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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가해자에게 날아온 청첩장, 후기입니다.
게시물ID : gomin_14839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Y2hpY
추천 : 1
조회수 : 94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07/20 21:12:53
어제가 그 누나 결혼식이여서 다녀왔네요.


전날 밤 복잡한 심경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다가
'괜찮다. 괜찮다. 오래된 일인데 뭘, 이보다 더한 일도 겪어봤잖아. 괜찮다.' 계속 되뇌이면서 예식장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일사병 걸린 것 처럼 식은땀이 비오듯 흐르고 손이 덜덜덜 떨리더라구요.
축의금을 내러 신부측 데스크에 갔더니 식권을 나눠주던 형이 'XX이 아니야? 와 이게 얼마만이지, 반갑다.' 하면서 한 눈에 알아보더군요.



그 이후의 대화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어색하게 악수를 하고, 근황을 묻고 이랬던 것 같은데 그냥 겨우겨우 버티고만 있었어서...
기억이 나는 건 식전에 신부대기실 가서 누나에게 인사하라고 하길래 손사래치면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온 것 정도네요.



신랑이 입장하고, 신부가 입장하고... 식장 전체에 흐르는 행복한 분위기를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 일단 나와서 담배만 연신 피워댔죠.


그 때 제가 느낀 감정은 자괴감이였어요.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남매에게 저는 그냥 어린 시절에 한 동네에 살던, 자신들을 잘 따르던 아이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고, 또 그렇게 대해주는데
나는 그 일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치욕스러운 기억으로 가지고 있구나. 아, 내가 이상한 사람이구나...싶어서요.   



청첩장을 받고 처음 글을 오유에 작성하고 나서, 결혼식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계기는 
어떠한 사과라던가 위로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고 그냥 단지 털어놓고 싶다. 내가 이런 문제로 몇 년간을 힘들어했다는 걸 털어놓고 조금이라도 후련해지고 싶어서였어요.



이대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르고 다시 돌아오니 예식은 끝나있고, 하객들은 모두 피로연장으로 이동한 상태였어요. 밥을 먹고 있는 형에게 가서 시간있으면 담배 한 대 피우자고, 할 얘기가 있다고 불러내서는



중간에 울컥울컥하면서 겨우 다 털어놨어요. 



결혼식에 가기 전 몇 주 동안 제 이런 얘기에 대한 피드백으로 장난스러운 조롱이나 빈정거림, 혹은 폭언까지도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진지하게 제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위로해주었어요.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 때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건 우리가 확실하게 잘못한 게 맞는 것 같다.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을텐데 미안하고 고맙다. 누나하고는 나중에 잘 얘기해서 너에게 사과할 수 있게 해주겠다...라고요.




털어놓고 나니 후련해질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그냥 멍하네요. 차차 나아지겠지요...




제 고민을 들어준 오유에 후일담을 적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아 몇 자 적어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좋은 밤 되세요.
출처 http://todayhumor.com/?gomin_1470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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