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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사 1. 기동력편
게시물ID : history_149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나가다슬쩍
추천 : 11
조회수 : 1305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03/21 11:52:46
전술사에 대해서 한번 글을 쓸까 하다가 먼저 몇가지 내용을 올려보는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한번 짧게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핵심은 노는 병력을 만들지 않는것입니다. 전장의 선택, 병력의 집중과 이동은 군사전략의 기본입니다."(은하영웅전설, 양웬리)


고대의 전쟁과 근대의 전쟁을 나누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기동력"입니다. 
특히 고대와 근대의 기동력의 차이는 "전장"에서의 기동력이 아닌, "전국 전체"의 기동력을 의미합니다.

기동력은 고대의 전쟁에도 중요시 되었습니다.
한니발이나 스키피오, 카이사르같은 명장들은 기병대를 엄청나게 중요시하였으며, 
한세대 전의 전술가인 알렉산더 역시 기병대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대의 전쟁에서 "기동력"은 단순한 기동전력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주력은 어쩔수 없이 "보병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고대에도 파르티아라던가, 훈족, 몽골등의 기병 중심의 전투부대가 없는 것은 아니였지만, 
이들의 강력함은 "군대"에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병은 육성하는데 너무 힘이 들고, 숙련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죠.
영화 브레이브하트에서도 윌리엄 월레스는 유리하게 전투를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귀족들 위주로 구성된 기병의 도움이 없어서 
패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기동력 자체가 전술의 핵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부터입니다. 
이전에도 기동력을 중시하는 전술가들은 있었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이 그들과 가장 큰 차이는 전력의 집결과 이동을 전투중에 행했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전쟁은 상대와 만나면 서로 마주보면서 전투를 실시하면서 기동력을 가진 기병을 이용해 상대의 측면이나 후방을 노리는 전투였습니다.
이러한 전투에서 가장 핵심은 언제 기병대를 투입하는가?상대의 전열을 어떻게 붕괴시키는가?에 집중되어 있었죠.

그런데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 규칙을 깬 지휘관이였습니다. 
2.gif

위의 지도는 로스바흐 전투의 약술입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전투 직전까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던 처지였습니다. 

프로이센은 2만여명, 오스트리아 프랑스 연합부대는 4만여명.
전력상으로 상대는 2배였으며, 상대는 병력을 좌우로 나누어서 프리드리히 대왕을 포위하려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상대는 대군을 1, 2군의 둘로 나누어 1군 본영은 상대를 견제하고 좌익으로 도는 2군이 프리드리히 대왕의 우익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대로간다면 숫적으로 2배의 적에게 포위되어 절딴날 상황이였지요.

절체절명의 위기. 프리드리히 대왕은 여기서 결단을 내립니다.

"전장은 우리가 정한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주둔군을 모두 움직여 후퇴를 감행하면서 일부 기병대를 나누어 상대의 선발대를 작살냅니다.
그리고 상황을 모르고 전진하던 상대의 주력 2군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분명 프로이센 진영의 좌측을 습격할 예정으로 진형을 짜고 있었는데, 프로이센군이 정면에 나타난 것이지요.
전력의 격차는 2:1 이였지만, 프로이센군은 전장을 바꿔서 전력비를 1:1로 바꾼 것이지요.

병력을 나누어서 들어오던 연합군 2군은 당황합니다.

"어째서 프로이센 군의 주력이 여기 있는거야?!!!! 이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다! " 


프로이센군의 좌익을 공격할 예정이던 우익부대는 예상과는 달리 프로이센의 주력부대를 맞아서 붕괴되고 맙니다.
여기서 자이드리츠 장군의 기병대가 엄청난 활약을 하게됩니다. 그러나 자이드리츠의 부대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던 상황이였고, 
비록 반절짜리 상대였다고 해도 프로이센군의 전군과 맞먹는 전력을 상대했고, 
긴 거리의 무리한 이동 때문에 프로이센군은 아직 위기가 계속되었던 상황이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연합군이였습니다. 우익이 공격받았다는 보고를 받고도 무식하게 그대로 진군을 한거죠.

"뭐야? 프로이센군이 우익군을 공격해? 우리의 존재를 무시하다니 그건 있을수 없는 행동이다! 상대의 주력은 우리의 정면에 있다. 전진!"

네. 연합군의 중앙부대는 정면에 프로이센군이 있을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당초의 작전을 고수합니다.
덕분에 프로이센군은 첫 전투에서 입은 손해를 정돈하고, 흩어진 전열을 추스릴 시간을 얻게 됩니다.
전열이 추스러지자 자이드리츠의 기병대는 상대의 우익을, 그리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상대의 좌측 정면에 맹공을 가합니다.

"이럴리가 없어! 적은 왜 주둔해 있다던 전쟁터에 있지 않은거야?"

상대 지휘관은 패주하면서도 왜 프로이센군이 거기 있는지 이해를 못했다고 하죠.

연합군은 5천명의 사상자, 5천명의 포로를 남기고 후퇴했으며, 프로이센군은 500여명의 피해를 입었을 뿐이였죠.
그리고 이 전투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전쟁터를 재설정함으로서 승리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군사학적으로 보았을때, 프리드리히 대왕은 위의 양웬리가 이야기한 원칙을 모두 지켰습니다.

1. 노는 병력을 만들지 않는다.
2. 우리의 전장을 적에게 강요한다.
3. 전장을 선택하기 위해 최대한의 기동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사상은 이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까지 전수되어서 프랑스군의 쾌진격의 밑바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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