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숙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남편은 그게 안 선다고 각방을 쓰자고 하지, 그렇다고 어떻게든 노력해보자고 말하기도 자존심 상할까 싶기도 하고 말이야.”
“음, 여자 입장에서는 그런 말은 좀 쉽지 않지.”
“그리고 서지 않는 당사자는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냐구? 난 남편 앞에서 조금도 성욕이 있다는 내색도 못 하겠더라.”
“......”
미영은 뭐라고 추임새를 넣어줘야 하는데 이런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숙은 남편이 서지 않아 속상한 것도 있지만 남편은 또 얼마나 자존심 상할까를 걱정하는 경숙이지 않은가? 미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표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남자는 욕구를 느껴도 여자들은 그냥 남자가 안 하면 자동으로 안 해도 되는 줄 아는 걸까?”
“글쎄, 다 그렇진 않겠지만 일부 고리타분한 남자들은 자기네들만 욕구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그러니까, 난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어. 섹스를 못 하니 자다가도 섹스하는 꿈을 꾸게 되고 미치겠더라고!”
“호호, 진짜?”
“그래, 내가 밝히는 여자도 아닌데도 몇 년째 섹스를 못하니 그렇게 꿈까지 꾸게 되는 거야. 내가 혜영이도 아닌데 말이야!”
“호호, 거기서 혜영이는 왜 나와?”
“호호호, 말하자면 그렇단 얘기지.”
경숙도 갑자기 혜영을 거론한 자신이 웃기는지 웃으며 말했다.
“미영아, 그런데 있잖아. 도로 주행을 하다 보면 좁은 차 안에서 둘이 있게 되잖아?”
“그렇겠지.”
“그러니까 희한하게 남자랑 드라이브하는 느낌이 들더라고.”
“아하, 그럴 수도 있겠네.”
미영은 갑자기 경숙의 남편 진우와 둘이 차 안에서 드라이브하던 첫날을 떠올리며 금방 이해를 했다.
“거기다 위험할 땐 핸들도 꺾어주고 급브레이크도 잡아주잖아.”
“뭐, 난 아직 운전면허를 따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렇겠지.”
“그래. 그게 그런 거거든. 하루는 고속도로 연수하는데 진짜 나 죽을 뻔, 했었던 일이 있었어.”
“진짜?”
“그래,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선생이 상황을 파악한 후 악세레이터 밟고 서서히 진입하세요, 해서 깜빡이를 넣고 악세레이터를 밟는데 갑자기 다리가 덜덜 떨리는 거야. 그래서 주저하는데 선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진입을 안 할 거면 금 밟고 가지 말고 다시 빠지라고 하는데 애라, 하고 내가 악세레이터를 밟았는데 글쎄 어느덧 트럭이 내 바로 뒤까지 따라붙은 거야.”
“어머, 어째?”
미영은 자기가 위험한 상태에 빠진 듯 놀라며 단말마를 질렀다.
“선생이 갑자기 핸들을 잡고 꺾어 다시 빠지지 않았으면 난 그날 죽었을 거야.”
“어휴, 말만 들어도 무섭다. 네 말 들으니 난 운전 못 할 것 같아.”
“아냐, 다 그런 건 아니야. 그런 경우는 순발력이 있어야 하는데 난 초보라 어지저지 하다가 위험한 상황에 빠졌던 거지.”
“그런 상황은 언제나 나타날 수 있잖아.”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진입할 때는 생각보다 상대가 빨리 달린다는 걸 알고 저 뒤에 개미새끼만하게 트럭이 보여도 그날 경험이 떠올라 난 절대로 진입 시도자체를 안 해!”
“호호, 그래, 안전하게 하는 게 최고지. 조금 빨리 가려다 50년 먼저 갈 수도 있으니까!”
“킥킥, 맞아. 원래 3분 먼저 가려다 30년 먼저 간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은 수명이 길어졌으니 50년 먼저 간다고 바꾸는 게 맞네. 호호호.”
“그래, 운전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거니까 특히 진입할 때는 속도 자랑하지 말구...”
“넌 운전도 안 해본 애가 마치 운전 10년은 한 듯 말하네.”
“꼭 해봐야 아니?”
“하긴. 그 미친 트럭 운전사 새끼가 도로 연수 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속도를 내면서 달린다는 게 말이 되니? 지금 생각해보니 일부러 겁주려고 그런 것 같아.”
“에이, 그건 오버다!”
미영은 설마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냐, 그들 입장에선, 바빠 죽겠는데 할 일 없는 팔자 좋은 아줌마들이 고속도로서 어리버리 하고 있으니 한번 당해 봐라! 그런 것 같았어. 왜냐면 빵! 하고 얼마나 필요 이상으로 크락숀을 얼마나 길게 울리는지 난 그날 진짜 자다가도 운전 연수하다 트럭이 달려오는 꿈을 꾸고 오줌을 쌀 뻔 했다니까!”
“하하하.”
경숙이 오줌을 쌀 뻔했다는 말에 미영은 얼마나 그때의 상황이 심각했었는지 짐작이 갔다.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고속도로는 속도가 있으니 아무래도 조심하는 게 최고지.”
“그렇게 순식간 달라붙는지 식겁했다니까!”
“하여튼 그 트럭 얘기는 그만하고 그다음 진도 나간 거 말해봐.”
미영은 눈을 반짝이며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재촉했다.
“얜 갑자기 재밌어 죽네?”
“야, 희한하게 재밌다. 호호.”
경숙은 미영이가 의외의 반응을 보이자 신나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이 남자가 나를 죽음에서 살려 준 은인 같은 거야.”
“그게 그렇게 생각이 들수도...”
“도로 연수라는 게 10시간을 같이 좁은 공간에서 둘만 있게 되니 사실 주행 연수받으러 갈 때마다 애인을 만나러 나가는 기분이 드는 거야.”
“호호호, 그럴수도...”
미영은 경숙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거기다 친절하지, 다정하게 말해주지, 그러니까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
미영과 경숙은 쳐다보고 같이 호호호, 웃었다.
“아마, 그 사람 입장에선 네가 고객이다 보니 친절한 거 아녔을까?”
미영은 언뜻 말이 그렇게 튀어 나갔는데 경숙이 표정이 굳는 걸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랬을 거야. 그런데 그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들고 나한테만 친절한 것처럼 착각을 했다니까!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짓이지만.”
경숙은 지난 일을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마저 그때의 일을 들려주었다.
오늘은 제가 요즘 떠오르는 임영웅 따라하기 '바램'을 불러보았습니다.
다음 회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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