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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인간 유래의 괴물 - 7
게시물ID : readers_341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1
조회수 : 3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9/06 21:16:31
청소부들이 설치해 놓은 것임이 분명했다. 

 다가가니 센서가 초록색을 띈다. 세미롱은 라플라스 필터가 떠올라 침을 꿀꺽 삼켰다. 초록 센서가 현재 전방에 인간 혹은 좀비가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멍청한 기계.

 '상관없이 다 쏴버리는 터렛이 깔려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세미롱의 그런 걱정과 무관하게 개문 패널에 손을 대자 통로는 건너편까지 싱겁게 열려버렸다. 내부에서 쾌적한 공기가 밀려나온다. 에어컨이라도 쌩쌩 틀어놓은 모양인지 바깥의 숲 냄새나 진득한 열기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희미해졌다.

 몇몇 다목적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거쳐 짧은 계단을 오르고, 네 사람은 산림청 건물 1층 현관으로 진입했다. 세미롱이 이쯤에서 누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비쳤다. 스크래치는 건물 내에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기다려봤자 소용없을 것 같은데."

 "우릴 공격하려고 숨죽여 매복하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 더 다가오면 바로 빵하고 머리 날리려구요."

 "우리 정도 혼내주는데 매복씩이나 할 필요는 없겠지. 그냥 지금 여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야."

 스포츠웨어도 관리소 안쪽까지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1층 가운데에 윗층으로 올라가는 커다랗고 완만한 경사의 계단이 있다. 경사를 통해 지어진 탓인지 층마다의 면적이 밖에서 본 것과는 괴리가 있었다. 넓어 보이는 윗층에 비해 1층은 상당히 협소했다.

 스크래치는 마냥 멈춰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기척을 신중하게 살피며 계단을 통해 일행을 전진시켰다. 2층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마른 모래 먼지 냄새. 스크래치는 다소 당혹스러워하며 어딘가 바깥바람이 통하는 방향이 있음을 짐작했다. 통로를 따라가니 직전까지 사용되고 있었던 듯한 넓은 사무실이 나왔다. 넓은 공간을 잔뜩 차지한 사무용 책상들. 책상마다 종이로 된 자료들이 가득 쌓여있다. 전혀 전자식이 되어있지 않다. 시대에 뒤떨어진 물질 데이터들. 청소부들은 간혹 이런 것들을 쓸 때가 있었다.

 일행은 사무실 가운데를 조심스럽게 지났다. 건너편의 열린 양철 문으로 나가니 외부 복도가 있다. 차양지붕이 깔린 적막한 외부복도. 끝에는 헬기가 있었을 공터가 보이고, 남녀 두 사람이 그 입구에 서있었다. 차양지붕 탓의 녹색 빛이 두 사람 주변을 뒤덮고 있다.

 세미롱은 지금 당장 총을 겨냥해야하는지를 빠르게 고민했다. 남자는 다소 어려보이고 여자는 손목을 붙잡혀있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고 여자의 시선은 내리깔려있다. 남자는 미숙해보이고 여자는 무기력해 보인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청소부들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이라면 살벌한 무장과 제복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저 두 사람은 딱 보기에도 일반인이었다.

 '청소부들은 다 어디간거지? 주변 정찰을 나갔나? 한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현실성이 잘 가늠되지 않는 의혹이었다. 세미롱은 우선 눈 앞 두 사람의 신분을 확정짓기로 했다.

 "두 분은 스위퍼스 소속이신가요?"

 남자 쪽이 고개를 흔든다. 여자도 남자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다. 세미롱은 곧바로 총을 들었다.

 "손들고 이제부터 우리가 묻는 말에 대답하세요."

 그녀는 총구를 들이밀며 자신에게 취조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남자에게 이해시켰다. 남자가 손을 든다. 이해력은 빠른 모양이었다.

 "청소부 분들을 만나러 왔는데, 어디 계시죠?"

 "아 그게.. 방금 떠나신 거 같은데요?"

 "떠났다고요? ... ... 어디로요."

 남자가 또 고개를 흔든다. 모른다는 의사표시. 세미롱이 인상을 찡그리며 총구를 매섭게 치켜들었다. 그러자 남자는 더 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모르는 것이라 판단하고 한숨을 쉰 세미롱은 총구를 내렸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죠.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것도 아니니. 그쪽이 아는 내에서라도 얘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총구를 힐끔힐끔 보고 있노라니 없던 호의도 생겨나는 기분인 모양이었다.

 "알고 있는 내에서는 얼마든지요. 그러니까.. 안 쏘실 거죠? 제발요."




###




 세 사람은 사무실 책상을 몇 개 밀어 치우고 중간에 둔 의자에 남자와 여자를 앉혔다. 심문역의 세미롱이 마주보고 앉고 원경은 총을 들고 두 사람의 뒷편에, 그리고 스크래치는 복도 방향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그는 그 상태로 건물 내에 혹시 있을지 모를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의 차림새를 잠시 살핀 세미롱은 자신도 총을 내려놓고 양손을 모아 앉았다. 남자에게 이정도의 무장해제로 갑작스레 무례해질 기색은 없었다. 세미롱은 대화를 재개했다.

 "방금 떠났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청소부들의 목적지는 모르시나요?"

 "..."

 하지만 무례해지지 않았을 뿐, 총구가 들이밀려 있을 때는 자동으로 튀어나오듯이 대답하던 남자는 말할 것과 거를 것을 가늠하며 눈빛을 굴리면서 미묘한 텀을 두고 있었다. 그렇게 남자는 세미롱의 인내심이 폭발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대답을 꺼냈다.

 "제가 충분히 정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걱정은 되지만.. 우선 저는 그냥 여기 학생이에요. 정확히는 대학부지 옆에 보면 부설 고등학교가 있거든요. 거기 재학 중인 3학년생인데요... 청소부 분들이랑은 아까 전에 처음 만났고 그분들 일정은 정말 몰라요."

 차분하고 조리 있는 대답. 고등학생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말을 걸러 한다기 보단 그저 예의차려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 학생의 행동처럼도 보였다.

 "고등학생? 음.. 그래 보이긴 하네요. 액면가가 솔직하게 생겼어요."

 세미롱은 경계를 조금 풀었다. 소년의 나이에 솔직한 생김새가 좀 마음에 들었다. 세미롱은 자기 주머니에 사탕이나 초코바가 있었는지 뒤적거려보며 계속 말했다.

 "그래도 좀 의심은 돼요. 아까 만난 다른 사람은 자신이 여기 학생 중엔 유일한 생존자일 거라고 했거든요."

 눈에 띄게 친근해진 말투. 하지만 내용은 의혹을 띄고 있고, 세미롱은 갑자기 자기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학생은 긴장했다.

 "하시는 말씀에 신빙성이 떨어질수록 제 대화방식도 점점 거칠어질 거에요."

 세미롱은 그렇게 경고하며 찾아낸 초코바를 치켜들었다. 겁먹은 학생은 침을 꿀꺽 삼켰다.



###



 밖에서 관리소 안을 훔쳐보고 있던 시윤은 고등학생에게 무언가를 들이미는 세미롱을 보곤 완전히 사색이 되었다. 그에 장현수도 당혹스러운 기분이 되어 말했다.

 "야 어쩌냐. 저거 고등학생이랑 스포츠웨어 서로 말이 안 맞으면 둘 중 하나 쏴버릴 분위긴데?"

 시윤은 그럼 정말 어떡하냐는 다급한 눈빛으로 현수와 다른 형들을 다급하게 둘러봤다. 하지만 이 중에 뭔가 뾰족한 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청소부들을 찾으러는 왔으나 만날 수 없었고, 관리소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사이 헬기는 훌쩍 떠나버렸다.

 그 후 상황을 보기 위해 숨어있는 동안 저 고등학생이랑 손목 잡혀 온 여자가 왔고 이젠 총을 든 세미롱 무리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시윤이 죽고 못 사는 스포츠웨어는 이미 무장 괴한 세미롱에게 잡힌 채였다.

 현수는 뭔가 저지르기 직전인 시윤의 눈빛을 슬쩍 봤다. 저 눈빛은 진짜다. 하지만 지금 튀어나갈 순 없었다. 시윤도 그렇고 저 스포츠웨어녀도 그렇고, 이상하리만큼 청소부들의 무서움을 몰랐다. 둘의 전례가 있다 보니 지금 들이닥친 침입자들도 걱정이 되었다.

 섣불리 나서서 공격받는 것도 곤란하지만 혹 우호적이어서 동행하는 모양새가 된다면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저들이 만약 청소부들의 무서움을 모르고, 돌아 온 청소부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라도 보인다면 정말 끝장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위안이라면 츄리닝과 삼디다스는 얌전히 있어 준다는 것이었다. 이 두 녀석들도 평소엔 시윤처럼 스포츠웨어녀에게 이상한 유대감을 가지곤 했지만 이번만큼은 잠자코 있어 주었다. 그 덕에 시윤도 한계까지 초조해하면서도 대뜸 튀어나가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인사 한번 해본 적 없는 저런 여자 챙기려고 목숨을 걸진 않겠지.'

 현수는 막내인 시윤도 다른 형들을 본받아 좀 모자라더라도 겁은 먹을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주길 바랬다. 최대한 빨리. 가능하면 지금 당장.

 그리고 다행인 점이 또 하나 있다면 상황이 어느 정도 고착되어 서로 대화만 하는 분위기로 흘렀다는 점이다. 현수는 이대로 조용히 숨어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모두 확인한 후에 행동방침을 결정할 생각이었다. 살짝 당황한 기색의 고등학생이 말을 계속한다.

 "오늘 왔어요. 반년 전쯤 등교하려고 했는데 좀비가 나와서.. 피해서 둘러 오다보니까 지각을 좀 한 거 같아요."

 지각? 고등학생은 자신에게 들이밀어진 과격한 의혹에 터무니없는 단어를 꺼냈다. 세미롱도 황당해 하며 되물었다.

 "그럼 지금 그냥 등교를 한 거라고요?"

 "유급하진 않을까 걱정 중이에요."

 좀비로 세상이 뒤집어진지 반년인데 학교 출석일수를 걱정한다니. 농담하는 건가? 세미롱의 눈썹이 사나워졌다. 그녀의 어조가 돌변했다.

 "안되겠어. 너 너무 수상해. 이 다음 질문부터는 옆에 여자가 대답해요. 우선 두 사람. 아는 사이인건 맞아요?"

 세미롱은 여자 손목의 빨갛게 쓸린 자국을 쳐다봤다. 여자는 억지로 끌려 온 것일지도 몰랐다. 수상하게 보지 않으면 그저 이 상황에 겁먹은 듯이 보이지만, 손목에 쓸린 자국을 감안해서 본다면 납치된 사람의 표정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세미롱의 나쁜 추측과 달리, 여자는 잘 아는 사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하랑은 그.. 아는 사이? 맞아요... 친한지는 잘...모르고요.."

 여자는 말을 끌며 자신이 진하라고 부른 고등학생의 눈치를 슬쩍 봤다.

 "...확신은 없는데 오늘 좀 친해진 거도 같은데.."

 여자가 무슨 말을 하나 자신도 흥미롭게 듣고 있던 진하가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막 더 친해졌어요."

 "넌 좀 조용히 해요!"

 세미롱이 초코바를 집어던졌다. 진하가 그걸 반사적으로 받아내자 까서 물고 있으라는 시늉을 했다. 진하는 순순히 따랐다. 여자가 말을 계속했다.

 "아, 저는 백하나라고 하는데요. 학생은 아니고 그냥 이 주변.. 주민이었어요.. 옛날에 처음 피난가다가도 진하랑 만났었고.. 그때 진하는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이 학교꺼였다고 생각해요. 반장이랑 같은 디자인이었으니까.."

 진하의 입을 우물거리게 만들어 대화에서 완전히 배제시킨 세미롱은 여자, 백하나의 느리고 속터지는 어조에 진지하게 집중했다. 그리고 제 3자를 지칭하는 듯한 단어의 등장에 경계하는 기색으로 되물었다.

 "반장?"

 "아, 저랑 같이 있었던 여자애 별명이에요. 이름을 안 가르쳐줘서.. 질문하셨던 청소부 분들이랑도 반장이 친한데... 여길 떠나야 한다고 저도 데리고 오라고 했데요.. 그래서 진하가 절 데리러와서.."

 여자는 계속해서 고등학생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이야기했다. 저게 협박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피해자의 눈빛인지, 아니면 그냥 심각할 만큼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의 보편적인 반응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외견상의 나이차를 생각하면 진하라는 남자애보단 이쪽이 훨씬 연상인 듯 했지만, 태도만 놓고 보면 거진 오빠 동생 혹은 삼촌과 조카에 가까웠다.

 초코바를 물고 이야기를 차분히 듣던 진하는 거기까지 듣자마자 고개를 획 돌려 세미롱을 쳐다봤다.

 "들으셨죠? 전 현역 고등학생이에요. 무해하니까 총 쏘진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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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인간종 포화일 때의 주인공이었던 진하가 나왓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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