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정희가 1939년 독립군을 토벌하고 다녔다?
명백한 거짓이다.
박 전대통령이 서명한 1939년 3월자 문경소학교 성적통지표와 이를 받은 학생의 확인서를 첨부했고
1939년 박 전대통령과 학교 가을운동회에 함께 참여했다는 내용이 실린 동창회지가 발견되며 1939년 8월 만주에서 독립군 탄압활동을 했다는 것이 거짓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진보파 사람들은 박정희가 독립군을 토벌하고 다녔다고 말한다.
오히려 해방후 박정희는 광복군 제3지대 김학규 장군의 부대에 광복군의장교로 편입되는데, 광복군 제3지대 김학규 장군은 박정희를 그 휘하의 장교로 받아들였다.
2. 박정희가 독립군을 토벌하려고 간도특설대(일본의 특수부대)에 참여해 활동을 했다?
명백한 거짓이다.
이것 역시 허위 날조된 글로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 장교의 명단
(出典 : 중국측 조사자료-"特設部隊", 1960, 66 - 84쪽.)은 아래와 같습니다.
박정희의 이름이 어디에 없습니다.
간도특설대(총79명) - 姜在浩 李元衡 朴鳳祚 金燦奎(金白一) 金錫範 金洪俊 宋錫夏 石希峯 崔南根 崔在恒 신현준 최경만 윤춘근 문이정 趙某(豊田) 김용기 태용범 백선엽 윤수현 이재기 김묵 豊田義雄 吳文剛 李淸甲 申奉均 海原明哲 白川** 金松壯明 伊原久 鶴原** 朴東春 李鶴汶 崔忠義 朴鳳朝許樹屛 金大植 方得官 洪淸波 金龍虎 金致斑 具東旭 朴春植 方太旭 孫炳日 劉仁煥 尹秀鉉 李德振 李龍昊 李東俊 李龍星 李準龍 李逢春 太溶範 崔在範崔炳革 李龍 金忠南 車虎聲 金忠九 柳益祚 朴春範 朴春權 曺昌大 洪性台 李東郁 廉鳳生 吳南洙 金萬玉 金鍾洙 李東和 朴蒼岩 朴泰元 李白日 金龍周 申然植李龍星 任忠植,, 馬東嶽, 桂炳輅, 全南奎
- 2004. 06. MBC에서 방송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만주군의 친일파 내용중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의 명단에도 박정희의 이름은 없었다.
3. 박정희가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혈서를 썻다.
이것은 진보파 사람들이 늘상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친일행각 주장중 하나이다.
민족문제 연구소는 증거로 내어 놓은 박정희 대통령의 혈서 출처를 만주신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만주신문은 1927년 11월 1일 창간하여 1935년 8월 7일에 폐간한 공식기록이 일본국립국회도서관에 남아 있다.
기록에 관한한 꼼꼼하기로 소문난 일본이고 더욱이 국립 국회도서관이니 기록의 신빙성은 틀림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1940년까지 문경 소학교에 근무하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다.
따라서 민족문제 연구소가 공개한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위한 만주신문 충성혈서는 진실이 아닌 것이다.
일본에서도 공식적으로 만주신문이 1935년에 폐간되었다는 기록이 국립국회도서관에 남아있는데
진보진영에서 증거로 내세운 1939년 일왕에 충성을 맹세하며 혈서를 썻다는 만주신문의 기사는 있지도 존재하지도 않은 명백한 증거조작이다.
3. 박정희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려는 자잘한 왜곡
심수봉이 박정희 전대통령이 일본 엔카를 듣기 좋아했다고 말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심수봉씨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