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죽음이 삶에 남긴 흔적들 - 1 (비평환영)
게시물ID : readers_345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reamOrange
추천 : 2
조회수 : 3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2/17 21:30:00
옵션
  • 창작글
  • 외부펌금지
14년을 함께 했던 반려견과 작년 1월에 이별을 했다. 정확히는 제작년 11월에 떠났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를 견디기도 힘겨워하던 시기에, 부모님은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두달이 지나서야 나는 남겨진 자가 되었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꿈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어느날 문득 꿈에서 카라를 보고 나서 직감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그럼에도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카라는 잘 지내지?" "그럼 잘 지내지." 무덤덤한 척 전화 너머로 대답하던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내 죽음을 생각할 때는 죽음이란게 참 별 것 없었는데, 카라의 부재에 나는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 언젠가 내가 짝사랑하던 그녀가 나에게 '자살이란 자신의 끝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선택' 이라는 취지의 글을 보여줬던 것 같은데, 십여년이 지난 이제는 누구의 글이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 기억력이 개탄스럽다. 아무튼. 그 때 부터 나는 자살과 죽음에 대해 자주 고민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를 나무라는 친척들을 들으면서, 어제까지 나와 눈을 맞추고 놀던 새끼 고양이가 얼어붙은 뜬 눈으로 화단 위에 죽은 것을 보면서, 내가 사는 이유와 내 삶의 가치를 아무리 고민해봐도 알 수 없어 굳이 살아야할 필요가 있을까를 읊으면서, 뭐 그렇게 10대 때는 계속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사실 그 때는 깊게 생각할 수 없던 시기라는걸 너무 늦게 알았지만, 사고가 더 깊게 전개되지 못 한 채로 단지 죽음이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날 정도로만 그것에 익숙해질 뿐이었다.

대학에 입학 한 후로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6년도 겨울부터 받던 심리상담이 원인을 찾지 못 한 채로 반년 쯤 지나자 내 상태는 악화되기만 했다. 내 의지가 약한 것일거라, 나만 힘내면 모든게 괜찮아질거라 여기며 버티고 버티다, 17년 12월 내가 너무 사랑하던 가수의 유서가 기폭제가 되었다. 

날 책임질 수 있는건 누구인지 물었다.
끝내기는 어렵다. 
그 어려움에 여지껏 살았다.
왜 죽으냐 물으면 지쳤다 하겠다. 
왜요? 난 왜 내 마음대로 끝도 못맺게 해요?
그래도 살으라고 했다.
왜 그래야하는지 수백번 물어봐도 날 위해서는 아니다. 널 위해서다.
웃지는 못하더라도 탓하며 보내진 말아줘.

그의 부드럽고 배려깊은 가사에, 통통 튀는 색색의 구슬 같은 멜로디에 많은 위로를 받았던지라, 그의 자살은 더 깊게 다가왔다. 눈사태처럼 갑자기 일어나 휩쓸려버린 감정의 늪은 나아진 지금의 나도 잘 분석할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야지' 다짐하던 마음의 한 부분이 돌이킬 수 없이 박살난 것만 알 수 있었다. 

네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죽으면 너는 무척 슬프겠지. 그런데 너무 미안하지만 나는 그게 아무 상관이 없어. 네가 내 삶을 살아줄거 아니잖아. 너는 어떻게 아침에 눈을 뜨고 움직이는게 아무렇지 않아? 나는 눈을 감고 뜨는 매 순간마다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찔해. 이렇게 노력해봤자 죽고나면 사라질 그 모든 것들이잖아. 나는 내가 살아있는게 버거워. 그렇지만 나 따위 때문에, 고작 이 지구에서 나 하나 사라지는 거 때문에 너는 슬퍼하지 않으면 좋겠어. 소란스러운 것도 싫어. 우리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는 사람들 많잖아. 그래 그렇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막연히 잘 살고 있겠지 하면 그립지않은 것 처럼. 그렇게 나는 조용히 내 흔적들을 너의 삶에서 지워나가고, 거의 모두에게서 내가 기억 한 구석에 그런 사람이 있었더라 하는 정도가 되면 그때 생을 마감할게. 

폐 끼치기 싫다는 다짐으로 연구실이나 단체 안에서 내게 주어진 일들에만 거의 남지도 않은 기력을 긁어모아 최선을 다했다. 그만큼 온전한 나의 일에는 완벽하게 손을 놓고, 내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 정리했다. 당장 죽어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남자친구가 그로 인해 느낄 상실감과 고통에만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괜찮은 척 포장을 하고 있어도 남자친구만은 속이지 못했다. 어느 날 밤, 그에게 '네가 슬퍼할게 아파서 아직 죽지 못했어, 너는 나한테 언제쯤 지칠까? 아프게 해서 미안해, 이제 정말 그만 살고싶어.'라고 말했다. 상담사에게조차 한번도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곱씹던 얘기였다. 그리고 그가 울자, 너무 오랫동안 완벽히 고요하던 내면에 물결이 일었다. 

"선생님. 저는 이제 제가 왜 사는건지 모르겠어요. 의미도 가치도 없는데, 더이상 힘들게 노력하고 싶지 않아요. 한편으로는 웃기죠, 조용히 남들이 눈치채지 못 하게 주변을 정리하면서도 그런 제가 무서워요. 저는 나아질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 날 일 년을 봐온 상담사님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 했다. 센터장님으로 상담사가 바뀌고, 센터의 소개로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약을 먹고 과거를 헤집으면서 사실 나는 굉장히 강한 사람임을, 나는 아팠을 뿐임을, 내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없이 했던 노력은 약 한 알보다도 효과가 없었음을 알았다. 원인을 찾았으면 행복해야할텐데, 지나치게 허탈해서 습관이 된 우울만 증폭됐다. 주어진 것들에서조차 손을 놓았다. 비로소 나를 찾고 온전히 삶을 살 준비가 되었지만, 그냥 쉬고싶었다. 환청, 환시, 강박, 망상, 불안, 공황, 써놓고보면 자극적이지만 삶의 일부라서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모든 것들이 우습고 아프고 억울했다. 그러면 나는 이제 살고싶어질까 궁금했다. 과거가 정리되고 이해하고나면 미래를 꿈꿀 수 있게되는걸까, 그랬는데도 생에 대한 의지가 생기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 죽어야할 때겠구나 했다. 

공황이 가장 심해져 강의는 커녕 연구실도 못 가던 와중에, 나는 길에서 죽은 새나 쥐를 보면 묻어주었다. 수년 전 화단에 죽어있던 그 새끼 고양이는 결국 쓰레기 봉투에 버려졌다고 했다. 내가 외면하고 그냥 갔기 때문에, 책임지지 못 할 애정을 조금 보여주고는 사라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리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가끔 가방 안주머니에 비닐장갑을 챙기기도 했다. 손 위에 얹혀진 죽은 것들은 생각보다 차갑고 가벼웠다. 짓이겨 흩어지나 삭아서 흩어지나 매한가지겠지만 그래도 흙에서 편안하게, 어디에 채이지 않고 편안히 쉬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딱히 이유나 논리는 없고, 그냥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적당히 눈에 띄지 않는 흙과 풀을 찾으면 주변의 적당한 돌멩이로 땅을 팠다. 식은 몸을 뉘여주고 흙을 덮으면서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르는게 나의 애도였다. 

태어나서 사는 것이 너의 잘못도 아닌데 태어나서 살았으니 더 행복하면 좋을걸
랄라 랄라 콧노래 의미도 없이 흥얼흥얼 해줄게 하나도 없어 너무 미안해서
사는 것이 누구에게도 슬프잖고 아프지않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세상 그 누구에게도

그거로도 모자라 성호를 그었다. 뼛속까지 무신론자며,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믿음이 우습게, 나는 어떻게든 소화하지 못 한 감정 앞에서 괜히 신을 찾았다. 살아있음은 그저 상태일 뿐이라 죽고나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괜히 명복을 빌고 다음 생에는 천수를 누리길 바랐다. 한편으론 내 모순이 우스웠다. 내 목숨은 이다지도 가벼운데, 나는 왜 꺼져버린 생명 앞에서 애틋할까. 흙을 찾아 가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거나 무서워했다. 내가 죽은 것도 아닌데 그 시선이 가슴 한 켠에서 아팠다. 살아있음이 뭐길래 나는 이렇게 슬픈걸까, 돌이킬수 없는 것이 한두개도 아닌데...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