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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렬을 잘못본 나는 어리석다. 그는 위연에 불과한 인물이다.
게시물ID : sisa_11394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조은동행
추천 : 16
조회수 : 1907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9/09/07 20:36:18
윤석렬이 임영되었을 때 나는 박수를 쳐주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당신 열심히 해보라"고 말이다. 그래서, 재미삼아 이 사람이 삼국지연의 속의 관우에는 미치지 못랄 것 같고 조자룡이 될 것인지 장비가 될것인지 두고보자 생각했다.

아시다시피, 서기 207년 경, 조조가 화북을 평정하고 패권을 쥐기위해서 형주를 탐내었다. 당시 유비는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던 차 였다. 유포 사망 이후 내분으로 유표의 유언과 반대로 장남인 '유기' 대신 '유종'이 권력을 차지하면서 조조를 틈을 타서 형주로 진격하게 된다.

어이없게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을 하자. 유비는 쫒기는 몸이 된다. 그 와중에 잘 알려진 '장판파전투'가 벌어진다. 이 전투에서 유비는 유비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뿔뿔히 흩어져 도망간다. 

이 전투에서 적진에 고립된 미부인과 감부인 그리고 후일 촉한 2대 황제가 되는 '아두'를 단기필마(單騎匹馬)로 구해낸 사람이 조자룡이다. '조자룡의 헌칼쓰듯'이란 속담과도 연관된 사건이었다. 일명 '조자룡의 단기필마'이다.

이 장면이 나의 머리속에는 조자룡이 품에 안은 아두를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기에 빠진, 바로서야할 검찰'로 연상되었고 윤석렬이 조자룡으로 겸쳐 보였던 것이다.

한편, 유비와 일행들이 무사히 도망치게 하여 후일을 기약하게 해준데에는 그 유명한 '장비의 단기필마'도 있었다. 추격해오는 조조의 군사들을 장판교에서 '장팔사모'를 옆에 세우고 "나는 장익덕이다. 누가 나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는가!"라는 호령에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이 징면이 나의 머리속에는 장비가 보호하고자 했던 그 일행들이 '대한민국의 국민'들로 오버랩되면서 윤석렬이 잘못된 검찰의 행태에서 '국민의 안위를 보호해불 영웅' 정도로 연상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최근 '조국 정국'을 맞이하면서 나는 윤석렬이 '위연'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시간을 좀 더 내려가 보자.

서기 219년, 유비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근거지를 마련하고 '한중왕'으로 등극한다. 221년에는 정식으로 '촉한'이 성립된다. 이 시기에 크게 활약한 사람 중 한명으로 '위연'이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소 상반된 의견이 상존한다. 전투에서의 공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제갈량이 북벌을 추진할 때 '제갈량과 위연'의 충돌에 주목한다.

위연의 성격에 대해서는 삼국지 정사에서도 연의의 기록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용맹이 남보다 뛰어났지만 성정이 교만하고 뽐내기를 좋아하여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를 피하고 양보하였다."

각설하고, 이런 위연을 '제갈량'은 아주 위험한 면면으로 보았던 듯 하다. 그의 뿔고전술(?)을 곳곳에서 제지한 흔적이 보인다.

결국, 북벌의 실패와 병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제갈량'은 자신의 사후  '위연'의 위험성을 제거하고자 측근들에게 자신이 죽은 뒤 퇴군할 명령을 지어놓으니, 위연에게 뒤를 끊게 하고 강유에게 그 다음에 있게하며 혹 위연이 명을 따르지 않더라도 군이 곧바로 출발하도록 했다.

제갈량이 죽고, '양의'는 '비의'를 시켜 위연에게 사실을 알리면서 그의 속마음을 살펴본다. '위연전'에는 위연의 말을 이렇게 기록한다.
 
"승상이 비록 죽었다고 하나 나는 건재하오. 승상부의 가까운 관속들은 바로 시신을 모시고 돌아가서 장사를 지내야 할 것이나, 나는 당연히 직접 여러 부대를 거느리고 적을 공격해야 할 것이오. 어찌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하여 천하의 대업을 그만둘 수 있겠소? 또한 나 위연이 어떤 사람이기에 양의의 부림을 받는 부하가 되어 후미를 끊는 장수 노릇이나 하란 말이오!"

이 때, 비의는 위연이 '반란'할 가능성이 있슴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비의가 위연을 속이며 말했다, "그대를 위해 되돌아가 양장사(양의)를 이해시키겠소. 장사는 문리(문관)라 군사에는 어두우니 필시 명을 거스리진 못할 것이오." 비의가 문을 나가 말을 달려 떠나고 위연은 이내 의미를 알아차리고 그를 쫒아간다. '위연의 난'으로 기록되는 순간이다.
 
중간을 다 생략하고 결론으로 들어가보면, 양의의 군대와 위연의 군대가 마주쳤을 때 위연을 패배케 한 이유는 아래와 같은 명분이었다.

"돌아가신 제갈공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거늘, 너희들은 어찌 감히 이런 짓을 하느냐!"
 
기록으로 본다면, 위연의 군사들은 잘못이 위연에게 있음을 알고 위연의 명을 받들지 않으니 군이 모두 흩어졌다. 위연 홀로 그 아들 몇 명과 함께 도망해 한중으로 달아났다. 양의는 '마대'를 보내 위연을 추격하게 하고 마침내 그의 목을 참수한다.

위연의 목이 양의에게 도착하자 양의는 그 머리를 짓밟으며 이렇게 말했다한다.

"용노(庸奴:하찮은 종놈)야! 네가 다시 못된 짓을 할 수 있겠느냐!"
 
역사가들은 위연에 대하여 대체로 이렇게 해석을 내린다.

'원래 위연의 뜻은 촉을 배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양의 등을 제거하고 제갈량 사후 필히 제갈량을 대신해야 한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앞서도 말했거니와 위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위연을 떠올리게 된 것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다 결국 본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강퍅함'은 모든 것을 망친다는 생각 때문이다.

.......................

"저놈의 목을 당장 쳐라."

'삼국지연의'에서 위연이 등장할 때를 살펴보면 제갈량은 쓸데없는 의기로 모시던 장사태수 '한현'을 죽이고 항복해 온 위연을 참수하려고 한다. '뒤통수 골상이 반골'이라는 이유였다. 관상 따위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말은 참으로 옳은 안목이 아니다. 그럼에도, 위연의 말로를 보면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잘못을 겸허히 고백한다. 그가 권력에 구애되지 않아서 내린 수사라거나 검찰 내부를 확실히 장악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는 나의 생각은 틀렸다.

그가 말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진실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충성했어야 했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 뒤에 이어나올 말은 '국민의 안위에 충성한다'가 아닌가.

누구나도 법 앞에 평등하다면, '정교수에 대한 의혹'이 수사되어야 대상은 맞다. 그러나,, 그가 취한 '수사'와 '기소'는 그 시기와 방법을 비추어보면 '쿠데타'에 버금간다. 패스트트랙과 관련된 고발건 등에 비교해보면 형평성과 공정성을 너무나도 결여했다.

'조국 정국'과 관련하여 윤석렬이 휘두른 칼은 절대 '정의의 칼'이 아니다.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그가 살리고자 한 것은 '썩어빠진 검찰조직'이었다. 그가 '검찰조직 혁신'을 위해 칼을 휘둘렀다면 그는 조자룡이 될 수 있었다. 그가 '국민의 안위'에 장팔사모를 옆에 세웠다면 장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속내는 결정되었다.

"윤석렬은 조자룡도 장비도 아니다. 그는 단지 위연이다."

그래서, 나는 희망한다. 조국이 법무부장관이 되어 장팔사모의 칼로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시대적 소명으로 완수하기 바란다. 그를 대신하여 믿을 사람은 없다. 그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상처입은 열매가 달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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