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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세상이 두 배로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시속 300km의 KTX는 시속 600km의 폭주기관차가 되었다. 길거리의 차들은 연속 추돌 사고를 만들어냈다. 말을 하던 사람들은 말의 빠르기에 놀라 말을 멈추었다.
30초 뒤, 연속 추돌 사고로 인해 쾅하는 소리가 어느덧 없어지고 세상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모든 게 멈췄다.
10분 뒤, 각국의 정부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말이 너무 빨라서 자막으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현재 저희 정부는 진상규명에 나서고 있습니다.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20분 뒤, 언론에서는 각종 추측과 음모론을 꺼내 들었다
“시간이 갑자기 빨라진 현상, 움직이는 블랙홀인가?”
“전문가 `과학적으로 전혀 말이 안 되는 현상’”
40분 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이게 바로 성경에 다 나와 있는 겁니다. 메시아(구원자)가 오고 있다는 징조….”
1시간 뒤, 코스피는 1,800포인트로 하락했다. 뉴욕 증시는 10.9%의 하락을 맞았다. 하지만 자동차 기업들의 주가는 폭등했다. 자동차 사고가 너무 자주 나서 자동차를 사야 하는 사람들의 수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보험 업계는 당황했다. 특히 자동차 보험이 있는 회사들은 엄청난 보험료를 지급해야 하는 위태로운 지경에 놓였다. 개미(소액 주식 투자자)들은 주가 그래프를 보고 좌절했다.
“금번 사건은 상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려 일으킨….”
“이 시국에 또 이런 일이? 역시 문재앙….”
“씨X 시간이 빨라졌다고 가격도 올리냐?? 치킨이 3만 원?”
세상이 두 배로 빨라진 만큼, 세상은 두 배로 역겨워졌다. 인류는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걷는 방법을 다시 배웠다. 이전보다 두 배 더 느리게 걷고, 두 배 더 느리게 말하고, 두 배 더 느리게 먹고, 그렇게 인류는 적응했다.
하지만 하루는 12시간이 되었다. 많이 자고, 적게 일하던 서구인들은 이에 적응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5시간 자고 많이 일하던 한국인들은 아주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워라벨이라는 단어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11일, 세계 각국 정상들은 이 현상에 관한 연구 및 분석에 대해 협력망을 만들 계획입니다.”
하지만 이 소식보다는 이 소식에 사람들은 더 좋아했다.
“전 세계의 기업들이 한국인들을 찾는 이유”
코스피가 2,400포인트를 넘었다. 한국인은 가장 표준적이고 적합한 인류로 지목되었다. 단순하게 잠을 많이 안 자고 일만 한다는 인식… 유럽에서는 잠을 안 자는 방법을 초등학교 교육과정으로 추가했다. 일본에서는 중학교, 남미에서는 고등학교. 물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치동에선 ‘수면 사고력’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저희 학원에서는 수면 사고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수면 사고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바둑 교실 OPEN”
물론 바둑 교실은 망했다.
“오늘 각국 정상들은 우주에 비행선을 발사해서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겠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그러든 말든 사회는 혼잡해졌다. 타임스퀘어에서는 총기 난사가 발생하였고, 한국에서는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폭력시위가 등장했다. 정부가 무슨 말을 하던, 결론적으로는 자신들도 사태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말인데, 굳이 정부 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과학은 침묵했다. 과학으로는 절대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블랙홀도 없었고, 외계인도 없었고… 하지만 종교는 시끄럽게 떠들었다. 종교만이 이 현상의 ‘왜’,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과학이 침묵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동안, 종교는 계속 생겨났고 국민들의 불안은 커져갔다. 과학을 믿는 사람들은 종교와의 토론에서 ‘시간이 빨라진 이유’에 대해서 횡설수설했고, 사람들의 인내는 바닥났다. 비혼 주의가 대세가 되었다. 도대체 국가는 뭘 하고 있는가?
그때 즈음, 시간이 또 두 배로 빨라졌다. 시속 600km의 KTX는 시속 1,200km의 대륙횡단 열차가 되었다. 일부러 느리게 달리도록 설정된 자동차는 또 연속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당황하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예언한 것이라면서, 조종한 것이라면서 신도들을 끌어모을 생각을 했고, 과학자들은 좌절했다. 아무도 몰랐지만, 우주선은 곧 발사될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침묵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자꾸 벽에 부딪혔고, 말은 느리게 하려 해도 너무 빨랐다. 하루는 이제 6시간이 되었다. 전설의 한국인들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식량, 동물들은 시간에 적응하지 못했고, 죽어 나갔다. 각국의 정상들은 상황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들로선 이제 무엇이 남았는지, 어떤 단계가 남았는지 선명했다.
“Sake L 님은 이 사태를 예견하시고 노동요를 만들었다.”
정부는 언론통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우주선 발사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각국의 정상들에게 알려졌다. 기존의 우주선보다 속력이 4배나 빨라서 도저히 인간이 속도를 버틸 수 없다는 것. 정상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의미 없는 발사가 되겠지만….
우주선은 발사됐다, 어차피 죽을 사람을 우주선 안에 채워 넣은 뒤. 정부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걷는 법, 먹는 법, 자는 법, 말하는 법을 다시 배우지 않았다. 이제는 무언가를 할 의지도 없어진 듯. 어떻게 하던 이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일단 누웠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줄기 시작했다.
과학이 우주를 아무리 하염없이 바라봐도 얻을 수 없다는 진실에 정상들은 종교로 눈을 돌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정상들은 기도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몇천 개의 종교들, 몇천 명의 신들에게 모두 기도했다. 그러던 중 “아리아수, 콘두러두스”라고 어떤 무명 신에게 기도하자 갑자기 시간이 2배 느려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당황했다.
종교는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되었다. 물론 그 희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각 나라의 유명 장소에 모였다. 한국에서는 100만 명이 광화문에 모였다. 모두가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아리아수, 콘두러두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자 다시 사람들은 다시 기도했다.
“아리아수, 콘두러두스!”
아무 일도…
“아리아수, 콘두러두스!!”
아무 일도 안 일어났지만, 사람들은 기도를 계속했다. 그게 최선이고, 희망이었다. 과학은 위대한 기도 소리와 함께 자살했다. 우주선은 어디 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리아수, 콘두러두스!!!”
시간이 지날수록 기도에 울분이 섞여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리아수...”
기도는 어쩌다가 끊겼다. 이제 남은 건 뭘까? 그나마 남은 과학자들은 생각해보았다. 결국, 각국 정상들은 총을 이용해 자살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었다. 그게 중요한가?
결국, 시간이 흘러서 인류가 멸망하고, 지구가 돌고, 태양도 돌고, 우리 은하계가 안드로메다에 부딪히고, 시간이 여전히 2배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을 때, 블랙홀이 점점 커지더니 결국은 우주를 집어삼키고는 급속도로 수축해서 점 하나가 되었을 때, 드디어 과학이 원했던 의문이 풀렸다. 누가, 어떻게, 어떤 어조와 목소리, 언어로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상 재밌다! 다시 봐볼까?”
인류의 고달픈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고차원의 누군가에겐 몇 분짜리 유흥거리일 뿐인.
출처 |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