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장이 마스크를 일본에 보냈다는게 네티즌들의 뿔을 돋구었나봅니다.
그러나 우리 대인배가 되자고 주장해봅니다.
네티즌들의 주장은 일본은 적이고 적을 돕는건 이적행위.
일본은 한국을 우습게 보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야 한다. 그러나 과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책이 역사에 통용되는 정책이냐를 논하고자 합니다.
북한에 대한 햇빛정책 >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라 국가의 도덕적 우위를 기반으로한 정책
죄수자에 대한 교화정책 > 역시 먹여주고 재워주고 사회화 훈련해주고 정부의 도덕적 우위
일본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행동은 분명 잘못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무라비 법전식
시스템이 왜 근대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질은 반사회적 개인에
대응하는 집단의 방법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피해자의 피해는 복구되지 않습니다. 가해자를
죽인다고 해서 죽은 피해자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눈에는 눈 논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동등하게 만듭니다. 이 경우 가해자는 반사회적 행위를 멈추지 않습니다. 정부가 범죄자를
먹여주고 재워주는 이유는 집단의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도덕적 우위를 달성하여
범죄자의 심리적 서열싸움에서 우위를 달성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우위라는 당근과
집단의 힘이라는 채찍을 드러냄으로서 범죄자가 심리적으로 사회에 굴복하게 만드는 것이
근대적인 정책방향입니다.
북한에 대한 정책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사일 실험에 대응할 무력이 있음 을 보이는 동시에
지원을 해줌으로써 북한이 심리적으로 지쳐서 형님! 할때까지 밀어붙이는게 햇빛정책입니다.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태도는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마음에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수 있는 부러움과 질투와 자국의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분명 있습니다. 그들에게 당근을
배품으로써 한국을 존경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 존재를 이해해야 합니다.
범죄자가, 북한이, 일본이 사실은 그들의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 줄 몰라서 어그로를 끄는 가련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을 길들일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