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5년 12월 2일, 저녁 8시 반쯤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강 추위에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더랬죠.
저는 수서역 인근에 사는 데요, 요즈음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수서발 KTX 역 공사가 한창이라 교통체증 완화를 위한 인근 도로 확장 공사를 하느라 도로 옆 인도 부근의 대모산을 막 깎아내리는 난리통이 연출되고 있는 데다 밤에는 눈까지 예보가 되어 있어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잰 걸음으로 걷고 있었는데, 제 인생 최초의 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저를 향해 막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길에서 마주치면 남자도 피해 가는 제 덩치를 보고 새끼 고양이가 달려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제 양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앉은 고양이는 1미터 85 높이의 제 눈을 올려다보며 애처롭게 울어댔습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마치 "아이고 성님, 동상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오, 이 엄동설한에~" 라며 육각수로 빙의되어 저에게 울부짖는 것 같았습니다.
18년을 살았던 반려견 진순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난 후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기에, 마음이 아팠지만 저는 야속하게도 일단 모른척하며 비켜서서 다시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한 놈이군. 닝겐, 거기 잠깐 서라 닝겐!"을 외치며 제 청바지를 필사적으로 타고 올라왔습니다. 이대로 두면 추위와 배고픔에 얼어 죽는 것은 뻔했기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여리디여린 새끼 고양이를 제 한 손에 들어 올려 집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다행히 인근 동물병원이 영업을 마치기 직전이라 급히 데려갔는데, 약 2개월 정도 되어 보이고, 어미가 죽고 혼자 방치되었는지 너무 굶어 뼈만 남았을 뿐, 별다른 질병은 없다고 했습니다. 급한 대로 이름을 '호돌이'로 지어주고 사료와 간이 화장실을 구비하여 그날은 일단 집에서 재우며 임시보호만 하자고 결정을 했죠.
하지만 역시 인생은 애초의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더군요.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호돌이의 시크한 매력에 저는 그만 푹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비로소 저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간택'당한다는 것이로구나! 이후의 제 모습은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현재 저의 집은 각종 고양이 장난감에 캣 타워, 박스 등으로 넘쳐나는 대 재앙이 엄습하였습니다. 대박사건은 수컷인 줄 알았던 호돌이가 암컷으로 밝혀지는 바람에 이름이 호순이로 급 변경되었다는 거지요. 진순이는 18년을 살고 갔는데, 이제 그 대를 이어 호순이와 긴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선배 집사님들의 주옥같은 조언과 지도편달을 부탁드리며 이상 호순이와의 스토오리 끝~!! 사진은 댓글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