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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 - 인간실격 (1)
by 꼬지모
인간들은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이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 말 속엔 인간으로 인식되기 위해선 인간의 형상만으론 부족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을 게다. 말하자면, 인간의 조건이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난 그 조건에 실격된 인간, 그러니까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교하는 길은 언제나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다. 나는 오늘 학교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섣부르게 입을 열었던 스스로를 탓했다. 물론 내가 했던 이야기의 내용만큼은 후회스럽지 않다. 그건 진심이었으니까. 다만 선생과 반 친구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게 문제였던 것이다.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 그리고 반대로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주제로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지던 사회문화 시간이었다. 어느덧 이야기는 주제를 벗어나서 몇 년 전에 고등학생들을 태운 여객선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사건에까지 이르렀다. 말이 토론이지 고작해야 고등학교 2학년짜리 아이들이 논리적인 의견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들 좋다, 싫다, 슬프다, 화난다 그 이상의 말을 하지 못했다.
난 구석 자리에서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갓 부임한 열정적인 젊은 선생이 내 이름을 호명했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봉수야.
불의의 습격을 당한 난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마치 사례가 들려 기침을 하는 양 제멋대로 지껄이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요. 전 그렇게 슬프지 않아요. 그렇게 화나지도 않아요. 다들 어떻게 그렇게 슬퍼하고 화낼 수 있는지, 가끔은 부러워요. 난 그러지 못하니까요. 음, 그냥 그것 뿐이에요. 다른 생각은 없어요.
아이들은 벙찐 얼굴이 되었고 선생은 얼굴이 붉어져서 횡설수설하다가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치자 서둘러 교실을 나갔다. 난 어쩐지 내가 모두에게 폐를 끼친 거 같아 미안해졌다.
쉬는 시간에 몇몇이 나를 보며 쑥덕이더니 ‘일베’란 말을 했다. 그리곤 실제 ‘일베’로 이미 인정받은 또다른 몇몇의 아이들은 내게 다가와 친한 척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이 하는 말들에 동조하지 않아 곧 굳은 얼굴을 하곤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서 난 교실 안에서 ‘일베’이기에 욕을 먹었고 또 ‘일베’가 아니기에 욕을 먹는 형국이 되었다. 경멸의 빛이 가득한 그들의 눈 속에 담긴 나는 인간의 조건이 결여된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었다.
침울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접어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살아온 동네지만 매번 생경하게 느껴진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음식을 찾아먹는 인간들과 900만원 어치 유럽여행을 위해 캐리어를 끌고 공항 버스를 타러 가는 인간들이 뒤섞인 동네다.
물론 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인간들에게 더 시선이 간다. 내가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라서 그런 지 모르겠지만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종류의 인간들보단 원룸 건물 앞 내다놓은 배달 그릇 속 남은 짬뽕 찌꺼기를 골라먹는 그들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단순히 ‘거지’라고 칭하기엔 매우 복잡한 군상을 보이는 그들은 근래 들어 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골목을 벗어나 탁 트인 길가로 나온다. 오른쪽으론 원룸을 비롯하여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제법 시설 좋은 오피스텔과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왼쪽으론 인적이 끊긴 폐건물들이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말하자면 이 길은 전혀 다른 생태계를 가진 두 공간을 나누는 경계 같은 것인데, 이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게 내 일상의 낙 중 하나다.
오른편에 있는 오피스텔 건물 입구에서 파스텔톤 가디건을 걸친 한 30대 여자가 한 손엔 참치캔과 다른 손에는 둥근 그릇을 들고 나온다. 그녀는 건물 앞 전신주 밑에 앉더니 참치캔 속 내용물을 그릇 안에 담아둔다. 난 뭐하는 건가 싶어 잠시 멈춰서서 그 광경을 지켜본다. 그러자 주차된 차 밑에서 야옹, 거리며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나온다. 세심하고 배려심 가득한 여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고양이가 그릇 속 참치를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곤 카메라를 들어 고양이 사진을 찍고, 셀카로 자신과 함께 뒤에 고양이가 걸리게 찍기도 한다.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여러번 고쳐 찍는다.
그때 내 코를 자극하는 퀘퀘한 냄새가 풍겨온다. 난 단번에 무슨 냄새인지 알아차린다. 냄새의 진원지로 시선을 돌린다. 바로 왼쪽 폐건물들 사이로 그들 중 하나가 빼꼼이 고개를 내밀곤 여자와 고양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때 바짝 깎았을 상고머리 스타일에서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조금 지저분해보이는 남자다. 마흔 살 정도 되었을까. 옷차림과 상태로 볼 때 거리를 헤맨지 그다지 오래되어 보이진 않는다.
난 여자와 고양이, 그리고 남자를 번갈아 관찰한다. 여자가 사진은 다 찍고 이제 필터를 먹이거나 sns에 올리거나 하는 등의 다음 절차에 접어들었는지 고양이는 안중에도 없고 휴대폰만 바라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바로 그때였다. 남자가 그 얼룩 고양이 쪽으로 잽싸게 달려든 건.
캬아아아앙. 알캉진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한순간 발톱을 세운 얼룩 고양이는 역시 발톱을 세우고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든 남자에게 밀려 도망가버린다. 남자는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주위를 급하게 둘러본다. 난 얼른 차 뒤로 몸을 숨긴다.
다시 차 밖으로 슬쩍 고개를 내미니, 남자는 그릇을 들고 한 손으로 참치를 집어들어 입에 마구 넣고 있다. 그의 입가에 참치 기름이 줄줄 흐른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킨다.
집으로 돌아와서 자리에 누웠는데도 그 남자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들이 길고양이의 밥을 훔쳐먹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말하자면 그 남자는 일탈이자 미지의 영역으로의 진출을 시도한 것이다. 말하자면 생사를 건 선택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언제나 그런 선택이란 그리 녹록치 않은 법이다. 며칠이 지나고 이런 사건이 우리 동네에서 동론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