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theguardian.com/lifeandstyle/2020/jan/10/i-campaign-for-the-extinction-of-the-human-race-les-knight 나는 인류의 멸종을 위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사라지면 다른 종은 회복 할 수 있다
50 년 전, 나는 지구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인간 존재들의 평화롭고 단계적인 멸종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수십만 종의 멸종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우리가 사라지면 생태계가 회복되고 모든 것이 풍부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더 이상 자원을 위해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 아이디어는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받아들여지진 않고 있다.
자발적인 인간 멸종 옹호를 위한 나의 여정은 학교에서 시작됐다. 나는 미국 오레곤주에 있는 작은 사막 마을에서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났다. 초등학교가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신입생이 입학했으며, 지역 교회에서 받는 수업이 넘쳐날 정도였다. 내가 사학년이 되던 해에, 우리는 시립(카운티) 도서관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우리가 배우는 동안 직원들은 장서들의 목록을 점검 했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식당마저 교실로 바꿔야 했다. 자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성장하면서 이와 같은 상황을 겪었다.
별생각 없이 군에 입대한 후, 폴 에를리히 (Paul Ehrlich)의 「인구 폭탄 (People 's Bomb)」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들의 캐치 프레이즈는 둘에서 멈추자(Stop at Two) 였지만 시간이 그리 오래 걸려선 안될 것이란 예측에는 많은 계산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 이미 37 억이란 인구를 수용하고 있었다. 두 자녀가 아니라 한 자녀마저 즉시 중단해야 했다.
25살때 나는 내가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의과 대학에서 학생(인턴) 의사에게 첫 시술을 받는 대가로 할인된 정관 절제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나는 예비(공급?) 교사 직위를 얻어서 인구 문제에 대한 공부를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1970년 해의 여름에 미국에 사는 수천명의 사람들은 대혼란을 경험했다. 인구 이주가 매우 빈번했으며, 어디에서나 이사를 떠나기 전의 지역이 더 좋았으며, 지금은 너무 혼잡하다고 불평을 해댔다. 1980 년대 후반, 나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정착하여 자발적 인류 멸종 운동이라고 부르는 개념의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생태계가 이전의 영광으로 돌아 오도록, 사람들이 출산을 멈추도록 권장하며, 그럴 수록 이미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1996년에 웹 사이트를 만들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나 혼자나 그런 생각을 한다고 이메일을 보내 왔다. 증오 메일도 수십 차례나 받았다. “당신이나 먼저(하시죠)" 제법 흔한 도발이다. 나는 이미 했어. 그러니 다음번엔 당신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남은 이 개념에 대해 깊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다. 매일마다 신중하게 의견 차이를 좁혀 나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내 믿음을 공유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매년 수백 명의 지지자들과 대화를 한다. 우리는 인도에서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자원 봉사자가 있다. 나는 여자들을 만날 때마다 나를 통해서는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정직하게 설명했다. 결혼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어쩜 나는 좋은 여자들을 만날 기회를 무수히 놓쳤을 것이다.
지금도 멸종과 기후 파업의 위기에 대항하는 운동조차 인구 위기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좀더 상위의 인구 집단 연구 기관은 0 명 또는 1 명 인구 증가 정도는 수용할 수 잇다고 예상하고, 여전히 둘에서 멈추라고 권유한다. 둘 조차도 너무 많다 : 컴퓨터 모델링은 심지어 한 자녀 가정의 인구 수용조차 2100 년에 이르면 50 ~ 100 억 명의 사람들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운동의 기본 개념은 동일하지만 내 동기는 더 진화했다. 나는 처음에는 생태학자였으며 인간의 요구보다는 생태계에 미치는 우리의 영향에 더 중점을 두었다. 나는 이제 일부분 새로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출산은 가라앉는 배 위에서 바지선을 띄우는 것과 같은 도덕적인 가치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아이들이 사라진다면 사회의 규모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아이들이 주위에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사람들은 연금 수급자를 지원하는 근로자의 수가 줄어드는 걱정을 우리에게 말하지만 경제 시스템은 인공적이며 조정할 수가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노예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예를 낳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멸종하면 다른 종들은 되살아 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상에 사람이 없어지는 날을 결코 보지 못하게 겠지만, 우리가 빨리 사라질 수록 세상이 얼마나 웅장해 질 수 있는 지는 상상해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