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1991년 10월 7일, 해운대의 밤.
게시물ID : military_148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물의빈혈
추천 : 8
조회수 : 106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2/14 04:26:59


그 날에 대해서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불과 10분 전 이었다.

1991년 10월 7일, 이 날은 나의 입대일이다.

스무 한 살 가을에, 그러니까 어쩌면 가장 좋은 나이의, 가장 좋은 계절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징한 육개월의 흑역사가 시작되었다.


우주의 마지막과 같았던 1991년 10월 7일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의외로 세계사적으로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한 개인 흑역사의 서곡이 세계사적으론 그닥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었나보다.

카라의 니콜이 그 날 태어난 것으로 나온다.

그 정도가 가장 중요한 우주적 사건이었나 보다. 


그 해 여름방학쯤 아마 부전동의 병무청에 들러 신체검사를 받았던 거 같다.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가려고 휴학을 한 상태였고,

지하철에서 올라와 찾아간 그 곳은 전혀 마음에 드는 곳이 아니었다.

습했고, 웬지 모를 어두운 공기가 휘감고 있었으며,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그 곳이 결코 쾌적한 인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그 때 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나마 그 국방부 건물이, 

앞으로 몇 개월후 내가 입소할 해운대 53사단 신병교육대에 비하면,

라벤다 향이 은은한 샹그릴라 호텔 같은 곳이었다는 걸.


91년 당시에만 해도, 2대 독자에겐 6개월 방위라는 제도가 있었기에

난 그 제도가 없어지기 직전 거의 마지막 혜택을 보게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입대 전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는 있었고, 

난 그 6개월을 너무 가볍게 보았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그 6개월이 주단위, 월단위로 기억날 만큼

암흑의 역사였다는 것은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던 것이다. 


1991년 10월 7일, 53사단 신병교육대는 내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가을이긴 하였으나, 부대내는 산 밑의 사회와는 가을공기 자체가 전혀 달랐고,

연병장의 한낮 뜨거운 또약볕과 새벽의 시베리아 추위가 공존했던,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장소였다.


긴 줄을 서서 물품을 보급받았고, 훈련병 기간중 입어야 했던, 

6.25시절부터 쓰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낡은 전투복을 지급받았다. 

그 옷에서 나는 퀘퀘한 냄새를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연병장을 구를 때 입어야 했기에 새 옷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정이야 있겠지만,

이건 도무지 인간의 의복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맨살로 연병장의 모래위를 구르면 살이 까지니까 그걸 방지하기 위해, 

팔 다리를 넣을 수 있도록 구멍을 낸 헝겊 혹은 천쪼가리라고 불러야할까.


첫 날 만났던 교관의 별명은 독사였다.

자기 스스로를 독사라고 부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살짝 박명수를 닮은 사람이었는데,

웃음기를 제거한 표독스런 박명수라는 인상이었다.

시베리아 귤까라는 소리는 애교로 들릴 정도로,

세상에서 처음 들어보는 욕을 쏟아냈고, 욕이란 욕은 다 쏟아내는 욕의 창조자였고,

사람을 위축시키는 재주를 가진, 욕의 마스터였다. 그 앞에서 에미넴은 귀요미 일 뿐.


첫날부터 가혹한 pt 체조로 연병장의 흙이란 흙은 다 쓸고 다녔고,

중고등학교 때 간혹 2-30개 씩 하던 pt 의 단위 자체가 2-300개로 달랐으며,

목이 쉬어라 고래고래 내어지르며 배웠던 첫 날의 군가는,

음악이 이 정도로 싫어질 수도 있구나 하는 화성과 곡조가 존재함을 각인시켰다.


사회에서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비릿한 생선과 푸석한 쌀로 만든 음식을,

첫 날부터 완전히 먹어치우게 될 정도로 배고프고 가혹했던 시간들.

아직도 첫 날에 대한 인상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는게 너무 서글프다.


새벽에는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게 되는데,

훈련병들의 첫 날 잠자는 풍경은 정말 처절할 정도이다.

잠꼬대로 크헉크헉 흐느껴 우는 넘, 

여기저기서 \'훈병 ㅇㅇㅇ\'이라고 관등 성명을 외치는 넘,

낮에 배웠던 \'팔도 사나이\'를 부르는 넘.


이게 다 훈령병들이 자면서 만들어 놓는 풍경들인데,

극도의 피곤과 긴장이 뒤엉키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부조화의 외침들이 어둠을 가르고

인간의 발성으로 튀어나오는 걸 볼 때, 

이곳이 정말 지옥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언제 또, 두번째 날 10월 8일의 이야기를 하게 될 지 알 수 없다.

내키는 날이 올 지도 안 올 지도.

분명한 건, 추억은 아니었고 기억해 둘 만한 날도 아니었다는 것.

다만 잊기 힘든 기억. 

이제는 제대를 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을 줄 뿐이다.ㅎ


해운대 53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야간 불침번 경계를 서다보면,

지금은 노보텔로 바뀐, 당시 하이얏트 호텔의 네온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그 네온 불빛은 뭔가 사람을 멘붕에 빠지게 하는 마성의 불빛이다.


하이얏트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만 저 곳으로 내려가면 완전 다른 세계가 있는데,

이 곳 신교대는 모든 희망이 거세된 세계다.


단테의 신곡, 지옥문에 써 있는 문구.


\"이 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이 말이 정확히 적용되는 세계.

1991년 10월 7일, 해운대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