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좀비야?'
좀비들은 외견부터 소리, 그리고 군집성까지 그 어떤 방면에서도 징그러움을 놓고 나오는 법이 없었다.
'아우 진짜 다 죽어 없어졌으면..! 다시 내려가는 길은 어딨는 거야?!'
붉은 후드가 속으로 욕을 뇌까리며 좀비가 있었던 구간을 피해 지하를 빙빙 도는 동안, 그들이 처음 올라올 때 좀비로 꽉 막혀버린 통로 외에 다시 아래로 향하는 루트를 찾아내려하던 컴돌이가 사운드 체커에 감지되는 이상한 소리를 눈치 챘다.
주변의 바람에 소리가 날아가지 않게끔 사운드 체커의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댄 컴돌이가 말했다.
"[아까부터 주변에 묘한 노이즈가 있어요. 발신지는 여기보다 깊은 지하인거 같은데, 뭔가 우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나요.]"
주변 좀비 소리가 시각적으로 표시되는 단말을 쳐다보느라 나쁜 기분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있던 붉은 후드는 뒤와 단말기에서 컴돌이의 목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오자 그 전후방으로 치는 메아리에도 추가로 기분 나빠지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뭐가 우는데? 매미 아냐??"
"[매미는 땅에서 나와야 울지 않나요.]"
"아 그럼 매미 애벌레가 우는가보지!!"
붉은 후드는 기본적으로 좀비도 벌레도 좀비애벌래도 다 싫어했다. 더럽게 생겼으면 전부 싫었다. 그때였다. 무언가 시야를 스치는 감각에 왼쪽 편의 천장을 바라본 붉은 후드는 진짜 심하게 깜짝 놀라 하마터면 고속주행 중인 오토바이의 핸들을 그대로 꺾어버릴 뻔 했다.
높은 천장. 아마도 고속도로 쪽부터 무너져 내렸을 콘크리트의 잔해와 균열. 그 가운데의 눈이 의심스런 믿기 힘든 광경이 하나. 거대한 진압 드론 한 체가 거꾸로 전복 된 채 박혀있다.
레드존에서 진압 드론은 좀비와 인간을 구분하지 않고 공격했다. 이미 포착된 것인진 알 수 없지만, 이런 지하공간에서 천장으로부터 공격받는다면 백이면 백 죽었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눈앞의 자동차 잔해를 반사적으로 튼 커브로 피해낸 붉은 후드는 진압드론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압 대상에게 위협적으로 번쪅여 올 터인 붉은 센서등조차 켜지지 않는다. 드론은 그저 천장에 박힌 채 고요히 침묵하고 있었다.
'고장인가...? 아니면 이쪽이 안 보이나?'
어느 쪽이건 우선 당장은 살았다. 하지만 그 사실도 억울했다.
'진짜 이런 좀비 판에 총 맞아 죽는 걱정먼저 해야 된다니..!'
붉은 후드는 임계로 치달아가는 스트레스를 느끼며 잠시 놓쳤던 길찾기에 다시 집중했다. 그때였다. 단말에 띄워진 주변의 사운드 체크 창이 최소화되며 전화가 걸려왔다. 컴돌이가 수신하자 단말기에서 세미롱의 목소리가 튀어왔다.
[후드! 어디 있어요!]
"윗층!! 버스 고속도로 쪽으로 빼면서 기다려! 되돌아가는 길 찾고 있어!"
[우리도 윗층으로 올라왔는데요!]
"뭐!?"
고개를 드니 주차장 공간을 가로질러 반대편, 좀비 집단을 밀어버리며 올라오는 대형 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오토바이는 복잡한 가운데 구역을 빠져나와 가장자리의 회랑부를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달려드는 좀비를 그대로 갖다 박아버리며 직진하는 스크래치다운 놀라운 박력의 운행이긴 했지만 저래서는 붉은 후드와 컴돌이가 다시 버스에 올라 탈 방법이 없었다.
그때. 좀 전부터 고속으로 따라붙던 긴팔 좀비가 언제 길을 앞지른 것인지 정면 쪽 코너에서 괴악한 소리를 내지르며 튀어나왔다. 그 갑작스런 등장에 붉은 후드는 황급히 차체를 틀며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드리프트 도중 정체모를 액체가 말라붙은 구간을 미끄러질 때 타이어가 충분한 마찰을 내는 것에 실패했다. 오토바이는 바닥에 쓰러지고 컴돌이를 감싸 안은 붉은 후드는 밖으로 튕겨나갔다.
그대로 날아가듯이 굴러간 붉은 후드는 벽에 쳐박히고, 오토바이는 반대쪽 공간으로 미끄러지며 멀어졌다. 차체가 바닥을 긁고가는 마찰음이 비현실같다. 벽에 부딪친 충격에도 아랑곳 않고 곧장 다시 일어난 붉은 후드는 이미 벌어진 오토바이와의 거리를 확인하고 입술을 씹었다. 너무 멀어졌다. 시동이 살아있는지도 보이지 않는데다가 설령 살아있더라도 좀비를 피해가며 컴돌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곧장 생각을 전환한 붉은 후드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정면을 향해 쳐들었다. 그 다음 시끄럽게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를 반사적으로 쫒아갔다가 다시 그녀 쪽으로 방향을 틀어오는 긴팔 좀비를 겨누었다.
장전수는 총 8발. 이를 악물고 쏜 첫 발은 몸에 온 충격 탓에 시야가 흔들려 완전히 빗나갔지만, 두 번째 사격은 정확한 궤도로 날아갔다. 하지만 좀비는 빠르게 사선으로 움직여 총알을 피했다.
'왜 피해!!'
겨우 두 번의 사격 반동에도 누적된 몸의 데미지 탓에 손끝이 떨려오기 시작한 붉은 후드는 그 어이없는 사태에 화가 났다. 총알을 피하는 좀비라니.
'죽지도 않는 것들이 총은 왜 피하는데!'
붉은 후드는 악에 받쳐 나머지 장탄을 쏟아냈지만 제대로 적중 할 리가 없었다. 좀비는 권총의 발포 음에 순간순간 멈칫할 뿐, 괴악한 소리를 지르며 당장에라도 달려들 모양새였다.
- 빠아앙!!!
그때 경적을 울리며 달려온 대형 버스가 그대로 좀비를 들이받았다. 언제 그녀를 찾은 것인지 기적 같은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좀비는 튕겨져 나갔다가 다시 일어서고, 버스는 건너편의 철망으로 그대로 달려가 때려 박힌 다음 막혀있던 철제 팬스 벽을 뚫고 들어가버렸다. 돌아오려다 벽에 반쯤 박혀버린 버스의 바퀴가 후진하기 위해 공회전을 하고 타이어가 바닥과 마찰해 불꽃을 튀긴다.
붉은 후드는 다급한 떨리는 손으로 권총의 총알이라도 재장전하려 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이젠 버스를 쫒던 다른 좀비들까지도 몰려와 있었다. 선두의 긴팔이 성대를 찢는 듯한 소리를 낸다. 한없이 나빠진 기분과 끝까지 쌓인 스트레스를 초월해 공포가 차갑게 피어올랐다.
이미 몸에 쌓인 데미지도 한계.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던 용기도 한계였다. 붉은 후드의 두 팔이 잘 들어가지 않는 탄창을 흘려버리며 무릎 위에 툭 떨어졌다.
그러다가 다시 붉은 후드의 유전자에 기본 탑재된 울화가 치밀어 속빈 권총이라도 핏기가 전부 빠져나간 양 손으로 억지로 부여잡고 그대로 긴팔의 머리통을 향해 집어 던지려한, 그 순간이었다. 대물 저격총과 같은 강력한 발포음이 주변 공기를 찢어발겼다. 선명한 궤적이 긴팔 좀비의 몸통을 터트리고 반대편 바닥에 때려 박혔다.
조명 탓에 공기마저 서슬퍼런 지하 주차장의 공간 한가운데 그어진 날카로운 유성이 남긴 듯한 잔상의 궤적. 부서진 바닥에서 튀어 오른 잔해의 그림자가 수십 수백의 점이 되어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그 속에서 총격이 일으킨 돌풍이 붉은 후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인상적인 광경에 세상이 한 프레임씩 끊어지는 감각이나 귀가 먹먹해오는 정적 따위를 느꼈지만, 발포음은 감상을 기다려주지도 단발로 끝나지도 않았다.
줄지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던 좀비들이 포화와 같이 쏟아지는 총격에 꿰뚫려 사방으로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버스에서 발사되는 것인가 생각해 쳐다봤던 붉은 후드는 발포음의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딜 둘러봐도 총을 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실색한 표정으로 총격의 궤적을 따라 옮겨가던 붉은 후드의 시선이 천장에서 멈췄다.
그 곳. 유달리 높아 보이는 천장의 틈 사이에서, 마치 하늘에서 잘못 떨어진 징벌신과 같은 모습이 푸른 센서등을 분노처럼 번쩍이며 좀비들을 일소하고 있었다. 아고스의 진압 드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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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가 없어요."
그 한마디 외에 세미롱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라플라스 필터는 비록 좀비와 인간을 구분하지 못했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물의 인식만큼은 완벽하게 수행했다. 필터가 기능하고 있는 촬영 매체의 반경 내에 인간 유래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 어떤 예외도 없이 초록색 사각형의 표시가 그것의 존재를 알렸다.
세미롱은 바로 그런 것을 기대하고 라플라스 필터를 켠 것이다. 아직 움직이고 있는 좀비는 혹시 없는지 확인하고, 근처에 쓰러져있을 붉은 후드와 컴돌이를 찾기 위해서. 그런 탓에 무언가가 이상함을 눈치 채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스크래치가 세미롱보다 일찍 사실을 깨달은 것은 진압 드론의 공격행위가 명백히 이상했단 점을 먼저 신경 쓴 덕분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온 스크래치는 이제 막 이상한 점을 깨달은 세미롱을 툭툭 건드려 버스가 뚫어놓은 통로 바깥의 오르막길을 가리켰다.
어느새 해가 지는 시간. 낮의 끝머리에 남아있던 지상의 열기가 훅 끼쳐온다.
오르막길은 대학부지의 지상으로 나가는 출입구였다. 망가진 철망과 철제 팬스의 잔해를 조심스럽게 건너간 세미롱은 단말기 너머로 보이는 광경을 아연하게 바라봤다.
필터 너머가 온통 새파랗다. 의심할바 없는 블루존. 그것도 이제껏의 노력 끝에 손에 넣은 블루 메모리, 그 하나의 칩이 일궈내는 고작 몇평 몇십평 정도의 범위가 아니라 광대한 대학 부지 전체를 아우르는 청일색의 광역지대였다.
다친 컴돌이와 붉은 후드를 버스에 옮겨둔 원경이 스크래치와 세미롱이 있는 오르막으로 올라왔다.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는 세미롱. 그리고 맨 눈인 원경에게 라플라스 필터 너머의 푸른 영역표시를 보여주기 위해 단말기를 건네는 스크래치. 하지만 원경은 이미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찌푸렸다.
"저거."
원경이 바라보는 곳을 스크래치가 따라서 쳐다봤다. 그리고 그도 발견했다.
[아고스의 분별률에 따라 임의로 사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청소부들이 쓰는 경고문구군."
스크래치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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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대학 안쪽의 남자 기숙사 4층. 창문 커튼 사이의 망원경 렌즈가 하나. 렌즈의 방향은 건너편 체대건물을 향하고 있다. 근 몇 달간 ‘체대생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맞추어져있던 시선이 지하주차장 방향으로 옮겨갔다.
4층 거주자인 남자 중학생 시윤의 눈동자가 렌즈 너머에서 껌벅인다.
경사로인 입구에 낯선 버스가 하나 서있다. 안쪽 편으로 슬쩍 보이는 뚫려있는 지하 입구는 새로 바리케이트를 쳐둔 모습이다. 밤 새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리고 저 자신들이 뚫고 들어왔을 통로를 스스로 다시 막아뒀다.
대학 부지에 새로운 유입 인원이 들어온 것은 현재 남자 기숙사에 살고 있는 네 사람 이후로 처음이다. 이대로 가만히 두면 어떤 식으로든 청소부와 조우하겠지. 그럼 유해했지만 죽은 시체나 무해해서 정착이 허가된 생존자로 분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오늘이 바로 수요일이란 점이었다. 체대의 스포츠웨어를 입고 사는 여자가 생필품을 챙기기 위해 물품센터에 방문하는 날. 그녀가 활동하는 이른 새벽 시간이 시시각각 임박하고 있었다.
시윤은 정찰을 시작하려는 침입자들을 보며 마음이 급해졌다. 세미롱 헤어의 여자, 스크래치가 있는 남자, 덩치가 큰 근육질의 중년 남성. 세 사람 모두 총기로 무장하고 있다. 저들과 조우했다간 스포츠웨어녀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만남은 청소부들과 먼저 충돌한 다음이 되어야 했다.
'애초에 일반인이 아닐지도 몰라!'
최근 이름 모를 민간 군사 업체가 민간인을 아무렇지 않게 죽여버린다는 소문이 있었다. 시윤이 밖을 떠돌아다니던 몇 달 전에도 불법 유통되던 총기류는 종종 있었으니 겨우 저 정도 무장에 군사업체의 사람들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단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스포츠웨어에 갑자기 방탄기능이 생겨나서 기관단총의 총알을 튕겨내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곧 체대 건물 밖으로 나올 스포츠웨어에게 이 사실을 어서 빨리 알리던가, 침입자들에게 먼저 접촉해 물류센터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시윤은 스포츠웨어가 다치는 것을 상상만 해도 등허리가 아플 만큼 아찔했다.
대충 멸망한 세상에서 연상의 체대생에게 빠져버린 사춘기 소년은 곧장 행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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