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시절, 야자시간에 같이 공부하던 놈들을 대상으로 여러 설문을 진행해본 적이 있다. 그 중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7일간 잠을 자지 못했고, 한 달간 음식을 못 먹었고, 10년을 여자와 떨어져서 한 사람이 사막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집을 발견했고 들어가자 산해진미와 미녀, 침대가 있었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먼저 하겠는가?' 딴에는 식욕과 성욕, 수면욕 중에 어느 것이 더 강한가가 궁금해서 한 설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지금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한 인간임이 분명한 여자가 음식물과 같은 욕망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이 질문의 대답으론 '그냥 잔다'가 압도적이었다.) 여와 남의 우정이 어려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위의 설문에서 그 이유를 본다. 남자아이들에게 있어 여성은 욕망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어떻게 음식물과 같은 존재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와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사내아이들은 여성을 한 인격체로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사회적인 관습에 의해서 여자와 남자는 분리된다. 유치원생 사이에서도 여자애들과 노는 남자애는 '계집애같은 놈'이 되어버려 놀림받고 부모의 걱정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초중고 동안에 남자애들에게 여자는 가까이 있지만 너무 먼 당신임에 다름 아니다. 그 애들이 여자를 보는 통로는 얼마나 한정되어있는가, 성적매력을 무기로 삼는 브라운관속 스타들이나 포르노물에서나 여성을 만난다. 그 애들에게 여성이 욕망의 대상이 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우리의 순진한 사내아이들은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진실된 사랑에 대한 노래와 이야기를 알고 있기에 무엇이 좋고 나쁜지 쯤은 알고 있다. 여자들 또한 똑같은 인간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을 뿐 경험하질 못하니 딱할 뿐이다. 순진한 소년의 마음보다 사내들의 욕망이 더 강하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런 사내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이제까지 저 멀리 있던 여자들과 만난다. 그러나 그들을 가로막는 벽들은 험난하다. 모든 여자들과의 접근을 작업으로 보는 외부의 시선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사실로 증명하는 자신의 욕망이다. 이맘때쯤 이왕이면 예쁜 여자후배들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남선배들의 묘한 기대에 대해선 그래도 이해한다. 하지만 학기초에 흔히 말하는 '퀸카'들에게 쏠리는 관심에 대해선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우정에 앞서 연애가 먼저 시작되고 이해하지 못하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 헤어지고 마는 경우들을 종종 보아온다. 인격적인 관계맺음이 부재한 연애의 결말은 뻔하다. 그렇게 몇 번의 상처를 통해서 비로소 관계 맺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 또한 인류의 절반을 이제 와서야 만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런 바보 같은 사내아이였지만, 욕망의 대상으로밖에 사고하지 못했었지만, 늦게나마 알 수 있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