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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쥐덫
게시물ID : readers_148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ogy
추천 : 5
조회수 : 331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8/13 15: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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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의 인생은 한 편의 문학이며 모든 이는 한 명의, 작가이다.
당신의 인생, 책게에서 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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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실에서 박병도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일곱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나 밖은 아직 밝은 채였다. 혜란은 숨을 죽이며 방문을 열었다. 낡은 경첩이 삐걱이며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박병도는 깨지 않았으나 혜란은 제자리에 못박힌 채 움직이지 못했다. 박병도는 소리에 민감했다. 특히 여자의 비명이나 쇠가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독히도 싫어했다. 몸이 간신히 빠져나갈 만큼의 틈을 만든 혜란은 방 밖으로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오래된 비닐 장판은 혜란을 놓지 않으려는듯 혜란의 발을 끈질기게 잡아붙들었다.
  방에서 현관까지의 거리는 고작 다섯걸음 남짓이었으나 현관에 도착하기까지는 삼 분이 넘는 시간이 걸린 듯했다. 어쩌면 오 분일지도 몰랐다. 혜란은 천천히 잠금쇠를 돌렸다. 그때였다.

  이 씨팔년이

  육중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박병도가 한 달음에 달려왔다. 혜란의 머리채를 잡아챈 박병도는 혜란을 깔아눕히곤 주먹을 내질렀다. 비명을 삼킨다하여 고통마저 삼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박병도의 주먹이 혜란을 후려칠 때마다 혜란의 고개가 자지러지듯 꺾였다. 이, 개같은, 년이, 또, 지랄을, 해. 박병도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숨에서는 지독한 술냄새가 났다. 혜란에게 폭력은 익숙한 것이었으나 동시에 익숙해 질 수 없는 고통이었다. 어느새 거실까지 굴러온 혜란의 몸뚱이 곳곳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새겨졌다. 멍자국은 일종의 낙인이었다. 멍자국이 지워지기 전에 몸 곳곳엔 다시 새로운 멍자국이 생겨났다.

  이젠 울지도 않아, 이년.

  박병도가 바지춤을 풀어내리자 혜란은 튀듯이 일어나 박병도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무자비한 폭력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오래지 않아 박병도는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혜란을 걷어찼다. 혜란은 입가를 치마로 닦곤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다. 오래된 밥솥에서 쉰내가 났다. 쌀을 씻고 밥을 앉히며 혜란은 천천히 저녁 준비를 했다. 박병도는 바닥에 누워 텔레비전을 틀었다. 여덟 평 남짓의 집은 밥솥이 돌아가는 칙칙 소리와 이따금씩 박병도가 내뱉는 실소로 가득찼다. 

  막 지어낸 밥을 박병도의 밥그릇에 담고 혜란은 누렇게 뜬 밥에 김치국물을 부었다. 밥상에 김치밖에 없어 시팔, 박병도가 욕을 내뱉을 때마다 혜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혜란은 냉장고를 뒤지는 시늉을 했으나 별달리 내놓을 음식이 있을리 없었다. 내일 돼지고기 사올테니까 김치찌개나 끓여. 혜란은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생리대가 없어요.
  애 배면 생리도 안해.

  박병도의 말에 혜란이 움찔했다. 얼마 전 혜란이 숨겨둔 피임약을 찾았을 때 박병도는 하루 밤낮을 쉬지않고 혜란을 두들겼다. 이제는 마저 숨겨둔 피임약도 거의 떨어져가는 차였다. 구할 길이 막막했다. 언젠가 혜란이 도망쳤던 날 이후로 병도는 집을 비울 때면 바깥에서 채우는 자물쇠를 단단히 걸어잠궜다. 차라리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사 층 아래의 바닥은 단단한 콘크리트였다. 아래를 보다보면 혜란은 마치 바닥으로 빨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잘 하면 한 두군데나 부러지고 끝날 수도 있을 거였다. 아니면 머리가 깨져 죽을지도 모른다. 혜란은 투신한 시체를 본적이 있었다. 어렸을 적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화단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혜란은 무리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흰 천에 덮여 들것에 실려나오는 것은 머리가 조각나고 온 몸이 뒤틀린 혜란의 엄마였다. 사람들이 혜란의 눈을 황급히 가렸으나 머리의 반쪽이 사라진 엄마의 모습은 선명했다. 어느 영화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림이었다. 화단엔 시커먼 고깃덩이가 울컥울컥 피를 토해냈다. 혜란은 엄마와 같은 모습으로 죽고싶지 않았다. 

  게걸스럽게 밥을 해치운 박병도는 그대로 드러누웠다. 병도는 머지않아 다시 잠에 빠질 것이다. 혜란은 그릇을 씻으며 이 집에 처음 들어온 날을 생각했다. 비가 쏟아지던 밤, 길바닥에 누워있는 혜란에게 박병도는 삼 만원을 건내며 혜란을 집으로 이끌었다. 따라 와. 박병도의 한 마디에 혜란은 고개만 끄덕이며 박병도를 따랐다. 이후로 박병도의 집에는 종종 남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박병도를 박실장이라 불렀다. 박병도가 눈짓을 하면 혜란은 방으로 들어가 남자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혜란은 거실에서 들리는 고함에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박병도와 누군가가 싸우는 모양이었다. 싸움이라기보단 남자의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남자의 주먹이 박병도의 얼굴을 강타하며 어금니가 날아갔을 때, 혜란은 부엌에서 칼을 뽑아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남자는 이미 쓰러진 이후였다. 식칼은 어느새 박병도의 손에 들려있었다. 남자를 찌른 것이 혜란인지 박병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박병도는 시커멓게 변해가는 식칼을 싱크대에 던져놓고 혜란을 방으로 밀어넣었다. 혜란이 방에서 떠는동안 거실에선 한참이나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씩 물을 트는 소리와 함께 박병도의 한숨이 섞이곤 했다. 그날 이후로 박병도의 집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리로 와 봐.
  설거지 할 게 좀 남았어요.

  박병도는 혜란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숨에서는 짐승냄새가 났다. 아까 맞은 턱이 아파왔다. 내일은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만들 것이다. 그 다음날은 된장찌개를, 어쩌면 콩나물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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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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