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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 책상 위로 퍼져있던 배수기가, 갑자기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퀭한 눈으로 한 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던 배수기는, 실성한 사람처럼 껄껄 웃기 시작했다.
배수기: “푸하하하 뭐냐 이건? 어떤 새끼가…”
배수기는 주변을 돌아보다 앞자리에서 책을 읽고있는 이지훈 발견하고는 불러댔다.
배수기: “야! 이지훈! 어떤 쓰레기 같은…”
이지훈이 책을 읽으면서 배수기에게 응답하지 않자, 배수기는 의자를 발로 툭툭 차면서 지훈이를 다시 불렀다.
배수기의 발길질에 화들짝 놀란 이지훈이 배수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지훈: “아.. 무슨 일이야?”
배수기: “야. 너는 신성한 쉬는 시간에 뭔 공부냐? 수업시간에 수업 듣고, 쉬는 시간에는 쉬어야 할 거 아냐?”
이지훈: “그런가”
이지훈이 읽던 책을 덮고 멋쩍게 웃었다.
배수기: “야 어떤 씨방새가 나한테 행운의 편지를 보냈지 뭐냐. 뒤지려고 작정했나..”
이지훈: “누가 보냈는데?”
배수기: “몰라.. 메신저인데 이름도 없어. 근데 내용이 더 웃겨.”
이지훈: “이름이 없을 수가 있나? 연락처 상세보기 봐봐. 내용은 뭔데?”
배수기: “음.. 상세보기에도 안 나와. 이상하네. 내용은..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뭐.. 일주일 안에 길고양이를 죽여서 3반 창문 아래 화단에 묻어라. 그렇지 않으면 흠.. 뱀에 물려 죽게 될 것이다. 푸하하”
이지훈은 내용을 듣더니 배수기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히 말했다.
이지훈: “섬뜩하네..”
배수기: “뭐가 섬뜩해? 하 놔… 모르냐? 이거 내가 쓴 거잖아? 기억 안 나? 예전에 춘배였나 걔한테 장난으로 썼던 건데?”
이지훈: “춘배? 그런 애가 있었나?”
배수기: “그래.. 근데 뭐.. 이게 하도 돌아다녀서 열화됐는지, 내용도 바뀌고 완전 형편 없구만.”
이지훈: “바뀌다니?”
배수기: “응.. 봐봐 묻으라는 게 아니고 사진을 보내라는 거 였을걸? 그리고 뱀에 물려 죽다니 크크크. 나는 독사가 혼내준다고 썼었어. 내용이 똑같은데 조금씩 바뀐거네.”
이지훈: “아 그래.. 좀 기억나는 것 같다. 춘섭이였어. 박춘섭.”
배수기: “아 작년에 전학 갔었지? 뭐.. 여튼 어떤 새끼가 쳐 돌았는지.. 장난을...”
이지훈: “뭐.. 그래. 웃기네.”
배수기: “어이가 없구만.. 피웅신… 어떤 새낀지..”
배수기는 장난 같은 행운의편지를 메신저에서 삭제하고 다시 책상 위에 퍼질러 누웠다.
■ ■ ■
배수기는 다음 날 등교하자 마자 앞 자리 이지훈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시작했다.
배수기: “야 오늘 아침에 내가 뭘 본 줄 아냐?”
이지훈: “아.. 왔냐? 뭘 봤는데?”
배수기: “아 씨댕.. 진짜 짜증나게.. 우리 집 앞에 뱀이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겠다. 징그러워서 숨지는 줄 알았다.”
이지훈: “희한하네.. 나는 본 적이 없는데.”
배수기: “나도 열 살 때 약수터에서 보고 나서 진짜 처음 본다. 어이가 없다 진짜. 약수터랑 오지게 떨어져 있는데 갑자기 집 앞에서 뱀이 튀어나오다니.”
이지훈: “놀랐겠네. 조심해야겠다 야. 행운의 편지도 있고, 조심해라.”
배수기: “뭐? 뭔 소리야? 내가 그 딴 거에 쫄 것 같냐? 그것도 내가 쓴 행운의 편지에?”
이지훈: “하기야.. 뭐.. 그것도 그렇네.”
배수기: “그나저나 너는 당번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이지훈: “아.. 할 일이 좀 있어서. 국어숙제도 있고..”
배수기: “뭔 숙제를 학교에서 해? 홈워크는 홈에서 해야지. 참 나.”
배수기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김민준을 봤다.
배수기: “야 민준아.”
김민준: “응? 안녕~~”
배수기: “야 그게 뭐냐.. 볼펜.”
김민준: “응? 이거? 왜?”
배수기: “일제를 쓰면 어떡하냐? 하.. 진짜.. 개념없네 이런 시국에.”
김민준: “아.. 그러게 생각도 못했네”
김민준이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김민준: “다음에는 좀 더 조심할게 하하..”
배수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김민준의 볼펜을 휙 채가더니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배수기: “하.. 아침부터 이래저래 짜증나네..”
■ ■ ■
이틀 후.
체육을 끝내고 돌아온 배수기의 반은 남자아이들의 땀내로 가득했다.
배수기가 옷을 갈아입고서 체육복을 넣으려고 가방을 열었더니 가방에서 아주 작은 초록색 뱀이 튀어나왔다.
배수기: “으악!!!!”
배수기는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이들: “뭐야? 또 뭔 일이야?”
배수기: “배.. 뱀…!”
뱀은 창가로 나가버렸는지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배수기: “지훈아! 저 뱀 봤지?”
이지훈: “응.. 저거 독사 아니냐?”
배수기: “아 씨댕 어떤새끼야?! 내가 잡으면 가만 안 나둬!”
배수기는 반 친구들을 노려보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지훈: “야.. 누가 장난하는 건가.. 그냥 행운의편지에 써 있는 대로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배수기는 대답도 못하고 분노에 못 이겨 씩씩대기만 했다.
배수기: “헛소리 하지 마. 장난으로 내가 쓴 건데, 효과가 있을 리가 없잖아? 바보냐?”
상황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김민준이 입을 열었다.
김민준: “야.. 괜찮겠어? 보건실이라도 가야 되는 거 아니냐?”
배수기는 대답도 없이 여전히 씩씩댈 뿐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반으로 걸어 들어오는 이지훈을 향해 배수기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배수기: “야.. 지훈아. 내가 요즘 뱀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린 것 같다.”
이지훈: “흠.. 생각보다 많이 놀랐구나.”
배수기: “어제는 꿈에 박춘섭이 나왔어. 그놈이 대답도 안 하고 꽁해 있더라고.”
이지훈: “그랬구나.”
배수기: “근데 춘섭이 그 새끼는 뭐 하고 지낸다고 그러냐? 내가 예전에 행운의편지 보낸 것 때문에 나한테 복수하는 거 아냐? 내가 그 새끼한테 잘해줬었는데, 설마 아니겠지?”
이지훈: “야.. 그 쫄보놈이 너한테 해코지를 어떻게 하냐? 그리고 독사를 구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긴 하냐?”
배수기: “그렇겠지? 그래도 혹시 알게되면 연락처라도 알아봐 줘. 걔가 전학 간 학교에 아는 친구 있지?”
이지훈: “흠.. 그래 그럼 뭐.. 알아 볼게.”
배수기: “그래 오늘 저녁까지 좀 알아봐 줘. 내가 요새 거의 공황장애 걸린 것 같다.”
이지훈: “알았어. 얼른 애들한테 한 번 연락해 볼게.”
몇 개의 수업이 끝나고, 부산스럽게 교실을 들락날락하던 이지훈이 마침내 배수기에게 다가왔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고 멍하니 있던 배수기는 다가오는 이지훈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이지훈: “야.. 내가 알아봤는데?”
배수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 죽여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