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다시 진우를 만나 몸부림을 치고 죄의식을 느끼고,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길 바라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에서 남편이 전화가 걸려왔다.
“나 경찰서야.”
“아니 왜?”
“아이 씨, 누군가 고발을 해서 잡혀들어왔어. 혹시 당신이 고발한 거 아니야?”
“아니? 내가 미쳤어? 고발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이지만 딸 소리를 생각해서 참고 참았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 중엔 고발할 사람이 없어. 누구지? 혹시 장모님이나 장인어른이 아닐까 싶어.”
“왜 꼭 우리 친정 쪽으로만 몰아붙여? 거기 다른 멤버들 가족이 고발할 수도 있잖아.”
“여기 다른 사람들은 그럴 사람이 없어. 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거든.”
미영은 기가 막혔다. 도박이나 하는 사람하고 하긴 누가 살겠는가? 이혼을 결정하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자신이 한숨만 나왔다.
“도박이나 좋아하는 사람하고 누가 살겠어? 그러니 다 이혼당한 거지.”
“지금 그런 걸 따지자고 전화하는 게 아냐. 나 회사에서 알면 징계먹어. 회사 잘릴지도 몰라. 당신이 경찰서로 전화를 해서 오늘 처음 집에서 나갔다고 사정 좀 해봐. 그런 사람 아니니 한 번만 선처를 구한다고 말이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미영은 화가나서 소리를 질렀다.
“지금 남편이 경찰서 잡혀 왔는데 어디다 대고 여자가 소리를질러!”
남편은 잘못을 반성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말을 하면 뭐하겠나? 오히려 더 큰 소리를 지르는 한심한 남자한테...
“내가 좀 분위기를 보니까 난 처음 걸려와서 가족이 오면 훈방될 가능성이 크대. 다른 사람들은 재범이고 교도소 들락거려서 이번에 가중처벌 된다나 봐. 장모님이나 장인어른이 신고했다면 내가 이 사람들한테 큰 죄를 진 거라니까!”
미영은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참, 기가 막혔다. 지금 그런 상황이 된 자신의 잘못을 반성은커녕 혹시나 친정 부모님이 고발한 거 아니냐며 그들 걱정을 하다니! 미영은 정말 아악!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 아빠지 않은가. 소리가 자다 깨어나서 엄마가 화난 것 같자, 겁을 먹고 있는 표정을 보니 마음이 또 미어졌다.
미영은 남편이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창피해 자살하고 싶은 심정인데 미영의 마음은 헤아려 주지 않고 그들을 걱정하는 한심한 남자가 남편이라는 게 미칠 것 같았다. 답답해서 속이 터져 문드러지고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미영은 수갑을 차고 교도소로 향한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니 머리가 뜨끔 거리고 아픈데 자신에게 미안한 게 아니라 그들 걱정을 하고 있는 남자랑 잘해보겠다고 그동안 노력한 자신이 땅속으로 꺼지는 암울한 심정이었다.
“다시는 안칠게. 여기 잡혀 올 때 수갑 차고 와서 창피해 죽을뻔했어. 아, 오늘 어쩐지 일찍 일어나고 싶었는데 다른 놈이 잃었다고 죽어도 더 치자고 하다가 걸려서 내가 오늘 아주 재수가 없는 날이야.”
미영은 더 기가 막혔다. 나라에서 금지하는 일을 해 놓고 재수가 없어 잡혀들어왔다는 말이 나오다니 미영의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얘기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남편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입만 열면 쓰레기 같은 말이 쏟아져 나오는 남편의 입을 누가 좀 꿰매줬으면 싶었다. 미영은 눈물도 안 나왔다. 그동안 남편과 잘해보려고 애쓴 자신이 가여울 뿐이었다. 눈물은 보석처럼 값진 것이기에 가치없는 남편 앞에서 흘릴 눈물이 아니었다.
미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고 무서웠다. 그러나 애 아빠가 아닌가? 어떻든 이런 일을 당하면 구해내야 하는 게 가족이려니 싶어 마음을 추스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애간장이 타들어 갔다.
다행히 도박경력이 없고 처음 잡혀 온 거라 선처를 구하고 사정을 해서 검찰로 넘어가지 않고 훈방으로 끝났다.
“다시 걸리면 이제 전과자로 훈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이제 하지 마세요! 다음번엔 가족이 와도 우리로선 선처를 해 줄 수 없으니 조심하세요! 또 걸리면 검찰로 넘어가고 재범으로 벌금도 많고 판돈에 따라 구속도 됩니다.”
“오늘 걸린 걸 지워줄 순 없나요?”
남편은 경찰서에 잡혀 온 기록을 좀 지워 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네? 이것 보세요. 오늘 판돈이 이렇게 큰데 당신 오늘 바로 검찰로 넘기려다 아내 분이 통 사정하여 한번 봐 드리는 겁니다. 아내 분을 봐서요. 앞으로 이런 도박 같은 거 딱 끊으세요. 이런 도박하는 사람들 부인들은 속이 타들어간다는 걸 아세요.”
미영은 경찰의 그 말이 고마웠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경찰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말을 하자 갑자기 눈물이 솟구쳐 흘러내렸다. 미영이 그동안 마음 고생한 것을 경찰은 알아주는 눈빛이었다.
경찰서에서 미영은 자신이 도박하다 걸린 사람처럼 고개를 연신 조아리며 앞으로 조심시키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남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살다가 이런 끔찍한 일로 경찰까지 들락거리는 남편을 바라보니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거기다 도박꾼들하고 어울려서 인생을 허비하는 남자가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창피하고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딸을 생각하면 죽을 수도 없었다.
‘이 정도 혼났으면 다시는 안 치겠지...’
미영은 오히려 이번 기회가 하늘이 도운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어떻든, 남편이 도박에서 손을 씻고 가정으로 돌아와 평범한 일상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진흙탕 속 삶에서도 미영은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훈방조치로 끝나 다행히 회사에서는 모르고 지나갔다. 예전에 회사 직원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신혼이래도 그렇지, 잠 좀 재워요. 회사에서 매일 졸아요. 사람들이 수근 댄다니까요.”
그러면서 야릇한 눈빛을 보내곤 했었다. 열심히 살아도 인정받기 어려운 세상에서 이미 직장에서도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남편이 안타까워 좋게 대화를 시도하려해도 남편은 도박에 관해선 일체 언급하기를 싫어했다.
미영은 가슴이 미칠 것처럼 답답했지만 대화를 하려 하면 여자가 잔소리한다고 싫어한다. 아무리 사랑으로 보살피며 정상인으로서의 행복을 느끼며 살게 유도해 보려 해도 세상과는 귀를 딱 닫고, 오직 도박 친구들하고만 소통하기를 좋아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의 연속이었다. 문득문득 끝까지 같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이혼이 답인가?’
미영은 미래가 불투명하고 답답했다.
각박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서로 노력하며 함께 잘해보려 해도 부부가 끝까지 사랑하기가 힘들다고 말하는데 남편은 아예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게 하고 말만 하려면 듣지 않고 담배를 들고 나가면서 짜증을 내니 미영은 아무 말도 없이 벙어리처럼 남편을 바라보고 느낌으로 알아서 척척 남편의 비유를 맞춰야만 했다.
다음 회에서 만나요.
*제 주변에 지인들 중에 노안이 와서 제 글을 눈으로 보기보다 듣고 싶다는 의견이 있어 제가 읽어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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