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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점집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비 묻은 우산을 털면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요란스러운 문소리 때문에, 힘들게 여기까지 온 내 마음이 조금 더 움츠러들었다.
시끄러운 문소리에 반응했는지, 외딴 방에서 들리던 모깃소리만한 TV소음이 딱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는 무당 아주머니가 허겁지겁 방에서 나와서 모습을 드러냈다.
허름하게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점집의 내부는 깔끔하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늑한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가볍게 아는 척을 하고 방석 위에 앉았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머니: “우양리 2층집 사는 젊은이구만. 응.. 그래..”
가끔 읍내 마트에서 종종 마주친 사이라,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불현듯 나는 아주머니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험한 무당이라면 내 안색만 보고도 내가 왜 왔는지 맞출 것이리라.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냥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시작하지 않았다.
아주머니: “그래. 무슨 문제가 있나? 사업? 취업?”
아주머니의 말에 기대감을 잃은 나는 그냥 속 시원히 말을 시작했다.
나: “자꾸 가위에 눌려서요.”
아주머니: “어디? 사는 집에서만? 우양리 맞지?”
나: “네.. 우양2리요.”
아주머니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 위에 있던 팥 주머니에 넣은 손을 조물조물 움직였다.
아주머니: “2층이고, 뒤에 텃밭도 있지? 뭐 키우는 거라도 있어?”
나: “네.. 텃밭은 햇볕이 잘 들지도 않고, 지금은 그냥 잡초만 자라고 있어요. 잡초가 사람 키 만해 지니까 건드리기가 싫더라고요.”
아주머니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 “음.. 얘기는 종종 들리더구만.”
나: “얘기라니요? 어떤?”
아주머니: “거기가 무슨 도박장 맞지?”
나: “그건 한참 전 일이에요. 제가 아는 형님이 예전에 했었나봐요.”
아주머니: “형님? 친형?”
나: “모르세요? 그 집에 5년 정도 사셨는데?”
아주머니가 미간을 약간 찡그리며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아주머니: “난 모르겠는데? 친형이야?”
나: “아니요. 전에 같이 일하던 형이에요.”
아주머니: “그렇구만.. 동네에서 소문이 안 좋아 그 집은..”
나: “네.. 아무래도 예전에 도박 때문에 외지인들이 들락날락했으니 사람들이 싫어했겠죠. 시끄럽기도 하고.”
아주머니: “그래.. 그래도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하지는 않았지. 동네 사람들이 너그러워서 그런 거야.”
나: “네..”
아주머니: “그런데 요즘에는 조용하더만? 통 다른 얘기가 없어.”
나: “네.. 도박은 그만 둔 지 1년은 됐고요. 몇 달 전에는 형님도 어디로 가 버렸거든요. 빈집에 되는 바람에 저 혼자 남게 됐어요.”
아주머니: “그래? 그랬군..”
아주머니가 한 웅큼 꺼낸 팥을 상 위에 조심스럽게 쏟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아참… 뭐 때문에 왔다고 했지?”
나: “가위에 눌린다고요.”
아주머니: “그래.. 맞다. 형님이 떠난 다음부터?”
나: “네.. 그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아주머니: “내가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데, 이상하게 자네 형님은 본 적도 없고 알지를 못하는구먼..”
나: “네.. 워낙에 밖으로 도는 걸 싫어해서요.”
아주머니는 팥을 하나하나 주워 담으면서 이야기했다.
아주머니: “그래.. 그 형님이 자기를 왜 부른 거야?”
나: “저요?”
아주머니: “그래”
나: “사실 형님이 도박을 하면서 빚을 많이 졌거든요. 자꾸 빚장이들이 찾아오니까 맞기도 하고 그랬나봐요? 그래서 저한테 좀 지켜달라고 부른 거였어요.”
아주머니는 천천히 나를 훑어봤다.
아주머니: “자기는 덩치도 크고… 폭력조직에 있던 건가?”
무당이라는 사람이 뭐 하나 맞추지도 못하는 걸 보고, 나는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사람하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서 실망감을 얼굴에서 감추려 했다.
나: “아니요.. 조직은 아니고, 예전에 유도를 했었어요.”
아주머니: “그렇구먼.. 그 다음에는? 집에 와서는 별 일 없었나?”
나: “형남은 반 년 정도 집에서만 지냈어요. 가끔 빚장이들도 찾아오기는 했는데 별 트러블은 없었고요. 근데 형님이 어느 날 집을 나가서는 아직도 안 들어오고 있어요.”
아주머니: “그래서? 그 다음부터 가위에 눌리는 거야?”
나: “아니요.. 사실은 어떤 베개가 있었어요.”
나는 사실 이 무당 아주머니가 탁월한 면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베개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무당 아주머니와 얘기를 하게 되니까, 내가 답답해서 먼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 “베개?”
나: “네.. 형님이 저를 부르고서는 잘 때마다 베고 자라고 주신 베개가 있었어요.”
아주머니: “그래.”
나: “그래서 그걸 베고 잤었죠. 형님이 집을 나가신 다음에도 계속 베고 잤었고요.”
나: “그런데, 음.. 베개가 더러워지니까, 1년 정도 썼으니까요. 그래서 빨려고 일단 놔두고, 다른 베개를 베고 잤는데, 그 다음부터는 계속 가위에 눌리더라고요.”
아주머니: “베개가 문제라고 생각했으면 그냥 그 베개를 배면 되잖아?”
나: “음.. 그쵸..”
아주머니: “오히려 새 베개를 베니까 가위에 눌리는 건 아니고? 새 베개에 문제가 있다던가?”
나: “아니에요. 베개를 안 베고 자도 계속 가위에 눌렸거든요.”
아주머니: “가위에 눌리면, 귀신이 나오나?”
나: “네.. 처녀귀신 같기도 하고, 머리가 긴 여잔데, 뭐라 웅얼거리기만 하고 무슨 얘긴지는 못 알아듣겠어요.”
아주머니: “그럼 그냥 그 베개를 빨아서 얼른 베고 자면 될 거 아닌가?”
나: “맞아요. 저도 그 생각을 했죠. 그래서 베개를 얼른 빨아야겠다 생각했죠.”
아주머니: “응..”
나: “그래서 베갯잇을 벗겨봤는데요..”
아주머니: “그런데?”
나는 말 없이 가방에서 종이뭉치 한 덩이를 꺼내어 상 위에 올려 놓았다.
아주머니는 그 종이더미를 유심히 쳐다봤다.
스무 몇 장 정도 되는 부적들.
아주머니는 신기하다는 듯이 부적들을 살펴봤다.
아주머니: “이것들이 베갯속에서 나온 거라고?”
나: “네..”
아주머니: “많이도 얺었네.. 뭐.. 보면 알겠지만 부적이구만, 부적이 가위눌리는 걸 막아줬나보구먼..”
나: “그런가요? 정말 그 부적들 때문에 가위에 눌리지 않은 걸까요?”
아주머니: “흠.. 나도 수십년 무당생활을 해 왔지만서도.. 흔한 것들은 아니구먼.”
나: “그래요?”
아주머니: “부적에는 보통 기원하는 걸 적거나 불경 구절을 쓰거나 하지. 한자나 범어로 말이야. 그림을 같이 그리는 경우도 있고.”
나: “네..”
아주머니: “그런데 이 부적들은 문자가 이상하잖아. 문양 같기도 하고, 내용을 통 알 수가 없어. 처음 보는 문자들이야.”
나: “내용을 알 수가 없는 거군요?”
아주머니: “예전에 누가 보여준 적은 있었는데, 음… 중국 소수민족이 아닐까 싶네.. 그 밖에는 모르겠어.”
아주머니: “그리고 잘 보면, 너무 반짝이지 않아? 부적들이 다들 그렇지?”
등불 아래에서 자세히 보니 부적의 글씨가 펄처럼 빛나 보였다.
나: “그러네요.”
아주머니: “보통은 경면주사를 안료로 쓰는데, 이건 좀 다르네, 보통의 국산은 아니야.”
나: “일단 모르시겠다는 거군요. 궁금하긴 한데, 알겠습니다.”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부적들을 도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주머니: “그래.. 신점을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자네 그 집은 음기가 너무 서려있어. 그렇지?”
갑자기 아주머니의 눈빛이 또렷하게 바뀌면서 또랑또랑 말을 시작했다.
나: “그런가요? 집에?”
아주머니: “그래.. 굿을 해서 음기를 소멸시키면 가위에 눌리지 않을 거야. 부적 내용도 신점을 통해서 알 수 있고, 새로 부적을 쓸 수도 있고. 어때?”
나: “그게.. 제가 계속 살 집도 아니고, 형님 집이라서 저는 그렇게는..”
아주머니: “그래? 그래도 그런 음기를 가까이 하면 몸에도 나쁠텐데? 굿 값은 흥정하는 게 아니지만, 간략하게 해서 150만원 어때?”
별 다른 수입이 없는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기도 하고, 내 집도 아닌데 딱히 그 집을 위해서 굿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나: “저는 그냥 가위눌리는 거랑, 부적 내용이 궁금해서 찾아온 거였어요. 나중에 형님 돌아오시면 상의 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아주머니: “그래.. 뭐 별 수 없지. 그래도 건강 조심해야돼.. 가위가 그냥 눌리는 건 아닐 테니까.. 나중에 자기를 따라다닐 수도 있어.”
나는 저주에 가까운 영업멘트를 뒤로한 채, 복채로 몇 만원이 담긴 봉투를 건네 드리고는 점집을 나왔다.
○○○
그 날 밤에도 가위에 눌렸다.
내용도 알 지 못하는 부적을 베개에 넣기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자는 도중에 눈이 떠졌는데, 현관에 방 문 틈으로 강렬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자동차 라이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에게 빚을 받으러 온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도박을 하러 온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현관에서 문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나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손이고 발이고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거운 것이 내 몸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보니 내 위에는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다.
얼굴이 너무 검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우울한 느낌이 흐르는 긴 검은 머리를 드리우고 있었다.
귀신은 뭉개진 발음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들을 나지막이 흘려 말하고 있었다.
미칠 것 같은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씨름같은 힘 싸움을 20분 정도 하고 나니, 귀신은 할 말을 다 했는지 홀연히 사라졌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힘겹게 현관에 나가 봤지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꿈을 꾼 걸까?’
하지만 베개에는 오기로 부적을 넣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계속 가위에 시달려야 했다.
귀신의 말 소리에 익숙해지니, 조금씩 조금씩 알아듣는 단어들이 생겼다.
그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은 ‘텃밭’, ‘가족’이었다.
텃밭에서 가족이 자신을 죽였다는 것인가?
다음 날 아침, 나는 이상한 호기심으로 텃밭을 조사하러 가 보았다.
귀신의 얘기를 들으면 이 이상한 가위 체험도 끝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 집의 텃밭은 해가 들지 않아서 음습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시커먼 흙이 언제나 축축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아무도 돌보지 않고 있기 때문에 키만큼 무성한 잡초들 때문에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삽을 들고 텃밭의 입구부터 까뒤집기 시작했다.
형체가 보이지 않는 이상한 곤충들이 내 인기척을 느끼고 도망다니기 바빴다.
삽을 살짝 넣었는데, 땅 밑에 가득한 지렁이들이 나왔다.
한 쪽에서는 커다란 지네도 나왔다.
낭패감을 느끼며 조금 더 파 보니, 반쯤 썩은 개 시체가 나왔다.
아직 한 평도 파보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것들이 나오다니 정말 기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밭을 다 뒤지면 대체 뭐가 얼마나 나오려는 건지,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토할 것 같은 마음에, 파헤쳐진 땅을 다시 덮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개는 그 형님이 묻어놓은 것이리라.
형님은 한 때 지하실에서 개들을 직접 길러가며 투견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이 잘못 되어 빚쟁이에 쫓기게 된 것이리라.
○○○
나는 그 집에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남은 돈을 털어 시내에 있는 고시원을 잡았다.
사흘 정도는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슬슬 용역 일이라도 있나 알아보러 PC방을 다니기도 했다.
지난 일들에 대한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니, 다시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정말 나를 따라다니는 귀신이 있는 것일까?
힘이랑 깡다구라면 자신있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나는 PC방에서 부적에 대해서 알만한 사람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은퇴한 중국 민속학자가 있어서 나는 얼른 약속을 잡고 찾아갔다.
○○○
처음 대면한 중국 민속학자는 나의 풍채를 보고 조금 주눅이 든 눈빛이었다.
나는 인사를 마치고 가방에서 부적더미를 꺼내 보여주었다.
나: “여기 있습니다.”
학자: “이게 그 부적들이군요. 재밌네요.”
민속학자는 부적들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학자의 흰 머리카락이 마치 붓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자: “중국에는 묘족이 유명하죠. 아마 그 쪽하고 연관이 있는 것 같네요.”
나: “묘족이요?”
학자: “묘족은 고유 문자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작은 단위로 퍼져있는 문자들이 있어요. 이 건 그 중 하나처럼 보이네요.”
나: “그렇군요.”
학자: “기호처럼 보이겠지만, 다 다른 의미가 있어요.. 희한하군요.”
민속학자는 내 눈을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학자: “묘족은 중국의 집시라고도 이야기 되는데.. 오랜 시간 박해를 받아와서 그런지 일종의 저주에 대한 음… 문화랄까.. 그런 게 특화돼 있어요.”
나: “이건 가위를 막아주는 내용이 아닌가요? 저주라니요?”
학자: “음.. 사실 저주에 가까워요 이 부적들은…”
나: “네?”
학자: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걸 보시면..”
학자는 한 장의 부적을 손에 들면서 말을 이었다.
학자: “이건 기력을 빼앗아 지역을 정화하는 내용으로 보이네요.”
나: “네? 제 기력을?”
학자: “맞아요.. 제물을 바치는 거죠.”
나: “황당하네요.. 효력이 있는 건가요? 실제로 말이에요.”
학자: “글쎄요… 여기 글자들은 검은 색인데, 피도 아니고 안료도 아니에요. 독충을 갈고 농축해서 만든 것일지도 몰라요. 묘족은 이렇게 자주 만들거든요. 손에 닿으면 안되겠네요. 혹시라도 잘못될 수 있으니까요. 과학적인 효과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죠. 이걸 보시면..”
민속학자가 다른 부적을 들었다.
학자: “반짝이죠?”
부적에 쓰인 기호들이 빛을 받아 사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학자: “내가 생각하기에는…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이건 비싼 거에요. 반은 납일거고, 반은 방사성 금속일 거에요.”
나: “방사성 금속이요?”
학자: “자연에서는 좀 구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뭐 아시다시피 생명을 파괴하는 물질이죠. 좀 무시무시하죠? 이런 걸 쓰다니.”
나: “그럼 내용은 뭔가요?”
학자: “이건 ‘망각’이에요. 머리맡에 두면 기억을 잊게 되는 거에요. 뇌를 조금씩 파괴하면서.”
나: “그럼 이 중에 가위나 영혼에 관련된 건 없나요?”
학자: “나도 다 아는 게 아니라서, 대충 아는 건 이 정도 선이에요. 가위라.. 사실 망각이라는 게 가위눌림하고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요?”
나: “어떻게 연관이 있는 거죠? 기억을 잊어버리면 가위에 눌리지 않나요?”
학자: “아니요.. 내 생각은 그 반대에요. 가위에는 언제나 눌리는 거고, 이 부적은 그저 가위 눌린 기억을 잊게 만들 뿐이라는 거죠.”
나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아, 멍하니 민속학자를 바라봤다.
조금씩 퍼즐이 맞춰져 가는 것 같았다.
○○○
집으로 가는 길에, 상황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형님은 나의 기력을 사용해서 집에 있는 뭔가를 정화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가위를 눌려왔지만, 형님이 준 배게와 부적 때문에 그저 가위눌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형님이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형님을 찾아서 물어보고싶은 충동에 마음이 앞섰다.
나는 귀신이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생각해 봤다.
귀신은 텃밭을 뒤져서 뭔가 자신을 위해 해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먹고 이장 집에서 제초기를 빌려왔다.
뱀이 나올 것 같은 음침한 풀더미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쥐와 벌레들이 들끓었지만, 모두 시끄러운 제초기를 피해서 달아나 버렸다.
나는 삽을 들고 텃밭의 중앙으로 갔다.
귀신은 그러기를 바랬던 것 같았다.
삽으로 텃밭을 뒤집기 시작했다.
개 시체, 지렁이, 지네가 튀어 나왔다.
나는 괘념치 않고서 마음을 쇳덩이처럼 굳히고 계속해서 땅을 팠다.
그러다가 커다란 단지를 발견했다.
흙이 묻어 검게 보이는 단지를 꺼내어 3초 고민 후에 뚜껑을 우왁스럽게 열었다.
그 안에는 사람의 뼈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 여자였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
아마도 여자의 유골함인 모양이었다.
사진 속의 여자가 나를 자꾸 가위눌리게 했었던 것일까?
이 여자의 가족이 죽인 걸까?
당장 경찰에 신고부터 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 보다 먼저 사실을 알고 싶었다.
○○○
고시원으로 옮기긴 했지만, 유골을 파내어 형님의 집 안에 가져다 놓은 이후에는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형님을 수소문했다.
사실을 알고싶었기 때문이다.
한 달 가까이 형님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고, 나는 새로 잡은 용역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날 밤,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님은 다짜고짜 자살을 할 테니 그리 알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 “왜요? 돈 때문에? 빚쟁이.. 빚쟁이가 형을 찾았소?”
형님: “돈.. 돈이 문제지. 근데 꼭 돈 때문은 아니야.. 내가 언제 돈 걱정 하고 살았냐..”
나: “그럼 뭐요? 아니 그 전에 하나 듣고싶은 게 있으니 대답해주쇼..”
형님: “그래.. 죽기 전에 원 하나 들어주지 그래.. 뭔데?”
나: “텃밭에 묻어놓은 유골함은 뭐요? 누가 죽였소?”
형님: “그걸 어떻게 발견했니… 너가 농사라도 지으려다가 발견한 거냐?”
나: “아니요.. 자꾸 가위에 눌려서.. 가위누른 여자가 텃밭 뭐시기 해서 파 봤소.”
형님: “그래… 뭐 그렇게 됐군. 예전에 내가 투견하다가 빚을 너무 많이 지고 살기 너무 어려워서 자살을 하려고 했었다.”
나: “그런데요?”
형님: “그 때 사귀던 여자였어. 하은이는. 동반자살을 하려고 했었는데, 하은이는 죽고 나만 살았다.”
나: “예?”
형님: “그래서 화장해서 숨겨놓은 거여.. 알겠냐..”
나: “죽을 거면 같이 죽어야지.. 이게 뭔…”
형님: “근데 그 다음 날부터 매일 악몽을 꿨어. 언제나 나타났지. 매일 밤 죽고싶었다.”
나: “…”
형님: “매일 나타나서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내가 무슨 면목으로 하은이 가족을 보고 유골을 돌려줄 수 있겠냐. 살인으로 경찰에 붙잡히는 것도 싫었고.”
그녀가 나타나서 가족이라고 중얼거린 이유를 이제는 알게 되었다.
가족에게 자신의 유골을 돌려달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나: “그래서 그냥 파묻고 모른척한 거요?”
형님: “야.. 내가 많이 힘들다. 너까지 나한테 이러기냐?”
나: “알았어요. 근데 그럼, 그 베개는 뭐요? 베개 속에 부적”
형님: “그것도 알았냐?”
나: “뭐냐고요? 나를 제물로 해서 귀신을 쫓으려고 그런 거요?”
형님: “왜 그 여자가 다시 날 쫓아다니나 했더니만, 니가 그 베개를 안 벼서 그랬구먼.. 이제 알겠다.”
형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
며칠 뒤에 형님의 시신은 강 하류에서 발견 되었다.
형님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유래를 알 수 없는 긴 머리카락들로 꽁꽁 싸매어 있었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