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 씨 차가 왜 여기, 서 있는 거지?’
미영은 언제 경숙의 차가 다가올지 몰라 가까이 가서 차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썬팅이 진해 3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는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
‘하필 동창을 만나려는데 진우 씨가 아는 체를 하면 안 되는데... 경숙의 차는 언제 오는 거야?’
미영은 초조하였다. 혹시라도 진우가 알아보고 차에서 내려, 다가올까 겁이 나 차에서 떨어져 최대한 차를 등지고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차는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슴 졸이며 애타게 서 있는데 크락션이 빵빵댔다.
미영은 어디서 크락션이 울리나 아무리 둘러봐도 진우 차 외에는 다른 차가 없어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어휴, 지금 내가 등을 지고 있으면 다른 일이 있는 줄 알아채야지 웬일로 빵빵거리기 까지하며 크락션을 누르는 거야? 진우 씨가 저렇게 눈치가 없는 사람이었던가? 미치겠네...’
계속 빵빵 울리는 차는 진우 씨 차였다. 미칠 지경이었다. 경숙이 차가 다가오기 전에 얼른 주의를 주고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차를 향해 가는데 운전석에서 경숙이가 내리고 있었다.
“야, 넌 내가 빵빵대는데 못 알아듣고 뭐하고 어디를 바라보는 거야?”
경숙은 웃으며 빨리 차에 타라고 성화를 댔다.
“어? 어... 그래.”
미영은 당황스러웠다.
진우의 차를 내 차처럼 올라탔던 그 운전석 옆자리에 지금은 진우의 와이프가 운전하는 자리에 올라타야만 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미영은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하느라 머릿속이 온통 어수선한 중에 올라타면서도 차에서 사랑했던 흔적이 남아있나 빠른 눈으로 훑어보았다.
“야, 반갑다. 너는 처녀 때랑 몸이 똑같네? 어떻게 이렇게 관리를 잘했니?”
“어? 어...”
미영은 지금 경숙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신이 없어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냥 무슨 말을 한 것 같아 대답을 어색하게 했다.
“너 왜 그래?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넌 반갑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뭐야?”
“아, 아니야. 반갑지.”
“난 너 만난다는 생각에 어젯밤 잠도 잘 안 오더라. 오랜만에 학창 시절로 돌아가 이 생각 저 생각하다 잠도 설쳤고만...”
“그, 그래. 나도 너 만날 생각에 얼마나 좋았는데?”
미영은 이제 좀 정신을 차리고 일단 대화에 집중하기로 자신을 타일렀다.
“야, 정말 넌 다시봐도 처녀같아. 청바지도 잘 어울리고. 아까 차에서 네 뒷모습 보고 처음엔 여대생이 서 있는 줄 알았다니까.”
“아이고, 무슨... 말도 안돼. 오버다.”
“아냐, 나 봐라. 이렇게 몸이 두 배로 된 거.”
“쌍둥이 키우려니 힘들어서 그렇겠지.”
경숙은 정말 처녀 때보다 몸이 두 배는 불어 있었다.
“남편하곤 잘 지내지?”
“응, 그럼. 잘 지내지.”
미영은 경숙이 남편하고 잘 지내냐는 질문에 자신도 곧바로 물었다.
“네 남편은 직업이 어떻게 돼?”
“우리 신랑은 대학에 있어.”
진우의 직장까지 딱 맞았다.
‘하필 경숙이 남편이 진우라니!’
“내가 그때 배가 불러서 네 결혼식에도 못 가보고 미안해.”
“할 수 없지. 배가 만삭인데 결혼식에 못 오는 건 당연하지. 그리고 우린 바로 미국으로 신랑 공부하는데 따라 갔다가 한국 온 지 몇 년 안 됐어.”
“그랬구나. 사귀던 그 남자하고 결혼을 안 했나 봐?”
“응, 그때 갑자기 헤어지게 됐고, 마음이 심란한데 지금 남편이 결혼하면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다기에 잘됐다 싶더라고. 사귄지 두 달 만에 결혼했잖아. 아마 그때 난 한국을 떠나는 남자라면 누구라도 결혼을 했지 싶어. 호호호.”
“원래 뭐 결혼이라는 게 내 생각대로 잘 안 되는 거지 뭐. 인연은 따로 있는 건가 봐.”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혜영이 먼저 도착해 전망이 좋은 자리를 잡아놓고 있었다.
“어머, 미영이 넌 몸매가 아직도 처녀네?”
“그러니까 말이야. 미영이 몸을 보니 내 몸은 몸도 아니더라고. 호호호.”
경숙은 혜영의 말을 거들며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다음 회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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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어떻게 플릇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4년 전쯤 내가 운영하는 분식점에서 있었던 운명 같은 일!
멋쟁이 두 여자가 일주일 간격으로 우리 분식점을 들렀다.
자주 오다보니 특별한 단골 손님으로 기억되었다.
요일을 보아하니 매주 수요일이었다.
그날도 수요일이었고 12시쯤 우리 가게를 당당히 들어왔다.
(상가 주변이 썰렁해서 당당히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단골이었다.)
그날도 늘 똑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치즈돈가스 하나 라면 하나 주세요."
"말 안해도 알지요."
"호호, 우리가 우연히 여기서 돈가스랑 라면을 먹어보고 다른데를 못 가네요."
"아, 그래요? 감사해요."
둘은 맛있다며 다정히 먹고난 후,
"사장님! (코딱지만한 분식점을 하는데 사장님이라 호칭하니 참 민망했다. 그렇지만 손님입장에서 아줌마라 부르기도 멋쩍었을테니 호칭이 참 서로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사장님이라 부르게 되었을 터이다.)
오늘 영화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런데 여기서 한시간만 앉아 있다 가도 돼요?"
"네, 멋쟁이 손님들이니 하루종일 앉아 있다 가도 됩니다."
두 멋쟁이 엄마들은 호호 웃었다.
"사장님, 우리 같이 얘기해요."
"그래요. 저도 마침 심심하던차였어요. 혹시 믹스커피라도 드릴까요?"
"좋죠."
믹스커피를 세잔 타서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아줌마들은 앞에 커피만 있으면 바로 수다가 시작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주 화통하고 대화가 잘 통했다.
"수요일마다 오시던데 수요일은 영화보는 날인가봐요? (우리 분식점은 극장 아래있었다)"
"아, 우리가 수요일마다 플룻을 배우거든요. 수요일은 플룻 끝나고 이곳으로 와 밥 먹고 영화보는 날로 정해놨어요."
"아, 악기를 하는군요. 멋지시네요."
외모도 훌륭한 두 사람이 플룻을 한다니 더 멋져보였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 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권했다.
호칭은 이제 언니로 부르기로 했다.
"언니, 우리 같이 플룻 배워요."
"내가 할 수 있을까?"
"언니도 하면 잘할 것 같아."
"플룻 배우다 사람들 힘들어 다 그만 두던데? 아휴, 난 하다 말거면 아예 시도도 안 하는 성격이야."
"언니는 식당만 하고 있기에 왠지 좀 아깝다고 우리가 늘 얘기했어요."
"호호, 좋게 봐줘서 고마워."
"그리고 언니 스토리 좀 봤었는데 글도 장난아니던데?
책도 좀 내봐요."
"아구, 무슨...아냐. 내가 그정도는 아니지."
"아냐, 언니! 나도 예전부터 책도 좋아해서 글좀 볼줄 알거든. 언니는 무언가 도전할 필요가 있다니까! 일단 내가 초보때 불던 플룻을 선물로 줄테니 다음주 수요일 타임월드에서 만나, 알았지?"
그렇게 엉겹결에 선물로 받은 플룻으로 시작한지 4년이 넘어가네요.
그때 받은 플룻으로 2년정도 하다 나는 므라마쯔 수제 플룻으로 바꾼지 2년이 넘었고 그때 그 연습용은 다시 도전하게 하고 싶은 또다른 멋쟁이 동생에게 선물로 주었답니다.
그 멋쟁이 동생은 플룻을 시작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누군가 알아봐주고 무심코 던진 권유에 신나게 플룻의 세계에 빠져 살 수 있게 될 줄 그땐 몰랐었다. 개인레슨은 받아본적 없고 단체로 하는 문화센터에서 돈도 안들이고 공짜로 악기하나 다루게 된 사연을 적다보니 길어졌네요.
' 난 그 멋쟁이 엄마 말대로 바로 두 권의 책도 내게 되었고,
책이 나온지 일주일만에 베스트셀러까지 올라가게 되었지 않은가?'
지금 생각해보니,
그 멋쟁이 엄마는 정말 사람 볼 줄 아는 통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영험한 사람이었든가 봅니다.
또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하죠? 그 통찰의 힘을 가진 멋쟁이 엄마의 말이 이렇게 열매를 맺었네요.
오늘은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이루마의 Kiss the rain 을 연주해 보았답니다.
https://youtu.be/i0UJh9iJy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