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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시계가게
게시물ID : readers_149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조살개맛
추천 : 1
조회수 : 23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8/15 15: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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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베만 가지 말고! 베스트만 가지 말고! 내가 말이여 병신백일장 하겠다고 책게를 요기 저기 둘러 보는디 재밌으니까 좀 와봐.



언제 어디서나 항상 존재한다.


소녀는 머리 위로 시계를 들어올렸고 곧바로 내쳤다. 시계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나뒹굴고 유리가 부서져 바닥을 쓸었다.시계 안에 들어있던 뻐꾸기가 밖으로 나와 소리를 질렀다. 어찌 보면 애처로운것같기도 하다. 소녀는 뻐꾸기를 짓밟았다. 소녀는 울고있었다.

옆을 보았다. 아까까지 그 뻐꾸기 시계가 자리잡던 먼지쌓인 자리는 원래 제 자리인냥 다른것이 차지하고 있었다. 끝이 없었다.

이번엔 뭐가 마음에 안든건데! 소녀가 소리쳤다. 마치 공포영화에 나올듯한 괴성이었다. 목에서 나온 쇳소리가 건물 안을 그르륵 긁었다. 대답은 없었다.



시계가게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시계를 사는것은 그 사람의 시간을 사는것.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시간을 사고, 그 시간 안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혼자분의 시간을, 누군가는 자식까지의 시간을 사간다. 또 누군가는 과거의 시간을 사가기도 한다. 자기가 시간을 사는줄도 모르고.
소녀는 그 가게의 주인이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른다. 다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억겁의 시간을 살아가며 존재할뿐이다. 어느 시간대에, 어느 곳에 속해있지 못하고 그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시계가게의 부속품인듯 존재할뿐이다.

시계가게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다는듯이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언제'가 와서 누군가 시계를 산다. 그러면 시계가게는 없어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원래부터 없었다는듯이 자연스레 떠나보낸다.

그리고 그 시계가게의 문제점은 적어도 소녀는 사람이라는것이다. 몸은 어떨지 모르지만 자아만은 완벽한.

"이번에는 뭐가 마음에 안들었어!"

소녀가 울부짖었다. 이미 수차례 뒹굴어 머리카락은 먼지와 뒤엉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는듯했다. 이래봤자 쓸모없다는것은 소녀가 가장 잘 알고있었다.

적어도 소녀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사람과도 같았다.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연이 만들어질 때 즈음에는 항상 누군가 시계를 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고, 아마 후에도 같을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아파하면서도 사람을 끊을 수 없었다. 사람이니까.
소녀는 항상 혼자다.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는 떠돌이 여행자 신세. 아마도 소녀와 같은 운명은 세상에 없을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도 알 수 없고, 그렇기에 이해란 없었다.





"이 시계, 주세요."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였다. 외관상 소녀와 비슷해보이는 나잇대. 소녀는 턱을 괴고 눈을 내리감았다. 이번에는 빠르게 왔다가는구나. 낮은 한숨을 그렸다.

"아니, 아뇨. 주지…주지 마세요. 내가 왜 이러지. 잘못 들어왔나봐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남자애는, 그 소년은 빠르게 달아났다. 소녀가 눈을 부릅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년은 시간을 사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소년은 왔다. 시계를 사러. 그리고 계산 직전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달아났다. 소녀의 머릿속에 하얀 아네모네가 봉우리졌다.



"이름이 뭐야?"

소녀는 인연을 만드는법을 알았다. 그만큼 소녀의 과거는 인연에 절박했기 때문에.
나이는? 어디 살아? 학교는 이 근처니? 넌 왜 시계를 안사?
항상 마지막 물음음 하지 못했다. 대신 더운 침 한 번 삼키고, 웃었다.

처음에 당황하던 소년은 웃으며 다가오는 소녀가 나쁘지 않았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곧 잘 대답했다. 그쪽은 몇 살이에요? 소녀는 소년이 처음으로 질문을 했을 때를 잊을 수 없었다.

"너랑 동갑이야."
"아, 그러면 반말해도 돼?"

거짓말. 소녀는 억겁의 시간을 살았다. 적어도 열댓살의 소년과 동갑일리는 없다.



소년에게 소녀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동갑인데 학교는 왜 안가는걸까. 왜 그런 낡은 시계 가게에 있는 걸까. 왜 머리가 그렇게 희끄무레할까.
창백한 피부에 하얀 머릿결은 가끔 자신과는 다른 존재같아서 무심코 소녀를 잡기도 했다. 한순간에 사라질거 같아서.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마치 꿈처럼 흩어질까봐. 그게 조금, 무서웠다.

봄은 항상 싱그러운 바람을 타고 흘러온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짧게 떠나간다. 소년에게 그 새하얀 소녀는 겨울보다는 봄같았다. 아직까지 덥지 않은 기분좋은 봄바람이 짧게 스쳐갔다. 유채꽃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면 가끔 그런게 나오잖아. 여름에 해바라기 밭 사이 나있는 작은 길 위에 남자아이가 끌어주는 자전거 뒤에서 원피스와 밀집모자를 쓴 여자아이가 타고있는거. 난 그런게 항상 하고싶었어."
"아직 해바라기가 피려면 멀었는데…."
"그러니까 여름에 꼭 하자고."
"……응."

소녀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도시쪽이 아니라서 사람이 많이 없고, 또 사는데에 바빠서인지 애써 만들어둔 공원은 거의 버려져있다시피했다. 관리를 안한 공원은 커다란 들판과 비슷했고, 그 곳이 바로 소년이 애써 자전거를 끌고 온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공원에는 다채로운 색의 꽃들이 아니라 노란빛의 유채꽃만이 파도처럼 살랑거리고 있었다.

"유채꽃도 예뻐."

바람이 너울거렸다.

"아이야,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소녀는 가끔 소년을 아이라 칭했다. 소년은 그럴때마다 어쩔 줄 몰라했다. 동갑이라 하긴 했지만 소녀가 저보고 아이라 할 때, 그것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


물론 소년은 소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소녀가 신기한 사람이라해도 어느정도 상식의 선이 있기 때문일것이다. 소녀는 괘념치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소년이 찾아왔다. 훨씬 가벼워진 교복을 입고 이제 언뜻 찾아온 더위에 땀을 흘리며. 소녀는 웃으며 맞아주었다. 이제 소년은 제 의지로 시계가게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소녀의 머릿 속 아네모네가 활짝 피는것 같았다. 소년은 더웠는지 헥헥거리며 물을 요구했다. 요즘들어 체력이 약해진거같다 생각하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안색이 눈에 들어올정도로 창백했다.
소년의 시간이 끝나가고있었다. 소년은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 학교 끝나고 바로 집에 가지 말고 여기 들렸다 가."

소녀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얼핏 강압적이기도 했다. 소년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왜인지 그럴 수 없었다.
소녀는 울고싶었다.




"이건 내 선물이야."

소녀가 준 것은 큰 시계알을 가지고 있는 단순한 모양의 손목시계였다.

"내가 시계를 받으면, 네가 가야한다며."

믿지는 않았지만 잊지도 않았다.

"네 시간이 끝나가고있어. 만약 이걸 받지 않으면 너는 죽지도 못해. 그냥 사라지는거야.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

소년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무서운 이야기였다.

"우린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거야. 그렇지? 나는 언제 어디서나 있는 시계가게에서 항상 너를 기다릴테니까."

소녀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 달래듯 조근조근 말을 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달래는 것일수도 있었다. 소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눈을 감았다 떼니 무거운 속눈썹이 눈물을 내리눌러 떨어뜨렸다. 소년은 아마 자신이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믿고있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도 소년은 소녀의 말을 믿고있었다. 그저 그렇다는 사실을 밀어낼 뿐.
어림잡아 반 년. 그 시간만이 오로지 소년과 소녀의 교집합이었다.




소녀는 유채꽃이 드리는 공원에 다시 찾아갔다. 이제 제법 바뀐 풍경 속에서 거짓말처럼 이곳만은 그대로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또 다시 여기에 올 수 있었다. 혹시. 설마.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지 않을까. 가슴이 울렁거렸다.

다시 시계가게를 들어가니 누군가가 이미 들어와있었다. 열 살 전후의 어린아이었다. 안돼. 너무 일러. 소녀의 눈에 당황과 절망의 빛이 얼룩졌다. 아이는 소녀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맑고 명랑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돌아가기 전에 나에게 이 시계가게를 들려 누나한테 전해주랬어요."
"할아버…지?"
"두 번째 만남에 당신이 이렇게 하라고 일렀다고."

두 번째 만남? 할아버지? 소녀는 그 할아버지가 소년이라는 것을 그닥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울지 않았고 울고싶지도 않았다.
두 번째 만남. 두 번째 만남. 두 번째 만남.
그 사실이 중요했다. 나는, 다시 만날 수 있어.

"그러면 이 시계 하나 주세요."

어린아이가 개구지게 웃었다.








우리는 많은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당시에만 드끓는 분노는 시간에 무뎌져가 희미해져 얼룩만 덩그라니 남습니다. 이번에는 잊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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