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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공장 안 갈거면 공부나 해
게시물ID : panic_1013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1세기인간
추천 : 4
조회수 : 16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4/16 1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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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의 이 세상에도 삶은 여전하다. 그 덕분에 A는 오늘로 만 15세를 넘겨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20대에 일을 시작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는 오늘부로 돈 버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그저 아빠인 B의 말을 따르는 것이라 정확한 내용은 잘 몰랐다. 주말 동안 잠시 하는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다. 

  “아까 아침에 말했듯이 오늘 일하러 간다.”

  “네.”

  “이제 학교는 안 가도 된다. 정확히 말하면 그만둔다.”

  A는 좀 놀랐다. 그냥 간단한 아르바이트 하러 가는 줄 알았다. 학교라고 하는 것이 만 15세의 나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학교를 끊고 일을 하라니, 무뚝뚝한 아빠의 말은 진담처럼 들렸지만, 진담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달려가는 차 안에서 B는 앞으로 학교에 안 갈 것이며, 아는 친구들과는 따로 알아서 하라고, 앞으로 진짜 일을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A는 어디에 가는 거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차는 더러운 공장 앞에 멈췄다.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 공장이었다. A는 두려워졌다.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선택권은 그에게 없었다. 그는 인장(도장)은 아빠가 가지고 있었다. 

  “공장 들어가 보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알 수 있을 거다.”

  A는 아빠의 의도가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평소의 아빠는 꽤 똑똑하고 현명했지만, 장난은 절대 치지는 않았다. 즉, 공장에서 평생 일하라는 건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그게 무슨 뜻일까? 어떤 아빠가 이런 짓을 할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기업 들어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A의 생각에 B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공장에 취직시킬 거라는 경고를 하려는 것 같았다. 원래 B가 한다면 하는 사람이긴 했다. 그는 사업 실패하면 죽겠다는 말 빼고는 자기 입 밖에서 나온 모든 말을 지켜왔다. A는 두려웠다.

  하지만 B는 그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A는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부모님께 보답하겠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장 안 갈 거면 공부나 해. 그딴 말 절대로 꺼내지 마.”

  또 A는 말을 잘못했다. 그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저히 B는 정상적인 아빠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공부 대신 일을 하라니…. 그것도 공장?

  “무슨 이유로….”

  “일단 따라와 봐. 그리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넌 그냥 ‘네’만 하면 되는 거야.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아빠를 따라서 걷는 B의 심정은 혼란스러웠다. 남의 인생을 왜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건지, B가 똑똑하긴 하지만, 그래서 좋은 결정을 내리긴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게 인간인데… 

  어느 정도 공장과 가까워지자 공장장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아빠에게 다가왔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와… 네가 A구나. 어릴 때 회사에서 한 번 봤었는데… 기억나니?”

  하지만 아빠는 오랜 친구로 보이는 한 사람의 반응에 차갑게 답했다.

  “일단 우리 둘이 따로 얘기해보자. 넌 여기서 기다려라.”

  “어, 그래. 넌 여기 있어라. 나는 네 아빠 고등학교 동창이다. 얘가 이래뵈도 명문고 나왔거든.”

  그렇게 A는 공장 밖에 홀로 남았다. 공장에서 평생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빨리 여길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갈 수 없었다. 차도 없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용기와 의지를 억누르고 그냥 서 있기로 했다.

  항상 B는 아빠로서 A를 통제해왔었다. 학원을 가고 싶다고 해도 보내주지 않았고, 주말마다 억지로 운동을 시켰다. 왜 그랬는지 A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한편 공장 안에 들어간 B와 그의 친구는 다른 맥락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너 되게 무섭다. 공부시키려고 여기까지 와서 협박하는 거야?”

  “아니. 진짜로 보내려고 온 거야.”

  “공부 안 하면 공장 보낸다고 협박하는 거잖아.”

  “진짜로 보낼 거야.”

  “진짜로?”

  “부모 된 도리로서 자식 공장 보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B의 친구는 B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정상적인 부모는 공부를 시키려고 하지 공장에 자식을 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왜 여기로 보내려는 건데… 엔간(앵간)하면 그냥 공부시켜라. 여긴 그냥 공장도 아니고 방사능을 다루는 공장이어서 되게 위험한데….”

  “그러니까 여기서 내 아들이 일해야 하는 거야.”

  “아니, 왜 그래. 여기는 방사능 공장이라고. 시급도 진짜 조금밖에 안 주고, 건강에도 위험하고, 그… 특히 남자한테 안 좋아.”

  “아니, 그러니까 여기서 일해야 하는 거라고. 이해 못 하겠어?”

  “ A가 공부를 좀 못해?”

  “아주 잘하지. 학원 없이도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지… 그래서 난 걱정이다.”

  “그게 뭐가 걱정이라는 거야. 그러면 대기업 들어가서 잘 살라고 해라. 왜 이런 데 와. 여기는 그런 애가 오는 데가 아니야….”

  그 순간, A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공부해서 그냥 대기업이나 가면 될 것을 왜 아빠라는 사람이 자식이 원하는 건 하나도 안 들어주고, 학원도 안 보내주고, 주말마다 운동시키고, 그러다가 왜 갑자기 이런 미친 짓을 하는지.

  “야, 너도 대기업 들어갔다가 퇴사하고 사업해서 잘 됐잖아, 아들놈도 꽤 똑똑한 것 같은데, 나도 자식 키우는 아빠로서, 아니 그냥 일반인으로서 넌 지금 미친 짓 하는 거야. 대기업 보내면 돈도 많이 벌 텐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 이 멍청한 사람아. 그만 좀 하고 계약서나 가져와. 내가 우리 아들 주말마다 운동시켰어. 그래서 공장에서 일하기 좋은 몸을 가지고 있고, 그걸 내가 너한테 최저 시급에 파는 거니까 너로서는 엄청난 이득이잖아.”

  “와, 너도 참 대단하다. 나는 애를 대치동에서 학원 뺑뺑이 돌리느라 바쁜데 말이지. 너 너무 자식 생각 안 하는 거 아니냐?”

  “야 이 새X야. 너나 나나 자식 위해서 이 짓거리 하는 거잖아. 그리고 넌 사업가면서 왜 윤리나 따지고 앉아 있어. 계약서 가져와 봐.”

  B의 친구는 일단 계약서를 가져왔다. 계약서에 A의 인장이 찍혔다. 정작 A는 밖에 홀로 서 있었는데.

  “그래, 나한테 이득은 맞아. 나도 도장 찍을게. 대신 이유 좀 알려주라. 왜 아들을 공장에 보내려고 하냐? 아까도 말했지만, 시급도 적고, 건강에도 위험하고, 남자한테… 그니까 정자가 다 죽는다고.”

  “그야, 정자가 다 죽어버리면 그건 콘돔값을 아낄 수 있는 거고, 무료로 피임하는 거잖아. 결혼하기 전에 애 생겨서 나처럼 인생 말아먹을 일도 없지. 그리고 건강이 안 좋아지면 빨리 죽잖아.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이냐. 노후 걱정 안 해도 되지, 국가를 위해서 국민연금 아낄 수 있지, 괜히 늙어서 꼰대 짓 할 일도 없지. 또 시급이 적으면 얼마나 좋아. 내가 대기업 다녀서 돈이 많이 생기니까 사업 시작한 거 아니냐. 시급이 적으면 사업할 일도, 위험한 것에 도전할 일도 없잖아. 얼마나 좋아…”

  “무슨 헛소리를… 왜 그러냐? 행복하게 살면 안 되냐? 평생 아들을 공장에다가 가두어놓고는 고생시키고 힘들게 살다가 죽게 하고 싶어? 도전이 얼마나 숭고한 건데, 왜 사람이 그렇게 된 거야?”

  “그야, 나는 80년대에 사업해서 성공하고, 결혼 전에 애가 생기고, 근데 결혼하려니까 IMF가 와서 집안이 박살 나고, 빚더미에 놓이니까…”

  B는 말을 멈췄다. 그의 주름 사이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그의 말은 알아듣기 힘든 곡소리가 되었다.

  “빚더미에 놓이니까 나밖에 없다던 여자친구는 도망가고, 돈 없어서 애 학원도 못 보내주고, 그러니까 그러지. 그게 내 인생인데… 너 같은 사람은 이해 못 해. 나는 행복해지려고 사업을 했거든? 근데 지금은 더 불행해졌잖아.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면 안 되는 거야. 도전하지 말고 살아야 더 불행해질 일도 없는 거야…”

  몇 초의 적막이 흐르고 B의 친구는… 회사의 도장을 찍었다. 을사늑약이라 불릴 만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B의 친구는 계속되는 그의 곡소리를 들어주기가 귀찮아서 B를 빨리 내보냈다. 공장에서 나오는 B를 기다리며 A는 그저 서 있었다. A도 울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보던 당신은 A와 마주쳤다. 하지만 당신은 그저 방사능 공장의 노동자일 뿐이다. 당신은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공장 안으로…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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