일종의 방어기제 일지도 모르겠다.

 내려앉은 먼지 속을 걸어 창문으로 다가가니 건너편 1관의 복도를 걷고있는 반장이 보인다. 방향은 도서실 쪽. 반장은 다른 사람들보다 학교가 잘 어울린다. 제대로 나이를 밝히진 않았지만 아마 아직 미성년자 같다. 3년 전에는 중학생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오른쪽부터 급작스레 내려닫히기 시작한 철제 셔터가 반장이 걷고있던 1관의 창문을 모두 덮어버렸다. 곧 진하가 있던 동아리실의 창문도 덮혔다. 순식간이었다. 오후의 태양광이 절삭되듯이 어둠이 떨어졌다.

 없는걸 알면서 주머니를 더듬었다. 핸드폰은 교실에서 충전중이다. 어둠에 대처할 방법이 수중에 없다. 전등 스위치의 위치는 기억하고 있지만 먼지가 쌓인 동아리실의 벽을 더듬어가며 스위치를 찾고싶지 않았다. 진하는 창문의 손잡이를 돌려 연 다음 철제 셔터쪽을 더듬어보았다. 셔터가 절대 쓰이지 않는 안전한 위치의 거점에서만 안내해주는 대처요령이 있다. 그때 숙지했던 내용대로라면 이 셔터는 안쪽에서 열 수 있게 되어있다.

 "...아. 찾았다."

 셔터의 오른쪽 끝. 작게 있는 홈 안에 새끼손가락을 집어넣고 가장 안쪽을 3초가량 누른다. 그러면 잠금이 풀리고 수동으로 다시 들어올릴 수 있게 된다. 꿀꺽. 락을 푼 진하는 셔터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겨우 삼사십여초 정도의 어둠 속. 이 조금의 충격과 자극에 이젠 훈련된 것처럼 상상하고 만다. 교정과 교실, 복도. 방금 전까지 보고있던 모든 풍경에 좀비들이 들끓는 망상. 몇번이고 그런 망상이 뻔뻔히 현실에 전개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이런 사소한 행동에도 용기가 필요해진다. 진하는 당장 관두고 싶은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다행히 교내의 풍경은 검은 셔터를 제외하곤 그대로였다.

 뒤를 돌아봤다. 복도는 음산해졌을뿐 걸어 나가기 충분한 윤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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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깜짝 놀란 여자는 손을 뿌리치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 가장자리가 막막한 어둠. 그 가운데를 뚫어놓은듯한 핸드폰 카메라의 플래시. 눈앞엔 핸드폰 액정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블로거가 있다. 블로거는 그녀가 모임의 소년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이름은 정식으로 소개한 적 없지만 언젠가 한번 들은적이 있다. 진하, 였던가?

 "집에 안가요?"

 블로거가 물었다.

 여자는 관성적으로 시계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다.

 "며..몇신가요?"

 "다섯시 사십이분인데요."

 아직 그렇게 어두울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둡지? 언뜻 바라본 창문이 있던 방향에 금속의 질감이 비쳐보인다. 블로거가 설명했다.

 "창문이 다 철제 셔터로 막혔어요. 3층은 열 수 있었는데, 1층이랑 2층은 안열리더라고요. 문은 아예 철판으로 막혀있고. 집에 가려면 3층에서 뛰어내려야 할 것 같은데 다리 튼튼해요?"

 "어.. 3층이면 부러질거 같은데요.."

 "농담이에요. 아마 학교를 폐쇄한 누군가가 있겠죠. 4관으로 찾으러 갈건데 같이 가실거에요?"

 여자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려 했다. 모험을 극도로 꺼리는 성향이다. 알 수 없는 사태라면 평소의 책상자리가 가장 안정된다. 그런데 블로거는 기다려주지 않고 손을 잡아왔다. 피하기 위해 손을 당겼다. 손목이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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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시체가 살아난 날. 미래의 학교 책상에서 낮잠을 자게 될 여자는 그날 백화점에 있었다.

 산채로 시체가 되는 광경은 괴기했다. 타이트한 제복 치마를 입고 화장품을 소개하던 직원의 눈동자가 두 덩어리로 쪼개졌다. 마치 잘못 생육된 세포처럼. 그 직원에게 목이 물어뜯긴 사람의 혈류가 천장으로 솟구쳤다. 화장품 코너에 새빨간 그라데이션이 퍼져나갔다. 찢어지는 비명소리의 숨통을 그르렁거림이 끊었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도망치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간다. 하지만 여자는 그러지 못했다. 갑작스레 태풍 속에 내던져져 숨이 막혀버린 사람처럼 그 난폭한 대피의 폭류에 휩쓸리지 못한 채 제자리에 못박혔다.

 눈앞의 사람 하나가 쓰러진다. 옷이 뜯겨나가 있다. 피부가 뜯겨나가 있다. 여자는 뒷걸음질 친다. 구석에라도 닿길 바라며. 상상. 차가운 벽에 등이 닿고 주저앉아 귀를 막는 상상을 하며 계속 계속 발을 뒤로 끌었다. 그때 뒷편에 사람없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죄를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주저앉은 그녀는 뒤돌아본 눈 앞의 텅빈 엘리베이터로 기어들어가 닫힘 버튼을 눌렀다. 좀비가 이곳을 바라본다.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달려온다. 연달아 눌렀다. 달려들었다. 버튼을 악에 받쳐 때렸다. 좀비의 이빨이 닫힌 엘리베이터의 바깥문에 쳐박혔다.

 여자는 문이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다른 층의 버튼을 아무렇게나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그녀의 패닉을 멈추고 혈관계를 재동시켰다. 목 위로 산소가 다시 돈다. 그리고 띵하는 도착음 소리가 심장을 떨어뜨렸다.

 문이 열리는 모습을 비현실적 광경처럼 주저앉아 바라본다. 5층.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 방금 엘리베이터 소리 아니야? 저..저쪽! 달려! 저쪽!!"

 복도 코너 밖에서의 희미하고 먼 목소리.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리고 그르렁 거림이 섞여있다. 정신을 차린 여자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닫힘 버튼을 눌렀다. 달려오는 사람이 코너를 돌기 직전 문이 닫혔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여자는 황급히 버튼 패널을 보고 가장 높은 층을 눌렀다. 9층.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다시 짧은 고요가 찾아왔다. 어떤 층에서는 닫힌 문 바로 너머에서 난폭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소리만 엘리베이터의 금속 문을 넘어왔다. 끼쳐오는 소름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곳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지 않은 것이 천행이었다. 눈물이 치밀었다.

 그리고 9층. 여자는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 선 채 숨을 죽이고 정면을 주시했다. 문이 열린다. 정적. 어떤 소리도 인기척도 없다. 개장 예정인 영화관이었다. 평소같았으면 아직 개장되지 않았다는 안내를 하러 다가왔을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도 좀비도 없다. 여자는 드디어 한모금 정도의 안도를 삼켰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히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여자는 열림 버튼을 매달리듯 찍어눌렀다. 문이 다시 열렸다.

 '혹시 내려가려던 거였을까?'

 반쯤 주저앉은 채로 층수표시계를 올려다봤다. 내려갈때를 표시하는 아랫화살표에 불이 켜져있다. 5층에서의 그 사람들이 눌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좀비에게 쫒기고 있었고, 여자는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내려가서 귀를 대고 확인하고 싶다. 무슨 소리가 나는지 정도는, 그 사이가 철저히 가로막히리란 보장만 있다면. 하지만 방법은 몰랐다. 이 손을 놓으면 엘리베이터는 다시 내려가고 그곳에 도착해서는 문이 열릴 것이다. 여자는 버튼을 붙들고 숨죽여 흐느꼈다.

 그때 옆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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