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 pressure(압박갑으로도 표현) 은 삶의 조건이지만, 특히나 십대 시절에는 그것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네게서 뭔가를 원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네가 주고싶어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나, 네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른 것을 네게서 원할 때, 너는 압박감을 느끼게된다. 설사 그들이 원하는 것과 네가 원하는 것이 일치한다 하더라도, 너는 약속을 지키고 자신이 하겠다고 말했던 것을 해야 하는 데서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십대에게는 압박이 생활의 일부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부분일 수 있다. 그것이 굳이 너를 괴롭히는 부분일 필요는 없다. 압박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이 굳이 부정적이어야 하는 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긍정적일 수 있다. 타이어는 압력이 있어야 굴러갈 수 있다. 조리기구도 압력이 유지되어야 요리가 된다. 이처럼 압력은 좋은 것일 수 있다. 만일 네가 압력을 계속적으로 유지한다면, 너는 뭔가를 이룰 수 있다. 때로는 굉장한 것을. 이것이 소위 말하는 "창조적 스트레스"다. 사실 우주 전체가 스트레스 체계다.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밀어낸다. 이것이 균형을 만들어낸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모든것을 제자리에 있게 만드는 것이다.
전 모든것이 제자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전 너무 심한 압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압력은 미묘한 것이다. 압력이 너무 강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벗어난다. 모든것이 균형을 잃고 마는 것이다. 네가 말하는 종류의 압력이 이런 거다. 그건 부모에게서 올수도 있고, 학교에게서 특히 많이 나타날 수도 있다. 청소년들이 이런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들이 다루는 자료들이 상호 모순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그들의 가슴은 삶에 대해서 이런 것을 말하는데, 바깥세상은 그들에게 다른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말하지만, 바로 그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을 제가 어떻게 다뤄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제가 그런 압력을 받으면서도 부모와 학교에 잘 대처해갈 수 있습니까?
상황에 대한 네 관점은 "옳지만." 네 부모와 학교의 관점은 "틀렸다"고 가정하는 건 부정확하다. 나중에 우리는 이 "옳고 그름"의 개념과 그런 양극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당분간은 너희가 세상에서 집단으로 창조하는, 삶에서 도움되는 것들은 그 사이의 어딘가에 놓여 있다고 여기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다시말해 네가 전적으로 "옳지"도 않고 어른들이 전적으로 "옳지" 도 않다는 것이다. 네 부모에게 네가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런 우선순위에 근거해서 네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왔는지를 설명해라. 그런다음에는 그들이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네게 설명해달라고 해라(물론 너로서는 골백번도 더 들었겠지만) 그 둘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는지 살펴봐라.
그런 지점이 없다면요?
그렇다면 너는 네 부모에게서 "압력"을 받고 있다고 믿어도 좋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너와 네 부모의 관심이 전혀 다른 듯이 보일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지만, 네가 상황을 보고 잇는 지점에서 보면 네게는 분명이 그렇게 보일수도 있고, 네 부모와 학교로부터 너무 많은 압력을 받는 듯이 여겨질 수도 있다.
오, 믿어주세요.; 전 어디서나 압력을 받아요, 그중 상당부분은 제 친구들한테서도 오죠. 이따금 그들은 제가 뭔가를 하거나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길 원해요. "나"처럼 느껴지지 않는 방식으로요. 전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나 자신에게 충실하려면, 전 무리에서 벗어나고 맙니다. 무리에 충실하려면 나 자신이 아니게 되고요.
남은 일생동안 다음 말을 기억하라. 그건 네가 앞으로 듣게 될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일 수 있다. "남을 배신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배신하는 것 역시 배신이기 마찬가지다. 그건 최고의 배신이다." 설사 네가 남을 배신하는 상황을 피할 요량으로 자신을 배신한다해도, 배신을 저지르긴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배신을 하는 가 안하는 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배신하는가의 문제다. 그런데 네가 자신을 배신하는 건, 남 또한 배신하는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너"는 전혀 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짜 너다. 따라서 너는 너 자신과 남들 모두를 배신하는 셈이다. 그러니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마라. 윌리암 세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플로나우스의 말을 기억하라. "밤이 낮을따르듯 너 자신에게 진실되라. 그러면 너는 누구에게도 거짓되지 않으리니." "무리"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라. 그 무리는 가버릴 것이다. 그 무리는 그냥 어느날 거기에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절대 가버릴 수 없다. 너는 시간이 끝날 때 까지 너 자신과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다.
이건 내가 하고싶은 것만을 하라는 말씀인가요?
그건 네가 어떤 일을 할 때 왜 그것을 하고 싶어하는지 좀 더 솔찍하게 판단하라는 말이다. 만일 네가 남들이나 무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 일을 하고자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너를 기쁘게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래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라면, 그 일을 하지 마라. 네가 너 자신의 일관성을 희생해서 남을 기쁘게 한다면, 그건 누구도 기쁘게 해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남"이라고 해도 그들이 정말로 너를 사랑한다면, 그들도 단지 자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너 자신이 아니게 만들 일을 네가 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만일 그들을 즐겁게 하려고 네가 너 자신이 아니게 되고 있다는 걸 그들이 안다면, 네가 한 일은 정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기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가 직면하고 있는 그 모든 압력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습니까?
"좋은" 압력과 "나쁜"압력의 차이, 유용한 압력과 무용한 압력의 차이를 "느끼는" 법을 배워라. 유용한 압력이란 너 자신이 본래 되거나 하거나 갖기로 선택한 뭔가가 되거나 그것을 하거나 갖고 싶다는 너 자신의 바램을 증폭시키는 압력이다. 반면에 무용한 압력이란 네가 다른 누군가에게서 인정받아야 할 필요성에서 나오는 불안이다. 결코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뭔가를 하지는 마라.
그건 무척 과격한 주장이군요!
그건 듣기에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리 과격하지 않다. 살다보면 남을 기쁘게 하는것이 자신을 기쁘게 하기도 하는때가 많이 있다. 이런경우에는 그렇게 하라. 다만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이 자신을 기쁘게 하지는 않는다면, 그럴 때만은 그렇게 하길 삼가라. 너와 남이 같은 이해관계를 함께 공유할 때, 달리 말해 너희 둘 다가 같은 것을 원할 때, 남을 기쁘게 하는 건 언제나 자신도 기쁘게 한다. 비결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과 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그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네가 그것들을 아주 자세히 살펴본다면, 너는 다른 사람이 바라는 것에서 자주 네가 바라는 바 또한 찾아낼 수 있다는 데 놀랄 것이다. "나쁜" 압력을 제가하는 건 너희의 이해가 공통되는 그런 영역을 찾아내는 데 있다. 너희가 공동의 근거를 찾아낼 때 너희는 화낼 근거를 잃게 된다. 언제나 잊지 마라, 너희가 공동의 근거를 찾아낼 때, 너희는 화낼 근거를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너는 다른 누군가가 너더러 그렇게 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네게 이롭기 때문에 너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걸 불현듯 깨닫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그거야 쉽지, 너희 어머니가 너더러 네 남동생을 봐달라고 했다고 하자.
윽!
그렇다 네가 그런식으로 느끼는 건 그것이 네가 하고싶지 않은 일이어서다.
아, 저......
하지만 네가 그 일을 하고 싶어할 이유를 찾아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대가를 받는다든지 하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것도 한 가지 이유다. 다른 이유들도 있을 수 있다. 대가는 다양한 형태로 올 수 있다. 이득이 그러하듯이 언제나 기억해라, 이득은 다양한 형태로 온다는 것을. 너는 나중에 너희 부모나 다른사람이 너와 "성공"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할 때, 그들과의 대화에서 이 지혜를 인용해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되덜아가서..... 네가 특정 시간 이후의 외출해도 될 만큼, 혹은 내년 여름에 시내에서 일거리를 맡아도 될 만큼 충분히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너희 어머니에게 증명하려 한다고 해보자...... 이제 너는 다른 복안을 갖게 되었다. 너는 너희 어머니에게 말한다. "제가 이 일을 얼마나 잘 해낼 수 있는지 엄마에게 보여 드릴께요. 전 제가 다른 일들도 똑같이 잘할 수 있다는 걸 엄가가 '인정하시길' 원하니까요. 전 엄마가 동생을 돌보는 문제에서 저를 믿을 수 있다면, 나 자신을 돌보는 문제에서도 제가 믿을 만하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거든요."
우와, 전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건 한번도 생각 안해봤어요. 차라리 당신이 우리 집에 직접 오셔서 우리 엄마에게 쪽지를 남겨놓으시면 어떨까요?
그거 재미있겠구나. 하지만 알다시피, 부모와 대화할 수 있는 진짜 괜찮은 방법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게 될 게다. 네 기분을 표현하는 쪽지를 남겨놓는 것도 그 중 한가지가 되겠지. 하지만 지금은 되돌아가서, 그만하면 예가 되었느냐? 또다른 예를 들어줄 수도 있다.
당신이 뭘 이야기하시는지 알겠습니다.
네가 어떤 일을 하는 건 대부분 그게 어떤 차원에서는 네 이해利害 에도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건 "너더러 그 일을 하게 만드는" 사람의 이해에만 기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 속에서 최상의 자기 이해관계를 보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바뀌게 만드는 기적이다. 그것은 압박감과 짜증스런 느낌을 깡그리 없애면서, 그것들을 네가 그 일을 하는 데서 느끼는 기쁨으로 바꿔준다. 이것을 표현하는 또다른 용어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