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은 화장실에 들어가자 진우가 사용했던 화장실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미영은 동창들과 만나고 온 후 진우가 경숙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일방적으로 진우의 전화번호를 차단 중이었었는데 갑자기 스팸 문자에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전화번호를 차단시키면 문자가 자동으로 스팸 문자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스팸 문자로 들어가 진우의 문자를 확인했을 때도 몸이 진우에게 달려가는 것을 간신히 이성으로 누르며 전화를 걸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었다.
‘내가 가정에 충실하면 언젠가 남편은 가정으로 돌아올 거야. 내가 일단 죄를 지으면 안 돼.’
그렇게 입술을 깨물며 전화를 걸지 않고 마음을 추스르며 미래의 행복한 가정을 머릿속에 그리며 내려놓았었다.
오늘 미영은 진우가 몹시도 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진우를 만나지 않고 살기가 죽을 만큼 힘들었었다. 친구 남편이니 만나면 안 된다는 의지로 간신히 참고 있었는데 오늘 그 의지가 슬금슬금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경숙의 불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몸이 진우를 더 못 견디게 그리워하는 것도 있었지만, 실은 경숙이가 다른 사람과 불륜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그동안 초인적인 힘까지 내어 힘겹도록 버티며 참아낸 의지가 약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자는 며칠 전에 읽었던 그 문자 외에는 없었다.
이제 진우도 자신에게서 마음을 거둬들이려고 노력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진우가 더 못 견디게 보고 싶어졌다.
진우의 집에서 진우가 더 미치도록 보고 싶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다시는 만나면 안 된다며 스스로 자신에게 엄격히 타일렀다.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눈가에 어른거리는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목에 메어오는 것 같아 헛기침을 두 번 하면서 화장실에서 나왔다.
경숙이 따끈하게 연하게 타온 커피를 한 모금 목으로 조심히 넘기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 오늘 좀 놀다 갈게. 그런 줄 알아.”
“어제도 놀다 왔는데 오늘도 또?”
미영은 너무 화가 나 새된 목소리로 한 뼘쯤 솟은 목소리가 미영의 입에서 튀어 나갔다.
“멤버가 모였다고 오라고 연락이 와서.”
“멤버가 불러준다고 가는 게 아니라 멤버들에게 먼저 전화하는 거 다 알거든?”
“어쨌든 불러줄 때 가서 놀아야지, 내가 다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도박 하나 좋아하는데 그럼 난 좋아하는 것도 하지 말고 살란 말이야!”
미영의 남편은 미영이 싫어하는 소리를 하면 더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며 전화를 딱 끊어 버린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어차피 대화 자체가 외계인과 하는 것보다 맞지 않아서 대화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영은 경숙이 옆에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화가 나서 언성을 높이며 말했던 것이다.
“왜 화를 내? 무슨 일이니?”
경숙은 놀라서 물었다.
“아, 아냐. 소리쳐서 미안.”
“미안 하라는 게 아니라 남편이 왜 문제 있니?”
경숙은 조심히 물어왔다.
“아, 아냐.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어제도 그랬다면서? 무슨 말이야?”
“아니라니까. 그냥 우리끼리 그런 게 있어.”
“말하기 싫음 뭐 안 해도 돼. 남편들이란 늘 무슨 일이 있잖니...”
경숙은 미영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서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감지했지만 더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미영이 웬만해선 친구 앞인데 인상을 팍 쓰면서 화를 낼 여자가 아니지 않은가?’
경숙은 자상한 남편과 자신도 가끔은 말다툼을 했던 일을 떠올리며 별 게 아니려니 넘어갔다.
“경숙아, 나 그만 가봐야겠다. 우리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그, 그래... 알았어. 우리 자주 만나자. 말도 잘 통하고 좋지 않냐?”
“알았어. 오늘 정말 소중한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어디다 말은 하지 않을테니 나 믿고, 알았지?”
“역시 친구는 사회 친구보다 학창 시절 친구가 좋다. 너랑은 별 이야기를 다 해도 후회가 안 된다. 이런 게 친구 좋다는 건가 봐.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했다면 들어주던 사람이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는 순간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 왔을텐데, 이상하게 너한테 고백을 하고 났더니 오히려 앓던 이가 쑥 빠진 듯 시원하다.”
“그래, 나도 학창 시절 친구가 역시 좋다.”
경숙의 집에서 나오면서 미영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미래에 희망이 없는 이런 가정을 언제까지 이렇게 참아내며 지켜내야 한단 말인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엄마 말대로 손목을 자르면 발로 친다는 그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가 싶어 희망이 없는 회색빛 미래가 두렵고 떨렸다.
아무 생각이 없이 전화를 들어 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회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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