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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젊은이여 매국노가 되라!!
게시물ID : humorbest_1480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눈마새
추천 : 138
조회수 : 2401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6/10/25 14:29:15
원본글 작성시간 : 2006/10/25 13:24:23
[당연히, 제목 역설법 입니다.-_- 섣부른 태클금지.]
베오베 간 -신채호 선생이 무국적...-을 보고 떠오른게 있어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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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허위선생 후손들 ‘100년만의 귀향’ ----
 

구 소련과 중국에서 각자 떨어져 살다 지난달에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왕산 허위의 후손들. 항일 운동으로 탄압을 받아 국외로 뿔뿔이 흩어졌던 그들이 조국 땅을 밟는데 10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후손들은 고국으로부터 외면당했지만, 돌아온 게 꿈만 같다고 했다. 오랜 세월 고초를 겪었지만 고국의 공기를 마시게 된 것만 해도 고맙다고 했다. 이들의 귀국 후 생활, 타국에서의 인생 역정, 다시 찾은 고국에 대한 느낌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키르기스스탄서 온 허게오르기 형제 

“말만 들었지, 이렇게 발전한지는 몰랐어. 우리 아버지가 이 땅에서 내몰린 뒤 남은 후손들이 이만큼 해 놓은 거야.” 

의병장 왕산 허위의 손자로 키르기스스탄에 살다가 지난달 한국 국적을 취득한 허게오르기(62)씨와 허블라디슬라브(55)씨 형제에게 고국이 무관심한데 섭섭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아버지에게서 듣던 조국에 돌아왔지만, 한동안 이들은 발붙일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했다.1907년 13도 창의군 편성을 주도한 의병장 왕산은 밀고로 붙잡혀 1908년 교수형을 당해 순국했다. 그뒤 왕산가 사람들은 일제를 피해 중국과 러시아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헤이룽장에서 온 허금숙씨 

“1995년 아이들 대학 학비를 벌어보려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10년 동안 제가 누구 손녀인지 알고 박대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죠.”왕산의 바로 윗형 성산 허겸은 역시 의병활동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갔다. 성산의 손녀인 허금숙(59)씨는 한국에 들어와 모진 고생을 했다.1992년 정부는 허금숙씨의 할아버지 허겸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주었지만 허씨는 10년간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해방전 귀국한 허벽씨 

만주로 망명했다가 해방이 되기 직전에 국내로 들어와 고국에서 살 수 있었던 왕산의 먼 친척 허벽(71)씨는 허게오르기씨 등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각종 자료를 간직해 왔다. 조국에서도 독립유공자 후손의 삶은 편치 않았다. 일제 때 도망다니느라 남은 재산이 없었고, 해방했을 때까지 이국만리에서 떠돌고 있는 어른들 대신에 허벽씨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으니까 굶는 것보다 ‘누구 후손이 비겁하게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게 더 무서웠었지. 벌 받을 말이지만 때론 조상들이 짐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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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젊은이여, 매국노가 되어라! 

일신[一身]과 가족과 가문을 다 바쳤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하지만, 돌아온 조국은 그들을 버렸다. 
일신[一身]과 가족과 가문이 부귀영화를 누렸다. 조국을 팔아먹고, 일제 앞잡이가 되어! 
하지만, 돌아온 조국은 그들에게는 영광을 드렸다. 
잘 한다. 그대 이름 조국과 그의 후손들이여!! 

목숨 바쳐 의병운동 일으킨 의병장은 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고 

그의 가문과 후손은 이국만리를 떠돌며, 대를 이어가면서 조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불법체류자 대접받도록 만드는 그대 이름 조국과 그의 후손들이여! 

독사신론을 통해서 민족을 계몽시키고 침략자에게 허리 굽힐 수 없다하여 꼿꼿이 서서 세수하며, 민중직접혁명을 통해서 침략자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외치다가 뤼순 감옥에서 고문후유증으로 죽어간 단재[신채호]선생에게 국적조차 주지 않고 반세가 지난 오늘까지 영혼조차 거처할 곳 없어 구천을 떠돌도록 만드는 그대 이름 조국과 그의 후손들이여!! 

대한민국의 젊은이여 

병신 바보 천치가 아니라면 

앞으로 남의 나라가 대한민국을 침략하고 집어 삼키려거든 절대로 맞서 싸우지 말고, 그를 팔아먹는데 앞장서거라! 
그래야, 너희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되느니라!! 
만약, 조금이라도 조국을 위해서 몸 바쳐 싸우려다가는 그대 후손 대대로 가난과 외면과 괄시를 당할 것이며, 그대 육신조차 조국은 받아주지 않을 것이며, 그대 후손들은 그대가 목숨바쳐 지킨 조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가난과 멸시 속에서 불법체류자가 되어서 살아가게 되리라!! 


참으로 참담하구나! 

그저께 단재 선생을 존경한다면서 학생들에게도 본받으라며 미친듯이 열강하고는 집에 가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니,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유산을 되찾자"는 프로에서 “단재 선생의 호적이 무국적”이란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는데, 그 내용인즉,  해방 후에 새로이 만들어진 호적에 독립운동 하다가 죽어간 분들 중에 단재선생님처럼 400여명이나 이런 신세에 놓여져 있으며, 국회 에 개정 법률안을 상정했지만, 1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이 국회가 어느 나라 국회인지 정말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 방송 끝에 단재 선생님의 며느리가 한 말은 이틀이 지난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뭐하려고 독립운동하셨는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매국노가 되었더라면....." 

어제 강의에서도 “의병장 허위 선생”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을미, 정미의병을 통해서 참으로 위대한 분이라면서 열변을 토했건만, 지금 이 기사를 보니, 이런 조국의 현실도 알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독립운동 운운했던 내가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이런 오늘을 보니, 학생들에게 독립운동 가르칠 자신이 없어진다.

참담하다. 
  

내일이 다시 찾아온 광복절이다. 

독립운동하다가 죽어간 그분들 뵙기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 과연 내일 아침에 태극기를 걸 수 있을지, 용기가 나질 않는다. 

부디, 내년 광복절에는 태극기를 걸 수 있는 조국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내 나이 더 들기 전에 독립운동하신 분들과 그 후손들 뵙기에 부끄럽지 않게 학생들에게 당당하게 허위선생과 단재선생을 가르칠 수 있는 조국과 후손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더 이상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여, 매국노가 되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 조국과 후손들이 되길 더욱 간절히 기도한다. 

 

 

 

                                                                           2006년 8월 15일을 하루 앞두고

 

                                                                          힘없이 독립운동을 가르쳐야만 하는 

                                                                          서른일곱의 한길샘

 

 

덧붙이는 글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그를 위한 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그 법률에 반대한 많은 의원들을 왜 반대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으며, 그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반대했는지 한 번 쯤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해방 50여년이 지난 지금 와서도 흔히 친일파 후손들과 친일신문을 읽어 그 논조에 동조하게된 많은 사람들은 말하길, "일제시대 일제에 동조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냐? 지금 와서 그러는 것은 연좌제가 아니냐?"고 덮어씌우려 하지만 이건 모순이다.  독립운동하던 사람을 탄압하고,  밀고하고, 고문했던 사람과 단순 창씨개명과 함께 동조한 사람은 다르며, 매국에 적극 동참하고 선동하므로 해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고 35년간 부귀영화를 누린 친일파와 가난과 고통에 찌들려 어쩔 수없이 지시를 따른 사람과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며, 현재 진행중인 법과 조사는 모두 전자를 조사해서 밝혀내려는 것이며,  또, 지금와서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행적에 대해서 분명히 조사해서 밝혀두고 기록해두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독립운동했던 사람과 매국노에 대한 행적과 평가가 이루어 질 것이며, 그래야만 독립운동했던 사람과 후손들은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래야만 다시 조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감히 조국을 위해서 목숨바쳐서 나라를 지키려는 후손이 나올 것이다. 

또한, "경제도 어려운데, 뭘, 다시 과거 이야기를 꺼집어 내어서 조사하고 국론을 분열시킨다는 말이냐?"는 말로 이런 작업을 얼버무리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주장은 황당하다. 이런 조사하고 경제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경제는 경제이고, 조사는 전문 위원들이 조용히 조사하면 되는 것이다.

1948년에 "반민특위"에서 친일파 조사하다가 이승만정부의 탄압으로 결국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결국 5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와 같은 눈물어린 슬픈 기사를 읽게 되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노래하고, 조국을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할 역사 선생이 "매국노가 되어라"는 말을 해야하는 이 슬픈 오늘을 이제는 더 이상은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지는 말고 우리 세대에서 분명히 매듭지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출처. ㅁㅁ스터디,전한길 선생님 페이지 공지사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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