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주인이던 야야입니다.
원래는 롤링발칸으로 지으려했으나 야야라는 이름이 왠지 더 마음에 들어 그렇게 지었습니다.
가게 특성 상 남아도는 박스가 엄청나게 많아 상자왕국을 꾸려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흥미가 없다가도 곧 상자에서만 살고 그러네요.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해서 창쪽에 둔 것들이 젖어들어 지금은 다 철거됐고, 심하게 조잡해서 찍어둔 사진도 없지만... 아무튼 고양이가 박스를 정말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뀨!
뀨...
처음 데려올 때만 해도 이유는 단순히 외롭고 심심해서였죠.
고양이는 도도하고 뭔가에 무관심한 이미지가 연상되어 크게 관심가져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놀고, 잘 지내고 그럴 줄 알았습니다.
배고플 때 밥 주고, 목마를 때 물 주고.
그리고 심심할 땐 '날' 놀아주고.
그러나 야야는 제 편견과 심하게 달랐습니다.
아직은 어린 고양이라 그런지 외로움을 많이 타고, 일 좀 하려하면 키보드를 뭉게 귀찮게 굴고, 시도때도 없이 놀아달라고 장난감을 가져오고.
언제는 작정하고 써내려갔던 그날의 일거리들을 모조리 지워버린 대참사도 벌였죠.
부족한 것 하나 없이 대해줘도 전 주인과 어떤 생활을 보냈는지 목욕만 시키려들면, 그리고 손톱 좀 깎으려하면 손을 걸레짝으로 만들기 일쑤요
좋은 뜯음판을 만들어줘도 집안 찢을 수 있는 사물들은 모조리 갈가리 찢어놓고
여전히 일을 방해하고
여전히 귀찮게 합니다.
주택이지만 저희 집은 가게입니다.
밖은 곧장 도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길을 걷다보면 튀어나오는 게 로드킬당한 동물들입니다.
마당 또한 수많은 차들이 다녀가죠.
어릴 적 눈 앞에서 차 바퀴에 말려들어간 강아지를 본 뒤로, 저는 적어도 제 집에서만큼은 바깥에 산 동물을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따라서 밖에다가 키운다는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혼도 내봤습니다. 물려고 들 때마다 머리에 딱밤을 날리고, 할퀼 때마다 시끄럽게 고함도 질러봤죠.
돌아온 건 당연했습니다. 더욱 강한 할퀴기! 더욱 강한 물기! 언제는 제 손톱 밑에 지 발톱을 밀어넣어 저를 신나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방식을 바꿨습니다.
혼내는 대신,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에 찢을 거리가, 그리고 놀 거리가 있는데 그걸 못하게 하면, 그렇게 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없는 고양이게는 단순한 학대에 불과하다고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치웠습니다.
굳이 자를 필요가 없는데 꼭 이걸 잘라야겠냐 묻는 듯이 바라보는 고양이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며 허락을 구하듯 손톱을 잘랐습니다.
욕실에서 기다리며, 고양이가 충분히 물을 겁내지 않을 만큼 기다리고, 손에 물을 묻혀 털을 적시고 좀 더 많은 양의 물을 뿌리고, 그 다음에야 목욕에
들어가는 등 충분한 이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놀아달라고 하면 놀아주었고, 나가자고 하면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