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이라면 SKY의 꼬리 하나 정도는 잡을 수 있을거란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하고 뛰어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책에 매달리게 되었고, 중학생 때부터는 드디어 우리 집안에서도 서울 명문대생이 나오겠구나 라는 기대감을 짊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기대를 보태주신 건 부모님이었고, 달마다 쌓이는 인강비와 교재비는 솜같던 기대감에 들이붓는 물 같았습니다.
첫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원하던 대학이 아니었고, 원하던 과가 아니었습니다. 친척들은 고생했다며 어깨를 두드렸지만 부모님의 표정을 보고 저는 미련없이 자퇴원서를 낸 뒤 재수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장학금을 주는 학원을 찾았고 저녁급식은 돈이 아까워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5시간 이상 잔 날은 손에 꼽습니다. 그렇게 반 년을 살았고, 그렇게 고대를 갈망했고, 그렇게 합격했습니다.
결과로 바뀐 기대감이 얼마나 달콤한지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합격소식을 들은 부모님의 표정을 보는 건 어떤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짜릿했습니다. 노력이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확신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엄청난 무기가 된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한 살 늦은 새내기 때 학교를 다니며 부모님께 감사했고 또 부끄러워 했습니다. 물질적으로 부족하되 정신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키워주신 것에 대해, 건강하게 낳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고 한 때 내 자신이 불행하다며 돈과 가난에 집착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는 자꾸만 제 자신을 흔듭니다. 노력에 대한 확신은 점차 흐릿해져 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노력은 국어사전과 다른 의미일 것 같아서 입니다. 또 누군가는 말 위에 올라탔고 누군가는 페이퍼 위에 올라탔지만, 내가 올라탔던 건 부모님의 등이 아니었나 싶어 어제와 엊그제 잠을 설쳤습니다.
고대 슬로건 중 젊음을 고대에 걸어라, 고대는 세계를 걸테니 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 가슴 벅찬 말입니다. 이제 저는 무엇을 걸어야 하고, 고대는 무엇을 걸 수 있습니까.
제가 고파스 글을 올려드리는 것은, 도대체 왜 학생들이 오늘 집회에 참석하려고 하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신것 같습니다.
자유한국당 모 의원이 숟가락 올릴려다가 고려대학교 재학생 30명정도가 댓글에 패드립치면서 눈치도 없냐고 꺼지라는 뉘앙스로 말해서 철회되었습니다. 이번 집회는 정치적 목적의 집회가 아니라, 그 동안 노력해온 결과물들이 부정당한것에 대한 분노를 느낀 가재, 개구리, 붕어들의 입학처를 향한 의사표현입니다. 물론 고려대학교 입학이 무효된다면, 의전원 입학도 당연히 무효될것이며 정치적 파장도 발생하겠죠.
시위를 주최하시는 분은 현재 5번의 수능을 치르시면서 한의대를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의 블로그와 고파스글에서 현 사태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후원금은 모두 반환하며 고려대학교 구성원 자발적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내일 집회는 고려대학교 학생 및 졸업생만 입장이 가능하며 학생증을 통해 인증합니다. 이번 집회를 통해 기회는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실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