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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인간 유래의 괴물 - 3
게시물ID : readers_341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1
조회수 : 42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9/02 21:45:12

 '뭐, 버스가 안에서만 살다가 밖으로 나가보려 하는 거니 비유가 반대로긴 하지만.'

 그럴 가치가 없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만큼은 그리 틀린 비유도 아니었다.

 예전 한 비상 보도국 아나운서가 좀비에 대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절대 줄여 없앨 수 없는 쓰래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상했고 부패했으며 죽여 없앨 수 없는 쓰래기가 세상에 천지다. 세균 박멸률 99.9퍼센트의 항균 탈취제를 들이 붓는다 해도 좀비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징그럽고 더러운 몰골은 평생 그대로일 터이며, 여름이 됐으니 오히려 더 심해지겠지. 어우 끔찍하다. 그런 것들과 생존경쟁을 붙는 건 질색이다.

 붉은 후드는 그냥 오가스의 진압드론이 돌아다니며 살벌한 청소를 반복하는 새빨간 세상을 겸허히 받아드리고, 평생 눈치 보며 도망 다니고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자기 집이 없는 게 대체 뭐가 그리 불안하단 말인가. 집이 생기면 발 뻗고 잘 수 있나? 언제 좀비들이 몰려와서 온 전신에 봉창을 다 두드려댈지 모르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버스는 참 고마웠다. 아마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것 중에서는 가장 쾌적하고 튼튼한 차량일 것이었다. 면역 판정을 받아 피난 거점에서 퇴출당하는 막내아들의 안전을 떠맡기기 위해 어떤 기업 회장이 이해타산의 선물로 준 것이지만, 막상 받아보니 도련님을 평생 데리고 다녀도 거스름돈이 남을 만큼 대단한 물건이었다.

 붉은 후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휠체어에 앉은 도련님을 돌아봤다. 그 손에 쥐어준 기관단총을 품에 꼭 안아 들고 있다. 아마 쏘는 법도 모르면서 주니까 그냥 들고 있는 거겠지? 좀 귀엽다. 이 도련님은 데리고 다닌 지 꽤나 되었는데도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어딜 가던 불평한마디 없이 따라온다. 그런 점이 보호욕을 좀 자극하긴 하지만 걱정도 된다.

 그때였다. 도련님이 빤히 바라보던 버스의 정면 유리에 메세지가 나타났다. 읽을 수 없는 문자열. 언젠가 본, 사람간이 아닌 프로그램간의 경계경보와 그 메세지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붉은 후드가 떠올렸을 때, 메세지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버스의 전방 유리를 가득 덮어버렸다.

 '뭐야 이거?! 무슨 바이러스 같은 건 아니겠지?!'


###


 "컴돌아..! 일어나봐..!"

 20시간만의 수면. 살인적인 딥슬립에 빠져있던 인호는 자신을 컴돌이라 부르는 붉은 후드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붉은 후드는 컴돌이가 한쪽 눈을 반쯤 뜨자마자 여전히 비몽사몽 하는 것은 아랑곳도 않고 침대에서 끌어내어 버스 앞칸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붉은 메세지로 가득한 정면 유리창 앞에 앉혔다.

 알이 굵은 안경을 고쳐 쓴 컴돌이도 그 위협적인 양의 메세지를 보자 잠이 달아나는 표정이었다. 이 전차와 같은 버스는 물리적으로는 굉장한 오버스펙이었지만, 시스템 보안은 그저그런 아쉬운 수준이었다. 세상이 대충 망해버린 것에 힘입어 활개를 치는 아마추어 해커 조무사들이 뿌려댔던 이미 알려진 바이러스에도 무시 못 할 피해를 입은 적 있을 정도였고, 그럴 때마다 컴돌이는 과잉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어..이거.. 그러니까.."

 재빨리 자신이 설치해뒀던 몇 가지 프로그램이 제대로 동작하고 있는지를 확인한 컴돌이는 단말기를 연결 한 다음 메세지를 몇 가지 타입으로 개별 분류해 표시했다. 몇몇 문자열을 단말기의 데이터베이스에 대조해보던 컴돌이가 말했다.

 "이게 아마 여기 보안시스템 같은데.. 차내에 타고 있는 저희를 좀비라고 착각한 건지 버스에 강제 폐쇄를 시도했어요. 근데 예전에 설치해둔 바이러스 대응 프로그램이 그걸 반격해버려서..."
 
 이전에 비슷한 바이러스 탓에 버스 안에 갇혔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붉은 후드가 물었다.

 "반격했어?"

 "자동으로 이미 해버린 거라.. 아마 이제 곧 해제될 거에요.."

 하아암. 심각하지만 피곤한 상황. 도련님은 하품을 하는 컴돌이를 보며 어려 보이는데 참 고생이 많다고 생각했다. 컴돌이의 이제 곧이란 말대로 그 많던 에러메세지가 순식간에 일소되기 시작했다.

 "이건 전에도 한번 겪었던 문제... ...앗."

 깜짝 놀란 컴돌이의 눈이 전에 본적 없이 커졌다. 그에 따라 도련님도 같이 놀란 눈이 되었다. 지하주차장 어디선가 철망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 열리는 소리도 이어졌다. 한둘이 아니었다. 붉은 후드가 당황하며 물었다.

 "뭐..뭔데?"

 "그.. 보안 코드가 해제 됐는데요, 그래서 여기 근처에 같은 보안코드를 쓰던 잠금장치가 다 풀렸을 거 같은데요."

 "...? 무슨 소린데?"

 "근처 어디 폐쇄돼있던 장치들이 다 풀렸을 거에요. ...좀비가 없는 데면 좋겠네요."

 "아니 씨 지금 그걸 말이라고..!"

 아까 전 컴돌이는 분명 버스에 타고 있는 우리를 좀비라고 착각해서 폐쇄가 시도됐다고 말했다. 버스 밖으로 뛰쳐나간 붉은 후드는 자세를 낮추고 철망 소리가 난 방향으로 귀를 기울여보았다.

 "..."

 온다. 무언가가 엄청난 기세로. 그것도 두 발로 달려오고 있다.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도련님과 눈이 마주친 세미롱은 예상치 못한 가까운 거리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버스가 엘리베이터 문 앞에 딱 달라붙어 바짝 대어진 채 문을 열고 있다.

 "어.. 도련님 안녕?"

 "네 안녕하세요;;"

 그에게 유일하게 반말을 쓰는 세미롱과 인사를 나눈 도련님은 당혹스런 눈으로 그녀와 버스 전방을 번갈아봤다. 그 시선에 의아해진 세미롱이 버스와 엘리베이터 문 사이 틈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녀의 손이 반사적으로 총을 쥐었다. 그 갑작스러운 동작을 스크래치가 손목을 잡아 제지했다.

 엘리베이터 안쪽에 타고 있는 두 사람도 이미 눈치 챘다. 당장 그 특유의 경화된 성대를 긁는 기분 나쁜 그렁거림이, 버스의 희미하게 웅웅거리는 엔진 구동음에 섞여 들리고 있었으니까.

 버스가 좀비에 포위되어있었다. 스크래치가  세미롱의 손목을 잡은 채로 살짝 밀며 말했다.

 "일단 올라 타. 상황부터 듣자고."

 여전히 자세를 긴장시킨 채로 고개를 끄덕인 세미롱은 그대로 앞으로 걸어 버스에 올라탔다. 이어 스크래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라탄 원경은 버스 앞쪽 창문에 달라붙어 시멘트 벽을 긁고 있는 네 마리의 좀비를 확인했다. 도련님이 말했다.

 "뒷쪽에도 있어요. 아마 두 마리..."

 스크래치가 그 대답을 지나쳐 운전석에 앉으며 물었다.

 "몇 마리 안 되네. 후드랑 컴돌이는?"

 도련님은 후드랑 컴돌이의 이름을 더듬더듬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 은연씨랑 인호씨는 좀 더 큰일이 될지 모르니까 일단 방지하러 간다고.. 버스 화물칸에 실려 있던 오토바이를 꺼내셔서 달려 나갔어요. 방금 전에요. 좀비가 많았는데 거의 다 두 분을 쫒아갔어요."

 컴돌이가 켜놓은 자동 운행 장치를 끈 스크래치는 2단 기어를 넣으며 버스를 수동 운전으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쫒아갔다고? 오토바이를?"

 스크래치는 곧장 문을 닫은 후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엑셀 페달을 밟았다. 반클러치 상태에서 버스는 벽과의 사이에 낑겨드는 좀비를 부드럽게 밀어버리며 출발했다. 사이에 끼어 탈출하지 못한 채 그대로 뭉개지는 시체를 아연하게 바라보며, 도련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



 붉은 후드의 오토바이는 지하를 달리고 있었다. 3단계로 나눠진 경사로 층계를 한 차례 거쳐 올라왔는데도 여전히 지하였다. 버스가 처음 내려갔던 곳이 지하 2층이거나 그보다 더 깊은 곳인 모양이었다.

 한층 올라오니 아래에서는 콧빼기도 보이지 않던 자동차 더미가 여기저기 바리케이트처럼 쌓여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진 닫혀있었을 좌석 문들이 모두 열려있었다.

 지하주차장의 어두침침한 조명. 오토바이의 속도 탓에 빠르게 지나쳐가는 유도사인들. 그것들이 시야에 남기는 잔상까지. 그 더러운 빛무리 속에서 열린 자동차 문틈을 넘어 태어나듯 인간 유래의 움직이는 시체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타났다. 그 좀비들은 어떤 조명에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 붉고 푸르게 보여 다채롭게 섬뜩했다.

 중에 붉은 것 하나가 맹렬한 기세로 기어 나와 네발짐승처럼 오토바이 앞을 뛰쳐들었다.

 "돌겠네 정말."

 돌발적으로 S자를 그리며 좀비의 자해공갈을 피해낸 붉은 후드는 이미 토하기 직전인 컴돌이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소리쳤다.

 "야! 살아있어?!"

 "아마요---"

 오토바이 주변을 몰아치는 맹렬한 바람 속에서 개미소리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살아는 있네.'

 보조 탑승자의 무사함을 확인한 붉은 후드는 다시 한 번 그녀 스스로가 했던 판단을 되짚어보았다.

 문제가 생기자마자 오토바이를 꺼내 뛰쳐나온 것. 그 판단 자체는 옳았다. 더 큰일이 되기 전에 풀렸다는 보안장치라도 다시 잠궈보려 한 소기의 목적은 완전히 그르쳤지만, 떼 지어 몰려온 좀비들을 버스에서 떼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결과론이긴 해도 그녀가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오는 좀비들을 유인해내지 않았으면 버스는 이미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을 것이다. 이미 달리기 시작한 후라면 몰라도 정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엔진에게 좀비 덩어리의 고중량과 정면대결을 강요하는 것은 전혀 달갑지 않다. 좋은 물건은 오래 써야하니까.

 '남은 건 기껏해야 열 마리도 안 되겠지?'

 그 정도면 버스 중량으로 그냥 밀어 버리며 차체를 출발시키기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속도만 붙으면 좀비가 몇 마리건 부담 없겠지.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잘한 유인 기동이었다. 컴돌이도 붉은 후드가 말하기 전에 이미 화물칸을 열며 자기 총을 챙기고 있었으니 둘의 판단은 일치했다 할 수 있었다.

 다만 출발 직전 최신식 자동화기인 자신의 G101을 시동시키며 뒷자리에 올라타는 컴돌이에게 잠이나 깨라는 의미로 등을 두 번 두드려 주며 '잠 오는 눈은 해가지고.. 총 그거 맞출 수나 있느냐'고 물었던 붉은 후드는 '에임보정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대답했던 주제에 이미 멀미로 기절하기 직전인 컴돌이의 상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혼자 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고 있다. 하지만 처음엔 보안장치를 다시 복구할 생각이었으니 컴돌이를 두고 나온다는 발상이 불가능했다.

 붉은 후드는 눈앞에 나타난 직각 갈림길에서 차체를 가파르게 기울여 가능한 한 부드럽게 코너링한 다음 컴돌이의 숨이 최대한 덜 넘어가길 바랬다. 컴돌이는 멀미로 살아있을랑 말랑 하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인지, 좀비가 나올 때마다 방향감을 상실한 총구를 휘청휘청 흔들어댔다. 붉은 후드는 참지 못하고 빽 소리질렀다.

 "총 집어넣고 내 등에나 바짝 붙어!!"

 컴돌이는 총을 집어넣고 붉은 후드의 등에 바짝 달라붙었다.

 버스가 있는 아랫층과 달리, 지금 달리고 있는 윗층은 높은 천장에 조명이 조밀한 간격으로 배치되어있었다. 그 탓으로 주변을 지나치는 모든 사물에 그림자가 서너개씩은 달려 있다.

 '저게 뭐야.'

 붉은 후드의 시야 한 구석으로 팔다리가 긴 좀비 하나가 자동차 더미를 밟고 넘으며 오토바이에 뒤쳐지지 않는 속도로 따라붙는다. 안 그래도 기분 나쁘게 팔이 길어 거대벌레 같아 보이는 좀비가 그림자까지 네 개나 달고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니 붉은 후드 정말 기분 나빠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녀의 등에 한동안 바짝 달라붙어 가만있던 컴돌이는 조금 회복된 것인지 메고 있던 슬링백에서 사운드체커를 꺼냈다. 그것을 자신의 단말기와 연결한 컴돌이는 주변에서 감지되는 소리를 화면상에 띄워 붉은 후드에게도 잘 보이게끔 오토바이의 대시보드에 꽂았다.

 단말기의 미니맵 한가운데를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 점은 붉은 후드의 오토바이. 그리고 오토바이가 지나치는 곳마다 주변에 따라 찍히는 수많은 파문점들이 모두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다른 물체들을 의미했다.

 '이게 다 좀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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