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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마스크를 쓰고 출근해보니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감염자 속보를 뽑아내고 있다. 우한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비상이 걸린 탓이다. 안 쓴 사람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모두 마스크를 단단히 동여매고 있다.
예전에 일하던 레스토랑 주방이나, 출판사에서 남의 원고를 편집하고 있을 때야 문제없겠지만, 지금 출근하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닌 편의점이라는 게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근무자라는 거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마주해야하는 위험요소, 마스크로 가려진 사람들의 입. 보이지 않는 입모양. 그 속에서 나는 말을 캐치해야만 한다.
그나마 날씨가 쌀쌀해서 다행이다. 밖에서는 마스크를 잘 쓰고 다녔던 손님들은 따뜻한 편의점 안에 들어오면 마스크 안에 습기가 차는 탓에, 마스크를 벗거나, 밑으로 내렸다. 마스크를 벗지 않는 손님도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면 놀라시면서 서둘러 마스크를 벗어주신다. 목소리만 커지는 손님도 있었지만, 잘 설명을 드리면 이해하시면서 금방 마스크를 벗어주셨다.
당연하게도 끝끝내 마스크를 벗길 거부하는 손님들도 더러 있다. 손님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나는 말로 하는데, 마스크를 벗길 거부한 손님은 결국 우스꽝스러운 바디랭귀지로 필요한 걸 설명한다.
손님이 담배 어느 쪽을 가리킨다.
“던힐요? 던힐 어떤거요?”
손님이 손가락 세 개를 들어올린다.
“삼 미리요? 던힐 삼 미리 드려요?”
손님은 성급하게 손사래를 친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갑자기 도, 레, 미를 연주하듯 피아노를 치는 시늉을 한다. 나는 눈치 빠르게 알아들었다.
“아, 세 번째 거요? 던힐 프로스트 드릴까요?”
손님은 활짝 웃는다. 격하게 끄덕인다. 마스크 속에 가려져있어 입은 보이지 않지만 눈이 기쁜 듯 웃고 있다. 참나. 그렇게 기쁜가. 나도 피식 웃는다. 잠깐 마스크를 삼 초만 내려서 입모양 한 번만 보여주면 이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4500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손님은 계산하면서 엄지를 척 들어 보이고는 나간다. 서로 기분 나쁜 것 없이 잘 끝났다는 거에 위안 삼기로 했다.
저 분은 귀여운 축에 속한다. 정말 기분 나쁘게 담배를 주문하는 손님도 있다. 다짜고짜 담배를 주문하길래 으레 그렇듯 청각장애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다. 잠깐 쳐다보더니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렇게도 극성인데 더 이상 마스크를 잠시만 내려달라고 부탁드리는 것도 죄송하다.
“죄송해요. 그러면 찾으시는 담배가 어디 있는지 직접 봐주실 수 있을까요?”
“우우웅웅 웅웅.”
“제가 정말 입이 안 보이면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어요. 죄송해요...”
“우웅! 웅! 우우웅!”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만 하는 것도 이상해서 난처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짜증이 치민 손님은 결국 마스크에 손을 댔는데, 입이 보이게 벗는 것이 아니라 살짝 들어올리기만 했다. 소리가 나가는 출구를 만드려는 의도였다. 그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소리를 못 듣는’게 아니라, ‘말귀를 못 알아듣는’거니까.
“죄송합니다. 벗는 게 불편하시면 찾으시는 담배 어디 있는지 직접 가리켜주세요.”
“아, 시발! 진짜.”
결국 손님은 마스크를 내리고는 다짜고짜 욕설부터 중얼거리더니 신용카드를 계산대에 던지고는 날 서린 말로 소리쳤다.
“한라산 두 갑 달라고!”
내 감정도 덩달아 폭발할 뻔했다. ‘내 잘못이다.’ ‘내 죄다.’ 꾹 억누르고 애써 한라산 두 갑을 꺼내 계산해드렸다.
“여기요.” 소심하게 감사 인사는 안 했다.
“야 너, 여기 사장이야?”
“아닌데요.”
“그럼 사장이 너 뽑았어? 알바야?” 기분 나쁘게 쏘아붙인다.
“네.”
“...”
더러운 것 보듯이 감정 없는 눈으로, 신경질적으로 한라산 두 갑을 낚아채고는, 마스크를 다시 꽉 동여매고 아무 말 없이 나갔다. 하아, 쫓아가서 꿀밤 한 대만 때릴 수 있으면 원이 없겠다. 쓸데없이 컴플레인을 걸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점장님께 피해가 가면 안 되는데. 좋은 점장님인데.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내게도 화를 낼 권리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고, 고민이다. 독자들의 의견도 궁금하다.
손님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은 서비스업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다. 편의점이라고 다를 건 없다. ‘손님은 왕이다’같은 슬로건은 옛말이고 근로자의 인권도 손님의 인권만큼이나 중요시여기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손님들의 눈치를 살피는 건 사실이다. 우리 점장님은 ‘진상에게는 똑같이 진상으로’대응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모르겠다.
서비스업의 정신을 성실히 지키는 것과 나의 청각장애는 꽤나 상극이다. 서비스업은 손님이 요구하는 것을 알아듣고 원하는 것을 내어드려야 한다. 음식점에서도 많은 양의 주문도 한 번에 찰떡같이 알아듣고 완벽하게 주방에 전달하는 것이 서빙 웨이터의 사명이다. 친절, 미소, 배려가 중요한 정신이지만 요즘에는 신속, 정확도 아주 중요하다. 친절, 미소, 배려는 자신 있지만 신속과 정확성은 떨어진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는 걸려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근무자인 나도 마스크를 쓰면서 근무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알아듣지 못해서 손님에게 잠시만이라도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부탁드려야 한다. 벗는 것을 거부한다고 해서 내가 감히 뭐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고 화를 내는 진상에게, 똑같이 화를 낼 권리가 내게도 있을까.
어렵다. 가슴 아프고 서글프다. 내가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서 타인이 나를 배려해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 과하다. 배려는 강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라산 진상’처럼 배려하지 않아서, 배려 받지 못해서 생긴 일은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한라산 진상’에게도 자기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스크를 벗기에는 여유가 부족했던 것이었으리라.
배려는 의무나 강제가 아니기에 어느 정도 배려를 받아야만 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종종 이런 상황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여 홀로 자책하고, 삭히고, 괴로워한다.
그 날 저녁, 친구 지미를 만나서 하소연했다. 지미는 묵묵히 들었다. 내 얘기가 다 끝나자 입을 열었다.
“야, 그 사람 자주 와?”
“아니, 처음 본 사람이었어.”
“친해지고 싶어?”
“미쳤냐?”
“그럼 신경 꺼. 왜 그딴 놈한테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하는 거냐.”
“맞는 말인데... 아, 잔소리하지 마. 나도 짜증나. 내 말은 나도 거기서 화를 낼 자격이 있었을까? 라는 거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네 자유지. 야, 발상을 바꿔봐.”
“어떻게?”
“너 방금 배려가 강제가 아니라고 했지?”
“응.”
“그 진상새끼도 마스크를 안 벗고 화만 잔뜩 냈는데, 너라고 화 못 낼 이유 있냐? 진상한테 끝까지 친절을 유지하겠다는 건 너의 배려지만, 똑같이 화내는 건 너도 배려하지 않겠다는 뜻이지.”
“어떻게 그래.”
“배려는 강제가 아니라며? 남들은 그래도 되고 너는 그러면 안 되란 법 있어? 왜? 손님이 갑이라서? 남들보다 안 들리는 장애인이라서? 야, 그럼 때려 쳐야지. 집에서 나오지 말아야지. 어디 장애인이 밖을 나옴?”
“...”
“내 말이 틀려? 신경 쓸 걸 써야지, 쯧.”
지미는 철저히 내 편이고, 지미의 말은 틀린 말이 없다. 한 마디도 반박할 수가 없다. 혹여나 컴플레인이 들어올까 조바심이 나서 다음 날 출근하고 점장님께 먼저 털어놨다.
“노웨어맨씨, 여기 포스기에 이거.”
점장님이 가리킨 건 포스기의 한 버튼이었다. [긴급/신고].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버튼이다. 유독 혼자 새빨간 색이어서 눈에 띈다. 누르면 바로 경찰이 출동한다.
“그런 사람 오면 이거 눌러요. 왜 욕을 들어먹고 있어.”
“진짜요? 히히. 저 막 누를 거예요.”
“진짜요. 저한테 카톡 하나만 남겨주시고.”
기꺼이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이 벌써 이렇게나 있다. 잘 챙겨주는 사람들에게 마음 쓰기에도 한참이나 모자란 시간인데, 날 배려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 사람에게까지 감정을 소모할 가치가 없다. 호의와 배려는 감사히 받고, 차별과 혐오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 된다.
내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그게 내 탓이 아닌 것처럼,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 필요는 없다. ‘을’이 될 이유는 없다. 자기 마음에 직접 생채기를 낼 필요도 없다. 나는 그냥 나다.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따르면 된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이다. 내게는 몸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는 것처럼 내 마음도 지킬 의무가 있다.
“야, 노웨어맨.”
“응?”
“좀 이기적으로 굴어도 돼, 새꺄.”
지미는 쐐기를 박듯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취했다. “와, 나 존나 멋있었다. 방금. 엄청난 명언이었다.” 지미는 스스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기 자신을 쓰다듬는다.
어휴, 다 맞는 말이긴 한데. 진짜 얄밉다. 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