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미영은 다음이 궁금해서 재촉하는 말투로 빨리 물었다.
“그래서 헤어지자는가 보다 하며 한숨을 쉬고 일어났는데 글쎄 나를 데리고 묻지도 않고 도착한 곳이 모텔이였어.”
“어머머! 아마 그 선생은 네가 같이 자자고 말만 안 했지 네 마음을 이미 다 알아챘나 보다.”
“그랬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놈은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녔던 것 같더라고. 완전 선수였던 거지.”
“그럴지도...”
“그땐 엉겁결에 그래도 이 남자가 날 여자로 봤나? 약간 흥분되기도 하고 그 감정이 진짜 묘하더라고...”
경숙은 그때를 떠올리는 듯 초점 없는 눈빛을 허공에 던졌다.
“아휴, 듣는 나까지 기분이 이상해진다.”
미영도 경숙의 그 상황을 그려보다 갑자기 진우가 자신을 데리고 처음 모텔로 향하던 그때의 감정이 부지불식간 떠올랐다. 잠시 아무 말이 없던 경숙은 다시 이어서 말했다.
“난 그냥 취한 척,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척하며 이끄는 대로 들어갔지 뭐. 사실 남편이 떠오르며 죄책감이 들고 무섭기도 했지. 그런데 그냥 너무 하고 싶은 욕구 앞에서 그만 내 욕정이 떠오르는 남편을 이겨버린 거야. 나도 지금 생각하면 미친*이지. 그런 남자한테 내가 몸을 주다니...”
“그러니까,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랬다고 생각하니 정말 신기하다.”
“그러니까, 나도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거짓말 같아.”
경숙은 한숨을 내뱉었다.
미영은 정말 경숙이가 그랬을까? 경숙이 워낙 말을 잘한다 해도 지금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니겠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경숙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사실이라는 결론 앞에 이르렀다.
“그런데 있지. 그 남자가 나보다 열 살은 어려서 그런지 남편하고 할 때보다 힘도 좋고 느낌이 그렇게 좋은 거야.”
경숙은 깊은 눈빛까지 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 혹시 오래 못하다 해서 더 그렇게 느껴진 건 아닐까?”
“아니! 진짜 확실히 달랐어.”
미영도 사실 경숙의 남편 진우와 관계하면서 그렇게 느꼈었는데 경숙이도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하면서 새롭게 느껴졌다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남편하곤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극이 그날 그 안에서 폭발하더라고! 진짜 제정신이 아니게 하고 나니까 이젠 그놈이 장동건보다 더 잘나 보이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전혀 아닌데 그땐 그랬어. 호호호.”
경숙이 허탈하게 웃자 미영도 같이 따라 웃었다.
미영은 경숙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충분히 그 느낌을 이해했지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같이 웃어주는 얼굴로 경숙을 바라봤다.
자신도 그 느낌을 안다고 맞장구를 칠 수도 없는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면서도 경숙의 입담에 웃음만 계속 나왔다.
경숙의 남편만 아니라면 자신도 사실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도 여러 번 느꼈다. 그래야 더 깊은 대화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절대로 그건 그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경숙이 그때의 경험을 진지하게 이야기해줄수록 미영은 경숙의 남편이 진우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의 무거운 마음보다는 조금은 가벼워지고 있었다.
“미친 듯이 그놈과 몇 번을 만나면서 막 연애하는 기분도 들고 진짜로 행복했었는데 글쎄, 어느 날 인가부터 연락을 하면 전화를 잘 안 받고 계속 연수 중이라고만 하고 거기다 더 기분 나쁜 건 다음 언제 만나자는 말이 없는 거야.”
“어머나, 그 사람은 혹시 너처럼 연수하는 아줌마들하고 그런 관계를 쉽게 하고, 그리고 또 새로운 여자와 만나는 건 아닐까?”
“그랬던 것 같아. 처음에 전화를 안 받을 땐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를 날리면 단답형으로 그것도 어쩌다 [연수 중] 이렇게 싸가지없이 날아오는 거야.”
미영은 그 상황은 뻔한 건데, 경숙과 도로 주행 선생과의 상황이 그려지며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났다. 경숙이 나름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그게 더 웃길 뿐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그놈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놈이 나쁜 게 아니었던 거야. 그놈이 나와 좋아서 관계를 한 게 아니고 그냥 달려드는 여자 주는데 못 먹냐는 식이었던 거 같더라고...”
미영은 뭐라고 해줄 말을 찾지 못하고 다 식은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웃음이 났지만, 그 대목에서는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놈이 연락을 피하기 시작하면서 그때서야 예전에 드라마에서 들었던 문장이 도도록 떠오르더라.”
“뭐어?”
“남자들은 춘향이 옆에 두고도 향단이를 찍접 된다는 말이 있잖아.”
“아하... 난 또...”
“나같이 뚱뚱한 여자에다가 열 살이나 많고 애도 둘이나 딸린 여자를 좋아해서 만날 리가 없다는 것을 그 싸가지 없는 문자를 보고 나서야 그때야 깨달았다니까! 바보같이!”
미영은 차마 무슨 대답을 해줄 수가 없어, 비어있는 커피잔인 줄 알면서도 텅 빈 커피잔만 들었다 놨다.
무슨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하긴 하는데 마땅한 문장이 떠오르질 않았다.
너무 아는 척을 해도 경험이 없다고 말한 자신의 말에 의심을 가질 수도 있고 거기다 자꾸 경숙이 그 선생하고의 처음 느낀 짜릿한 경험을 적나라하게 말해줄 때마다 미영은 자꾸 진우와의 관계에서 자신도 남편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가며 폭발했던 그 생각이 부지불식간 떠올라 민망하기도 하고 어떻게 표정 연기를 해야 할지 곤란할 때마다 빈 커피잔을 들었다 놓았던 것이다.
“너 커피 더 주래? 왜 빈 커피잔을 자꾸 들었다 놓니?”
“어, 어어? 그래. 연하게 커피 한 잔 더 마시자.”
“오후에 마시면 잠이 오지 않는댔잖아?”
“아니, 오늘은 그냥 자꾸 갈증이 난다. 연하게 해서 한잔 더 마시고 싶어.”
“그래, 나도 오후엔 커피를 자제하긴 하는데 그놈하고 그때 뜨거웠던 일을 생각하니 커피가 더 당기네. 호호호.”
경숙은 커피잔을 들고 성격 좋은 웃음을 웃으며 주방으로 갔다. 그동안 미영은 몸이 잔뜩 긴장했었던지 어깨랑 등이 굳은 느낌이 들어 등을 펴려고 일어났다가, 일어난 김에 화장실도 다녀왔다. 아무래도 얘기가 더 길어질 것 같았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혼자 드라이부를 할 경우나 혼자 무료한 시간에 멍 때리고 싶을 때 커피 한 잔 들고 연속 듣기 발라드 음악으로 묶어 보았답니다.
그동안 제가 불렀던 곡 스무곡 정도를 묶어놓았으니 이어폰으로 들으시면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 호소력 짙은 저의 목소리를 아직도 듣지 않으신 분들이 많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