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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병신세대
게시물ID : readers_148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쌈닭
추천 : 7
조회수 : 347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4/08/13 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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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게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저도 사실 처음입니다. 우리 자주 들어와요.^^
 
 
 "매~~~~~~~~~앰,맴,맴,맴,맴,맴"
아침부터 매미가 운다.
하필이면 아파트 9층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서 미친듯이 운다.
귀가 찢어 질듯한 소리에 깨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가 베란다 방충망을 손가락으로 톡 치면 그제서야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꿈뻑거리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아.. 오늘도.. 나는 역시..' 화장실로가서 거울을 보면 부스스한 머리에 이마에는 '내 천 자'를 그린 핏기 없는 피부를 가진 무료한 내가 서있다.
샤워기의 따뜻한 물을 머리에 부으며 잠을 깨본다. 매일 10시 쯤이면 각성해본다.'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지, 오늘은 망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이다.
그동안 임용 시험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이리 저리 만남을 피하다 오늘은 기필코 보자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나가야만 한다..
'귀찮다..입을 옷도 없는데... 민아는 대기업에 들어갔고.. 선영이는 고등학교 국사 교사.. 현진이는 대학병원 간호사.. 민주랑 나만 개털이구나..
흑.. 애들 오랜만에 본다고 분명히 잘 차려 입고 나올건데.. 아 정말 가고 싶지 않다..'
대학교 동창이었다면 분명히 피했을 모임이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는 초,중,고를 함께 졸업했기 때문에 얘들 마저 연락이 끊기면 혼자 서울에서 자취하는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독사로 발견될지도 모른다. 정말 슬픈 현실이다.
 
 내가 원래 이랬던건 아니다. 매미 소리에 깨서 아침늦게 일어나는 여자는 아니었고, 지금 처럼 입을 옷이 없어서 대학생 때 입고다녔던 검은색 A라인 스커트를 입었을 때, 스커트가 무자비하게 '님 배 튀어 나오셨는데요..극혐'이라고 말할정도로 자기관리가 안되는 여자가 아니었다.
이게 다 사회 때문이다. 사회가 매정해서 내가 이렇게 된거다.
 
 3년전 나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회사에 들어갔다. 
기쁨은 잠시 뒤로하고 일이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아직 까지 학생인줄알아요?, 여기 사회에요.. 실전이라구요'"라고 말하며 매번 갈구던 그 여자 대리님의 목소리와 얼굴은 내 평생 죽어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아.. 아직도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매일 울면서 일하고 '아 이일은 내 적성에 맞지 않구나, 모두에게 민폐를 주기전에 빨리 뜨자'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사표를 쓴건 내 인생에 커다란 흑역사.
엄마도 울고, 아빠도 울고, 동생동 울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더 내 꿈을 내가 꺾어 버린게 더 슬펐다. 죽으라고 내 목을 조른건 다른 사람의 야단이 아니라 내 자신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한동안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벽만 봤다.
 
그리고 도망치듯 노량진으로 떠나 임용시험을 2년째 준비중이다. 그 거지 같은 여자는 내게 조금의 자비를 베풀 수는 없었던 걸까?,, 매일 거지 같다고 생각하면서 책상에 앉아만 있었다.. 임용?.. 그딴거 관심없지.. 그냥 하는거지뭐.. 할꺼 없으니까.. 검정 스커트 땡 탈락, 무난하게 청바지 당첨.
다들 사회 생활 하느라.. 민주랑 나 빼고는 정장 입고 올것 같은데.. 나는 아직 청바지에 백팩이구나.. 그래도 대학교를 졸업한 성인 여자인지라 향수는 뿌리고 나간다. 그리고 구두, 입사 할 때 샀던 내 십오만원짜리 귀요미 구두, 청바지에 어울릴 듯 아닐 듯 하지만 신을게 이것 밖에 없다.
정말 슬픈 현실이다.
 
"또각, 또각, 또각" 오랫만에 신은 구두가 좋은 소리를 낸다. 매일 운동화만 신다가, 오랜만에 구두를 신으니 뭔가 갖춰졌다는 느낌이 든다.
토요일 오후의 여름 햇살이 뜨겁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아스팔트는 열기를 함빡 머금고, 플라타너스 나무들의 녹음은 더 짙어 진다.
해가 너무 높이 떴기 때문인지 나무는그림자를 조금밖에 만들지 않는다. 오늘 같은 오후의 지금 이 시간은 걸어다니기에는 너무 힘겹다.
"또각, 또각, 또각, 퍼억,,파박" 구두 뒷굽이 깨졌다. 찌는 더위 때문인지, 살찐 나 때문인지, 3년만에 신은 내 구두 뒷굽이 깨졌다. '
' 아 되는게 없네..'하필 오늘.. 지금이야.. 약속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고치는데도 시간이 드는데.. '
눈물을 머금고 병신 같이 절뚝 거리며 걸어본다. 구두 굽이 높지 않아서 조금만 연습하면, 안 깨진것 처럼 걸을 수 있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뒷꿈치를 들고 안 깨진척 걸어보자'
"또각, 뚝, 또각, 뚝" 구두 소리가 영 좋지 못하다.
 
 찌는 더위에,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바람 한 점 없는데, 병신 같은 구두를 신고 약속장소를 향하는게 너무 힘이 든다. 멀리 카페에서 친구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나.. 어엿한 사회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춘 친구들이 앉아 있다. 만날 때는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 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입장한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부는 이곳은 방금 전 까지 서있었던 찌는 듯한 밖과 얇은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을 두개로 나누는것 같았다.
 
"안녕, 얘들아 오랜만이야", "지연아, 오랜만이야, 너 공부한다고 자주 연락 못했었는데, 이렇게 봐서 너무 좋다, 얘 공부도 공부지만 연락좀 하지 그랬어, 안심심했어?", 외무고시 준비하다 불안해서 써본 대기업에 합격한 민아가 하는 말이다. 지가 고시 준비할 때는 폰도 업앴던 기집애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 그래 민아야, 자주 연락 했어야 하는데, 그래도 만나서 반갑다"
 
" 지연아.. 너 2년째 임용 준비 중이지?. 이번에 진짜 되야겠다.  3년 넘어가면 너도 힘든거 알지?" 만나자 말자 폭풍잔소리를 하는 주인공은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을 하고 있는 선영이다. '그래.. 내가 이 소리 안 들으려고 안 나오려고 했는데.. 역시 너야 김선영..' " 그래.. 이번에는 합격해야지.. 그래도 걱정해주는건 너밖에 없다 얘" 눈물을 머금고 좋은소리로 바꿔 말한다. 왜냐하면 오늘 밥은 얘들이 살꺼니까.. 정말 슬픈 현실이다.
 
" 얘, 너네는 지연이 보자 말자, 그렇게 잔소리야.. 지연아 정말 오랜만이다.. 앞으로 볼 수 있으면 자주 보자" 민주.. 학비 때문에 대학교 휴학했다, 알바했다, 휴학했다, 알바하고.. 이제 마지막 학기로 알고있다. 정말 열심히 산 민주, 민주를 보니 괜히 부끄러워 진다.
 
"현진이는 아직 안왔나 보네?"
"현진이는 나이트 출근하고 나와서 너무 피곤해서 못 나오겠데, 다들 바쁘지.. 나도 어제 야근하고 나와서 힘들어 흑, 선영이 너는 방학해서 좀 편하겠다."
"편하기는..방학때도 출근해서 보충수업해야지, 연수도 가야되지, 학회도 가야지, 학생지도에.. 아우 바빠 죽겠어. 오늘도 시간내서 겨우 나온거야 내 다크써클 내려온것 좀 봐"
다들 바쁘구나. 나는 하나도 안 바쁜데.. 근데 바빴을 때 생각하면, 다시는 바쁘고 싶지 않다. 뭐하러 저렇게 아둥바둥 사나 싶다.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어 사람들이 이렇게 쓸데 없이 미친듯이 바빠야 하다니, 과연 바쁜 만큼 효율있게 일하는걸까?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거지?.. 우린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어..
" 지연아 뭔 생각해?" 민주가 팔뚝을 치며 묻는다. "음 아니야, 그냥 어제 공부한 것 좀 생각했어"
"오올, 이지연, 완전 공부에 완전 푹 빠졌나 보다. 시도때도 없이 복습해?.. 깔깔 거리는 친구들의 웃음사이에 할 말도 없고 생각은 더 깊어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목소리는 더 높아지고, 자기들끼리 회사 얘기에, 남자얘기에 신나서 떠들고 있다.
얘들은 벌써 저 앞에까지 나가있는데 나는 참 많이 뒤쳐지고 있구나, 별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네덜란드로 출장 가게 됐어, 선물 사올게 네달란드에 뭐가 유명하지?"
" 저번이 두번째 스승의 날이었어, 처음 만큼 뭉클 하기도 했고, 벌써 2년 차라는게.."
 
" 민주야.. 쟤들 신났다.. 넌 어떻게 지내?.."
" 아.. 난 이제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야..겨우 대학 졸업하는 구나 싶어"
"그래 너 고생 많이 했어, 근데 대졸이면 뭐하냐.. 막상 취업해도.. 세상이 더러워서 참 일하기 싫다.."
" 그래.. 세상 더럽지.. 뭐 나도 알바하면서 이꼴 저꼴 다 봤지.. "
" 근데도 사회 생활 하고 싶어?.. 난 정체기야. 모든게 다 stop"
" 그렇구나.. 근데 난 하고 싶은게 있어서.. 너도 알지? 나 정책 쪽에 관심 많은거.. 그래서 이번에 코피온에서 주관하는 project 참여해서, 내년에 아프리카로 갈지도 몰라"
" 뭐?.. 요즘 아프리카 에볼라로 한창인데 거길 간다고?.. 얘 너 조심해라.. "
 
얘도 그냥 꿈만 꾸는 애구나.. 현실도피 아닌가 싶다.. 정책?.. 참 추상적이다.. 아프리카.. 가고 싶지 않다.. 나라면..
차라리 민아처럼 기업들어가서 돈벌고 경력 쌓든지 아님 선영이처럼 안정적이게 교사하던가하지..
뭐 열정페이 주는것도 아니고 뭣하러 아프리카로.. 쟤도 알바하면서 사회 경험 좀 했을 텐데 정신 못차리네.. 쯧..
그리고 민아는 기업 들어간 건 돈 많이 버는건 좋은데.. 참.. 자기 꿈 포기하고 그냥 일벌레로 사는구나.. 그 기업 크기만 하지 이미지도 안 좋은데..
선영이는 지금은 신참 교사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공교육 무너진지가 언젠데 고지식해가지고 애들한테나 인기나 있을지 모르겠다.
참.. 모두들 불쌍한 인생이다. 그리고 몇 년 지나고 나면 날 갈궜던 그 여자 상사처럼 쟤들도 자기것 지키는것에 표독해 져서 밑에사람 함부로 갈구겠지
그럴 바엔.. 그냥 이렇게 있는게 나을지도.....
 
앞에 놓인 아이스 커피잔에 수증기가 송글송글 맺혀서 뚝뚝 떨어진다. 괜히 한번 커피잔을 집게 손가락으로 스윽 긁어 본다.
물기가 묻어 나온다. 오른쪽 다리를 꼬고 앉아 다리를 떨어본다. 깨진 뒷굽이 달랑 달랑 거린다.
이 병신같은 구두를 신고 또 집으로 가야한다. 깨지지 않은 척 조심스럽게 걸어야 한다. 구두가 병신인걸 들키면 마치 깨진 구두를 신고다니는 병신처럼 보이니까.. 구두를 고쳐야 하는데..
구두..구두..구두.. 구두 신고.. 일하러 가야하는데...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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