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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제나 고통을 싫어한다는 망상
게시물ID : phil_170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amel010
추천 : 0
조회수 : 716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9/12/18 02:48:57
사람들은 고통을 싫어 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더 싫어 합니다.
죽도록, 죽을때까지 죽기 전까지 싫어하는 죽음,
죽지 않기 위해서는 기꺼이 고통을 받아들이는게 사람이죠.

사람들은 언제나 고통을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몸이 죽음으로 부터 안전할때 고통이 없어도 안전하리라는 판단이 설때에 한해서 고통을 싫어 합니다.

죽을래? 고통 느낄래? 이렇게 물어보면 결국 대부분 죽지 않는대신 고통을 느낄테다는 답을 할것입니다.
우선 고통은 일반적인 다반사로 일어나는 지속되게 격었던 경험들이지만 죽음은 경험하지 않은 경험이 없는 무에 세계.

이렇게 인간에 기피도는 당연히 고통보다 휠신 죽음이 높으며.
또 언제나 죽음을 기피하고 두려워 하는 것은 생명에 기본 성향으로 수억년이 지나온 전통적인 성질 입니다.
자세히 보면 고통은 사실 죽음을 피하기 위한 감각 수단일 뿐이죠.

다시말하지만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고통을 피하고 싶다는 이유로 결코 네버 죽음을 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고통을 피하는게 좋으니까 우리는 죽음의 상태가 좋다는 비논리에 빠져 있으면 안됨.
죽지 않기 위해 감각이 필요하고 감각중에서도 가장 강한 위험신호인 고통.
우리는 고통 노이로제를 벗어나서 무던해지고 대담해지는것이 논리적인 것이고 옳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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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삭제]모루의철학자
2019-12-18 12:21:38추천 0
댓글 0개 ▲
2019-12-18 12:56:35추천 0
인생에는 원하지 않는 괴로움과 싫음이 반드시 언젠가는 따라옵다. 그리고 그런 괴로움과 싫음을 자기가 원해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없어요. 괴로움이 인간의 존재를 정당화 해준다니요? 병에 걸리게 방치해놓고, 나중에 약만 처방하면 그런 행위도 잘했다고 해줘야 겠네요. 또 말하지만 글쓴분께서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유대인이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런 논리대로라면 삶에 대한 사랑과 애착을 깨닫게 해줬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으니, 나는 진심으로 나치 독일과 히틀러에게 감사를 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거에요
댓글 19개 ▲
2019-12-18 13:13:20추천 0
저 밑에 어던 다른 분이 제안한 것처럼 현존하는 인류의 고통의 불가피함은 인정하지만, 존재하는 범위 내에서 다 나은 대안세계를 만들 수 잇으니, 고통의 최소화라는 목표에 더 점진적으로 접근하자는 공리주의적 제안이라면 저도 어느정도는 받아들일 수 잇습니다.. 글쓴분은 대체 자기 주장을 통해서 사람들이 뭘 받아들이길 원하신단 겁니까? 이젠 별말 안하고 싶긴 한데, 너무 황당해서 코멘트 남기네요
2019-12-18 16:19:39추천 0
첫문장에서 인생은 원하지 않는 괴로움이 까라오는데 그 괴로움을 원치 않았는데 태어났다고 했죠?
인생은 괴로움을 원치 않을지는 몰라도 인생을 저버리는 상황까지 가지 않습니다.
인생을 원치 않는게 아니라 괴로움을 원치 않는것인데
괴로움 없는 인생은 없으니 죽음이 좋겠다고 하면 아니다 죽음보다는 괴로움이 더 좋다고 한다는 얘기 입니다. 제 말이.
인가은 언제나 괴로움을 안좋아 할것 같지요? 좋아 한다니까요. 죽음이 좋아 괴로움이 좋아? 하고 물어 보세요.
대부분 죽음보다 괴로움을 택한다는 말 입니다.
괴로움을 다들 싫어 한다는것을 너무 과대하게 해석해서
"인간은 죽음도 불사하고 괴로움을 싫어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히신 겁니다.
2019-12-18 16:30:08추천 0
그러니 삶에는 인생에는 고통이 있으니 죽음이 나은것이란 말이 틀린것 이죠.

이제 좀 확실히 해야 할듯.
고통이 있는 인생이 좋으냐 고통이 없는 죽음이 좋은것이냐? 이게 문제죠?
이걸 태어나게 라니마니 말을 햇갈리게 만들 필요도 없는 것이죠. 그런건 문제를 호도하게 될 뿐입니다.
그냥 고통이 있는 인생과 고통없는 죽음중에 어떤것이 좋은가?에 문제죠.
그래서 죽음이 좋으신가요?
말을 못하겠죠?
차마 죽음이 좋다고는 못하는데 사실 이 문제는 고통없는 죽음이 좋다는 주장에 대한 호도된 문제 일 뿐입니다.
니가 태어날 사람의 탄생을 어떻게 생각 하느냐? 고통 안싫으냐? 안태어나면 고통 없잖아? 이런식의 야바위죠.
[본인삭제]MiŜatasVin
2019-12-18 16:43:04추천 0
2019-12-18 16:48:30추천 0
.....;;;

아니, 이 세상에 살고 싶어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있는 데요???

태어났으니까 살고 싶은거지.
2019-12-18 16:56:26추천 0
네 바로 그것이죠.
태어난 사람은 살고 싶어 합니다.
그것만 잊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고통이 싫으니 죽음의 상태 안태어난 상태가 좋지여? 하는 속임수가 안통하게 되죠.
2019-12-18 17:05:51추천 0
저는 이 세상에 살고 싶어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내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또 그런 결정을 권장한 내 부모와 이 사회에 이의제기적 사고를 하눈 저가 하나도 문제 없다는 생각인데요
2019-12-18 17:06:03추천 0
태어나는 것 인생이 되는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주장은 누구를 향하고 있고 무엇을 말하는가를 잘 봐야 합니다.
누구를 향해서 주장하고 설득하고 있습니까? 살아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바꿔라고 주장 하는 것이죠?
그리고 무엇을 말 하고 있습니까? 살아있는 사람에게 말하는데 뭘 말합니까? 죽음이 더 좋다고 말하고 있죠?
태어난 인간에게 좋은가는 사실 가리기 어려운 문제일수 있죠. 엄격히 하자면 우리에 입장을 빼야 맞는데 그게 가능 한가요? 안되죠.
그래서 태어난 사람 입장에서 좋겠냐는 것이 진짜 문제가 아닌것입니다.
다룰순 있지만 엄격하게 하려면 힘들고 판단 하기조차 어렵죠.
당신이 입장이 되어 봤냐는 식의 자격문제가 있으니까요.
결국 남는것은 "태어난 당신들 지금 태어난 자신이 좋은 상태냐?" 이고 사실 이게 문제의 핵심이죠.
2019-12-18 17:10:43추천 0
삶에 대한 불만과 삶을 저버릴만한 근거로써의 도덕적 이유는 다르다 생각하는데요
죽음과 삶중에 죽음이 더 도덕적이라는 주장은 불만으로 끝내는 주장이 아니고.
삶을 저주하고 파괴하는 정당성에 대한 주장이니까 .
원치 않는 삶이라는 정도는 불만족 정도의 주장이 아닙니다.
더 병적이죠,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이 병이라고 할때에 말이죠.
불만은 자극에 더 가까운것이라 봅니다만.
2019-12-18 17:10:49추천 0
어짜피 이 세상에 태어난 내 존재에는 불가피한 고통과 그것의 궁극인 죽음은 겸허하게 받아 들이지만, 그래도 삶에 결부되는 고통과 아픔, 계속되는 죽음은 재생산으로 되물림 하지만 말자. 이 정도의 당위만 말하는 겁니다. 자꾸 이상한 쪽으로 왜곡하지 마세요. 제발
2019-12-18 17:24:21추천 0
다시 말하죠.
태어난 인간은 살고싶어 합니다,
고통보다 죽음인 상태를 더 싫어 합니다.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 죽음을 좋아할지 고통이 있는 삶을 좋아할지는 잘 모르죠.
그것을 판단 해야 한다면 우리 사는인생의 삶에대한 욕망이 작용 할수밖에 없으니 판단을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판단을 할수는 있죠.. 그판단은 고통있는 삶을 선호하는 자에 판단 입니다.
고통없음보다 고통있는 삶을 택하는 인간은 삶을 연장하기 위해 자신이 죽어도 죽지 않는 후손을 낳습니다.
그리고 낳아진 인간 죽음에서 삶으로 나오게된 인간은 또한 고통있는 삶을 선호 합니다.
2019-12-18 17:34:22추천 0
지금 보면 태어난 인간 이면서 태어난걸 싫어 하는 주장을 하고 있으신 건데요.
일부가 그런 생각을 하지만 병적인것이거나 지나가는 불만이죠.
일반적으로 태어난 인간은 삶을 좋아 합니다 고통이 있는 삶일지라도 말이죠.이걸 스스로도 말 했잖아요?
다들 좋아한다는 것을 전제같이 깔아 놓은 다음에 그 반대로 이게 좋냐?는 주장을 하시면 안되죠.
다들 인생인 이상 삶을 좋다고 하네.. 그이유를 생각 해 보세요.
그게 맞는것 아닐까요?
인생에게는 인생이 좋은데 인생이 안좋은 이유는? 이런식의 말이 안되는 질문으로 빠지시지 말고요.
2019-12-18 17:38:20추천 0
인생 아닌 상태가 좋은이유는
인생 아닌 상태일때는 있을수 있죠. 알수도 있을지 도..
(하지만 판단은 주체가 하는데 주체는 삶인것인데 그럼 인생 아닐때는 판단이 없슴.)
하지만 인생이라면 인생일때를 좋아 합니다.(인정 하시고 있지만, 이게 논리가 연장된다는것을 애써 무시하는듯?)
2019-12-18 17:43:46추천 0
존재적인 과정에서 고통은 불가피한 경험이고, 행복은 임의적이고 예측적인 가능성에 불과해요. 그러므로 존재를 대물림 하는 행위에서 우리가 발전시켜온 최선의 도덕관을 적용한다면, 출산은 비출산보다 더 도덕적인 결정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미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단 것에 강제를 했해왔다는 것부터가 도덕적으로 위선적인 행위일 뿐이에요
2019-12-18 18:31:08추천 0
계속 설명 하게 되는데요..
고통은 불가피하고 원치 않는 것이죠. 고통.
그런데 좋아하고 원하는 행복 쾌락은 있으면 좋은정도로 확실하지 않다 이말이죠? 그러니까 이걸 왜 사나? 이거죠?
싫어하는 고통은 불가피하고. 좋아하고 원하는 삶은 싫어하는 고통이 있어야만 가능하죠.( 계속 이말을 제가 했습니다)
그리고 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인 삶(우리는 쾌락 행복을 원하기에 사는것이 아니고 삶을 원하기에 살아내는 것입니다!!)
에서 쾌락 행복은 고통과 마찬가지의 비중과 빈번한 정도로 발생한다고 보는게 맞죠.
그러니까 맹점이 바로 쾌락과 고통을 비교해서 삶을 절대적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고통에 비교해서 쾌락량이 더 손해니 삶이 가티 없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말하지만.. 우리는 삶을 고통과 쾌락이 계산이 어찌 되든 원하고 있습니다.
고통 쾌락 계산 하지 마세요 어차피 비슷하지만 그게 상관없이 삶이 중요하니까요.
고통 게산 해봐야 그래도 삶이 좋다는 답이 나옵니다.
왜냐 인간은 삶을 고통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고통이 있어도 삶을 원한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
인간은 그냥 사는게 아니고 고통도 감내하면서 까지 살기를 원하고 좋아 합니다.
그냥 사는게 아니고 행복없으면 디질 인생이 아니고 고통까지 겪어도 사는걸 좋아 한다는 말 입니다.
고통이 있는데 왜 살아야 하는게 아니라니까 왜 자꾸 그러시는지..
고통을 격으면서도 사는 것을 원한다니까요 좋아해요.
인간이. 쾌락 있으면 더 좋죠. 그런데 쾌락도 행복도 항상 고통처럼 그만큼 있습니다. 언제나 있죠.
행복은 삶이 이어질때 우리가 기본적으로 느끼는 것이죠.
고통이 그러하듯이 쾌감도 감각이라는 필수적인 요소로 삶과 함께 합니다.
정도에 따라 자극적이냐에 문제이죠.
아 그때가 행복했구나.. 이말이 왜 있겠습니까.
우리는 일상에서 행복과 쾌람을 느끼지만 지난후에에 고통에 비하여 판단을 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 뿐이죠.
고통도 행복도 삶을 유지할때는 언제나 같이 하는 것이죠.
2019-12-18 18:33:52추천 0
좋아한다 즉 선호도를 고통과 쾌락으로 놓으려고만 하니까 이러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좋아하는 실체가 삶인것을 아셔야죠.
삶에 비해 행복이나 고통은 부차적인 문제가 죄는 것이죠.
그런데 고통이 있다고 좋아하는 대상의 본질 실체인 삶을 싫어할수 있겠습니까?
2019-12-18 18:47:53추천 0
제 관점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생이 금물인줄 알면서도 별수 없이 살아가는거 같은데요.  그러면서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또 그걸 복제하는 거죠. 이거 자체는 어쩔 수가 없죠. 감정은 생각보다 걍하니까
2019-12-18 18:56:08추천 0
우리는 사기를 잘처서 상대가 사실 원하지 않는데 원한다는 답을 하게 유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기치는 방법을 잘 따져보면 말이 안되는 논리가 비약되고 반대되게 연결 되는걸 알수 있죠.
우리는 삶을 고통이 있다해도 원합니다만.
사기꾼 들은 "너는 고통을 싫어 하잖아~ "살살 유도해서 죽음선호를 택하게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 모두 언제나 진실되게 답을 하는 것은 아니죠.
자신이 선택한 답이 틀릴 수 있다는것을 안다면 논리적인 순서가 틀린지 부터 살펴야 합니다.
인정 해버린 전제와 부딛히지는 않는가..
2019-12-18 19:13:20추천 0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의 별 볼일 없음을 잘 알거 같아요. 하지만 자신들의 별 볼일 없음을 견뎌내기 힘들어하죠.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추종자를 만들어 내고 싶어하는 거 같아요. 가장 손쉬운 추종자들이 내 아이들인거 같아요. 그 아이들은 또 언젠가 이런 질문을 할수 있을 거에요. 왜 이런 별 볼일 없는 사건에 나를 끌어 들였냐고. 그때 다른 선택을 할수 있지 않았냐고. 하지만 그 아이들도 자신들의 별 볼일 없음을 견디기 힘들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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