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
이상하게 단 여섯 글자 뿐인데도
수십 마디의 문장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어다.
사실 우리나라는
남자보다도 여자들이 훨씬 더 많이
이 단어를 보고, 듣고, 입 밖으로 내뱉었을 것이다.
그리고 울기도 하며
고통스러워 하기도 하겠지.
청소년기에
김아중 주연의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친구와 함께 그 영화를 보러 갔고
영화 후반부에서 우리는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시에 울고 있었다.
"가슴을 찢어놓고 휴지로 되겠어요?" 하던
김아중의 명대사가 기억난다.
외모지상주의는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고 말하는
이상한 단어다.
영화 속 주진모는 김아중의 뚱뚱했던 과거에 대해
조롱을 했고 그것을 들은 김아중은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김아중도 주진모에게 반했던 이유가
그의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외모를 보는 그에게 분노를 느끼면서도
정작 그의 외모에 반해 좋아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실..
영화를 보며 함께 울었던 친구는
통통한 외모때문에 힘들어했었다.
내가 보기엔 그저 나이가 어려서
젖살이 덜 빠진 거였지만
한창 마른 애들이 많던 사춘기의 나이로서는
그녀는 상처를 많이 받았고
그녀에게 상처를 준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성인이 되자 그녀는 살이 쪽 빠지고
일명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얼굴이 됐다.
남자친구를 몇 번 사귀더니
이성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제 그 애는
하얗고 날씬하면서도 글래머러스한 몸매에
남자들이 좋아하는 고양이 눈매상을 지닌
활발하고 성격 좋은 여자가 돼 있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숨겼고
그저 웃었다.
나는 어른이 되고 많은 사람들을 경험해보면서..
그것이 가식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친했던 친구에게 나 자신이
'가식으로 대해야 할 대상'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에
상처를 받았고 그 애와 점차 멀어졌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그 애가 어떤 여자를 두고 한 행동 때문이었다.
길거리를 걷다 만난.. 이름 모를 여자.
조금 통통한 몸매에 작은 눈매를 지녔던..
못생기지 않고 그저 평범한 여자.
그 애가 보라고 치지 않았다면 그저 지나갔을,
눈길 두지 않았을 그 여자.
그 애는 여자에 대해 말했다.
못생긴 게 꾸미지도 않으면 답이 없다.
나는 평범한 오징어지만
꾸미는 것에 엄청 무관심한 편은 아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애가
평소 나를 두고 저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부터 그애를 만날 때마다
그애의 가식과 더불어 저 말이 계속 내 머리를 괴롭혔다.
그렇게 점차 나는 그애에게서 멀어져갔다.
아니, 그 애는 내 마음속에서 멀어져갔다.
나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