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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 악마가 있다.
게시물ID : bestofbest_1492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잿빛아래
추천 : 474
조회수 : 49709회
댓글수 : 4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02/17 01:45:48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2/16 04:29:12
 
 
글쓰기 앞서 독백형식으로 쓰겠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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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나한테는 어릴적의 잊을 수 없는 몇가지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1994년 인천에 위치한 산동네에서 내가 태어났다.
 
 
어릴적 나는 누구보다 밝게 웃는 작은 장난꾸러기 였다.
희미하게 빛이들어오는 반지하에서 엄마 립스틱으로 벽에다 낚서를 하고
근처 피복공장 지붕에 집에 있는 신발은 다 던져놓고,  그런 작은 꼬마였다.
 
 
코묻은 돈으로 포켓몬이 그려진 빵을 사서 맛있게 먹던
철없던 시절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가난 이란걸 잘 몰랐다. 꾸깃꾸깃하게 구겨진 분홍색 천원짜리 한장이면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나는 철이 없었다.
 
 
 
 
1999년 봄, 우리집은 이사를 했다.
 
이사온 집은 조그마한 빌라였지만, 전에 있던 집보다 컸다.
무엇보다도 햇빛이 잘드는 집이었기 때문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다녔고, 전에 살던 동네엔 없었던 '놀이터' 라는 곳에서 그네를 타고
작은 내 몸에 흔들리는 그네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웃던 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나는 영원히 행복할줄 알았다.
 
 
 
 
그 해 여름에 나는 불행이란걸 처음 느껴봤다.
 
 
 
평소처럼 내 아빠는 퇴근하고 집에 오셨고
엄마는 저녁상을 차려와서 온가족이 밥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때, 엄마와 아버지는 말다툼을 하셨다. 무엇때문에 싸우는 거지? 라는 생각을 어렸던 나는 하지 못했고,
단지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에 잔뜩 긴장하고 움츠러들수밖에 없었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처음보는 낯선 장면이 나에게 겁을 줬다.
 
말다툼은 끊기지 않았고, 아빠는 목소리를 최고조로 높이며 밥상을 뒤엎었다.
나는 놀라서 재빨리 몸을 뒤로 뺐지만,  엄마는 피하지 못했다.
깨진 그릇들의 유리조각들과 밥과 반찬들이 거실에 퍼졌다.
아빠는 화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조용히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 거실이 깨끗해 질때쯤 엄마는 겁에 질린 나에게 다가오셔서
'미안해, oo(제 이름)아' 이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우셨다.
 
그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때의 내가
엄마에게 '괜찮아요, 엄마' 라고 말했던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엄마의 발등이 까져 피로 물든것하고.
 
 
 
 
 
 
 
 
다음 날, 어제 처럼 두분은 말다툼을 하셨다.
무슨 이유로 싸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기억나는 단어는 '돈, 집, 그리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 따위였다. 
 
 
말다툼이 끊기지 않고 계속되던 중
 
안방에서는 큰소리가 났다.
 
 
내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고있던 나는
큰 소리에 겁을 먹으며 달려나왔다.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악마가 있었다.
 
 
 
 
악마는 우리 엄마를 때리고 있었다.
어린 나는 감정을 버티지 못하고 울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악마는 라이터기름을 꺼내더니 엄마에게 뿌리려고 했다.
한 손에는 피다 만 담배를 들고.
 
 
비명을 지르고 있던 엄마는 순식간에 작은 라이터 기름통을 쳐냈다.
그리고 그 작은 기름통은 내 발밑에 떨어졌다.
 
 
어렸던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몇십초 뒤 나는 손에 작은 기름통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부터 도망쳤다. 눈물이 눈앞을 가려도 나는 계속 뛰었다.
맨발로 달려나와 돌맹이를 차고 밟아 발에서 피가 나도 나는 계속 뛰었다.
 
그 시절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 때 보았던 악마의 표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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