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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약19) 그 겨울, 터키아이스크림 아저씨
게시물ID : readers_148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애플블룸
추천 : 2
조회수 : 614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08/14 1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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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의 독서가, 글쓴이들이 모이는 책게에서 
좋은 글과 책을 공유합시다. 
우리 모두 따뜻한 글로 서로의 마음을 채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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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그때쯤 갤러리를 얻기 위해 인사동 길거리를 해매는 것이 일상이나 다름없었는데, 그렇게 인사동에 나올 때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는 터키아저씨가 있었다. 

"참... 겨울에 아이스크림 장사라니." 

나는 손님 하나 없이 외로이 서있는 아이스크림 터키아저씨를 보며 혀를 끌끌찼다. 하지만 터키아저씨는 손님이 있건 없건, 그 자리에 서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 모습이 생각없이 비웃기엔 사뭇 진지해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한테 다가갔다.

"이봐요. 한국말 할 줄 알아요?" 

나는 터키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덥수룩한 턱수염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사람 좋은 미소로 대답했다. 

"네. 한국에 온지 십년이 다 됩니다." 
"이 추운 날에 아이스크림 장사라니 다른 건 안파나요?" 
"아이스크림은 계절에 상관없습니다. 제 아이스크림은 먹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니까요." 
"그런 말 해도, 손님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야 어차피 이곳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했으니 여름에는 손님들을 받는데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에 이토록 손님이 없는데도 매일같이 이 자리에 나와있는 것이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하나 주쇼." 

미친 것일까. 아니면 뭔가에 홀린 걸까. 나는 아저씨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 달라고 부탁했다. 추워서 아무도 사먹지 않는 아이스크림이지만, 그럼에도 소나무처럼 꿋꿋이 장사를 하고 있는 터키아저씨에게 동정을 주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자, 터키아저씨는 씩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겨울에는 특별히 따뜻한 아이스크림이 있소만, 어떻소?" 
"따뜻한 아이스크림이요? 그런게 있을리 없잖아요?" 
"있다오. 시켜보시면 알게 되오. 분명 따듯해질테니..." 
"그럼 그걸로 주십시오." 

뭔가 미심쩍었지만, 난 터키아저씨에게 따뜻한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능숙하게 아이스크림 통에서 끈적한 터키 전통 아이스크림을 치덕치덕 꺼내더니 솜씨좋게 공중에서 돌렸다.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면, 언제 봐도 볼만한 재주임엔 틀림없었다. 

"다 되었소." 

아저씨는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한입 베어물자,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따뜻한 아이스크림이라니, 하긴 그런게 있을 리 없지. 그래도 왠지 아저씨가 '따뜻한 아이스크림이다'라고 말했던 걸 걸고 넘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뜻하다면서요?" 
"이제 따뜻해질거요! 흐압" 

그때였다. 터키아저씨가 기합소리를 우렁차게 내더니, 그의 옷이 순식간에 발기발기 찢어진 것이다. 

"아니...?" 

터키아저씨의 몸은 탄탄했다. 옷을 입고 있을때는 그저 좀 통통한 아저씨정도였는데, 옷을 다 찢고 나니 지난 십년간의 아이스크림 근육들이 온몸에 탄탄하게 뭉쳐있었다. 가히 매력적인 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고, 내 목덜미를 잡더니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내 옷을 벗겼다. 

"으윽!" 

난 신음했다. 그리고 잠시 후 깨달았다. 
'따뜻한 아이스크림'이란 뭘 의미하는 것인지. 
무언가 크고 따뜻한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형제의 나라에서 오는 따뜻한 마음...
아저씨는 날 뒤에서 껴안은 채 귓속말로 터키어를 속삭였고, 아저씨의 입김에서 가본적도 없는 터키의 냄새, 고향의 냄새가 느껴졌다. 

"아아...뜨거워......" 

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뱃속에 커다란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아이스크림 판매가 끝난 후 내가 계산을 하려하자 터키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젊은이, '뜨거운 아이스크림'은 돈을 받지 않는다네." 
"네? 하지만..." 
"그저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게." 

난 그의 완강한 태도에 어쩔 수 없이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나는 그 이후로 일이 생겨 인사동에 한번도 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때의 터키아저씨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어라...?" 

난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10년 전 그 자리에, 여전히 그때의 터키아저씨가 한겨울에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미소. 그의 불기둥 같은 힘을 한번도 머릿속에서 지워본 적이 없었으니까. 

"뜨거운 아이스크림 하나 주십시오." 

내가 터키아저씨에게 10년만에 말했다. 

"좋소." 

그는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하늘에는 눈이 아름답게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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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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