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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얼굴에 이 문신을 하겠다고? 그것도 여자 얼굴에?”
조악한 도안 때문에 탐탁치 않던 중에, 그것을 얼굴에 한다니, 나는 기가 차서 내뱉듯이 말했다.
형: “뭐.. 그렇게 하겠다던데?”
어느 손님인지는 몰라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얼굴에 문신을 한 적은 있지만, 여자 얼굴에 손을 대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형이 만들어 놓은 도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간 마음이 불편하지가 않았다.
범어로 된 짧은 글귀처럼 보였는데, 삐뚤빼뚤 마치 ‘글씨를 그린듯’ 조악한 모양이었다.
나: “형 근데 인간적으로 이 도안 좀 그렇지 않아?”
형: “야.. 또 형 까는거냐..”
나: “이거.. 컴퓨터로 폰트 인쇄해서 배껴라도 주지 그랬어..”
형: “나도 할 만큼 했어. 근데 이게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고, 찾다가 지쳐서 만든 거야.. 좀 봐줘라.”
나는 여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더 이상 소모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가끔 생기는 이런 트러블 때문에 형님과의 동업이 깨질까 두려웠다.
손님은 한 시간 정도 지나서 가게에 나타났다.
고동색 H스커트에 흰 블라우스.
식상한 조합이었지만, 단정한 모습 안에서 이상한 매력이 느껴졌다.
흰 얼굴에 날카롭고 커다란 눈이 한 편으로는 애처러워 보였다.
나: “예약하셨던 서연님 맞죠? 일 하다가 오셨나봐요?”
서연: “네 반차 내고 왔어요.”
서연은 품에 안고 있던 서류꾸러미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서류꾸러미를 둘러싼 파일에 흐릿하게 ‘법무법인 율법’이라고 써져 있었다.
나는 준비한 도안을 가지고 와서 서연에게 말했다.
사실 후진 도안을 들이밀기가 부끄러웠다.
나: “도안은 이렇게 만들어 졌고요, 근데 얼굴에 하신다는 게 맞나요?”
서연: “네..”
나: “저도 타투이스트 경력이 오래되고 나름 자부심이 있기는 한데요 음.. 얼굴에다가 타투를 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서연: “몸에 안 좋나요?”
나: “아니요.. 혹시나 잘못 할 수도 있고… 여자 얼굴에 손을 대고 싶지는 않아서요.”
서연: “아.. 네.. 저도 사실 얼굴에 문신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 “네? 그런데 왜 하세요?”
서연: “몸에 문신을 다 해 놔서, 더 이상 문신할 부분이 없거든요.”
서연은 몸을 일으켜서 연분홍 머플러를 풀었다.
머플러로 가려진 목부터 문신은 시작되고 있었다.
서연: “한 번 보시고, 공간이 있는지 봐 주세요.”
서연이 블라우스를 벗었다.
등에는 한자로 된 불경처럼 보이는 문신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성의 없이 고딕체 폰트로 만들어진 커다란 문신을 보자 왠지 구토가 나올 것 같은 역겨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깨와 팔, 배와 가슴을 짧은 범어문자들이 감싸고 있었다.
스커트를 벗고, 불투명한 스타킹을 내리자, 다리에도 범어 문장들이 빼곡히 감싸고 있었다.
10년 넘는 타투이스트의 삶에서 이렇게 많은 문신은 처음 봤다.
그것도 그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모두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니, 한 편으로는 신기했다.
서연: “팬티도 내려 볼까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필요 없겠다고 반사적으로 말렸다.
나: “그래도 얼굴에다가 이런 문신을 하는 건 좀 문제가 있어 보여요.”
서연: “그래요? 상관 없어요.”
나: “꼭 얼굴에다가 하고싶은 게 아니고, 공간이 없어서 그러신 거면, 공간을 만드는 게 어떨까요?”
서연은 이상하다는 듯이 웃었다.
서연: “만들다니요? 살을 좀 찌우면 공간이 생길까요?”
나: “아니요.. 농담이 아니고.. 귓등이나 두피 쪽은 어떨까요?”
서연: “아.. 두피에도 문신이 가능해요?”
나: “네.. 티 안 나게 조금만 밀고 거기다가 해 드리는 게 낫겠어요. 얼굴에다가 하는 건 제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못할 것 같아요.”
서연은 3초 정도 생각을 하더니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범어로 만들어진 조악한 도안은 전혀 상관 없는 듯 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 되어서, 뒷머리를 조금 깎고, 그 위에다가 티 안 나게 문신을 시작했다.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면 자연스럽게 숨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온 몸을 문신으로 휘감은 베테랑이다 보니, 서연은 힘든 문신 과정을 정말 쉽게 참아냈다.
…
나: “이제 다 되셨어요. 바세린이랑 재생크림 면봉으로 잘 바르셔야 해요. 감염 안 되게 손으로 만지지 마시고요.”
서연: “고마워요. 얼굴에 하지 않게 돼서 정말 다행이네요. 고마워요^^”
서연은 시크하게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런 서연의 뒷모습을 보니, 터질 것 같은 그녀의 몸매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
서연을 다시 만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저녁이었다.
가게 일을 마치고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가게 앞에 서연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연: “어때요? 오늘도 시술 많이 하셨어요?”
싱글생글 웃는 서연의 큰 눈망울을 보니, 정말 ‘심쿵이 이런 느낌이구나’싶은 느낌을 받았다.
나: “네.. 요즘은 일감이 별로 없네요.”
서연: “그래요? 바쁘지 않으시면 저녁이라도 같이 하시죠?”
나는 마치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서연의 제의에 응했다.
이자까야에서 사케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근데 실례가 안된다면 여쭈어 볼게요.”
서연: “네.. 오빠.”
오빠라는 말을 듣고, 나는 다시 한 번 심쿵함을 느꼈다.
나는 어떻게 말문을 열면 좋을지 생각을 하다가 생각의 고리가 끊겨서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해버렸다.
나: “왜 문신을 하신 거에요? 그것도 얼굴에다가 하려고 하셨잖아요?”
서연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서연: “타투이스트가 문신을 왜 하는지 물으시다니.. 좀 이상하지 않아요?”
나: “아.. 그건.. 음.. 보통은 멋있으려고 문신을 하잖아요.”
서연: “그런가요?”
나: “네.. 근데 서연씨는…”
서연: “그냥 서연이라고 불러요 오빠”
나: “아.. 네.. 근데 도안이 좀 부족했는데 전혀 상관 없어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몸에 있는 문신들도 도안에는 그다지 신경 쓴 것 같지 않고요..”
서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서연: “맞아요.. 제 얘기를 해 드리죠. 제가 3년 전에 음주운전을 했어요. 운전이라기 보다는 진짜 주차만 하려고 했었는데, 그걸 봐주고 있던 남친을 쳤지 뭐에요.”
나: “네..”
서연: “술기운 때문에 악셀을 심하게 밟았는지, 그만 남친이 죽고 말았어요. 기둥으로 밀어버렸거든요..”
나: “그랬구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서연: “네..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죠.. 그 때문에 징역도 살고.. 제가 직업이 뭔지 아세요? 변호사에요.”
나: “아.. 그러셨구나.. 파일에서 봤어요, 요 옆에 율법 다니시죠?”
서연: “맞아요..”
나: “그럼 변호사 제명되신 건 아니에요? 전과 때문에?”
서연: “아니에요.. 직무 관련 전과가 아니라서. 뭐.. 그래도 불이익은 많이 봤죠. 근데 그보다 더 한 게 있어요.”
나: “더한 거?”
서연: “내가 좀.. 이상해졌어요.. 그냥 무섭고 그래서 몸에 문신을 새긴 거에요. 그냥 마음이 부서질 것 같아요.”
서연은 감정이 고조되어 얼굴이 빨개져 갔다.
서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남자친구한테 너무 미안하고… 그래서 성불을 시켜주고 싶은 게 제 소원이에요. 울산에 선산이 있거든요. 내가 직접 가서 화장을 해 주고 싶어요..”
술 마시고 하는 이상한 소리겠거니 하고 나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서연은 내가 뭔가 맞장구라도 쳐 주길 바라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런 무거운 얘기에 끼어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서연은 눈물 가득한 눈으로 밤 새 술을 마셨고, 우리는 그렇게 친해지게 되었다.
○○○
아침에 일어나니 서연이 커피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연: “잘 잤어? 오늘은 가게 쉬는 거야?”
어느덧 서연은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나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어제의 일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 “응.. 피곤하지 않아? 술도 안 깼을텐데.”
서연: “그 정도 가지고 마셨다고 하다니 약하네.”
서연은 커피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나: “아니.. 어제 잠꼬대를 그렇게 하더라고, 이마에 무릎을 대고 너무 고통스러워 하던데..”
서연은 미간을 찡그리며 불쾌하다듯이 나를 노려봤다.
…
우리는 금방 채비를 하고 밖에 나가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아 메뉴를 결정했는데, 아무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10분 후에 점원이 물을 가지고 왔는데, 서연은 물잔을 받자마자 물컵을 던지며 화를 냈다.
나는 서연에게 눈치를 주며, 점원에게 사과하고 얼른 식당 밖으로 나갔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서연은 상당히 불쾌해 했다.
나를 바라보며 뭐라고 욕이라도 퍼부을 기세였지만,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렇게 횡당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 승용차 한 대가 횡단보도 정지선을 조금 넘어왔다.
사람들은 그 차를 피해서 횡단보도를 건넜지만, 서연은 갑자기 그 차의 범퍼를 발로 차며 성질을 냈다.
말도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 있는 차주에게 나는 또 다시 사과하며 상황을 모면했다.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한 편에서 차를 노려보던 서연의 눈빛에, 마치 고양이 같은 안광이 서려 있었다.
이렇게 난동을 피운 적도 있었지만, 평소의 서연은 정말 지적이고 여성스러웠다.
빛나는 외모까지 더해져서, 나는 한 동안 그녀에게 푹 빠져서 살았다.
○○○
서연은 가끔씩 어떤 약도 먹었는데, 그녀의 말로는 정신과 약이라고 했다.
서연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마음을 먹었다는 듯이 고백했다.
서연: “나 사실은, 해리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어.”
나: “그게 뭐야? 분노조절 같은 거야?”
서연: “아니야.. 인격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아. 가끔 성격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거지..”
나: “그랬구나..”
예전 데이트 때의 난동극이 이제 설명이 되는 듯 했다.
서연: “3년 전에 남자친구가 죽고 나서, 그 때부터 그런 것 같아. 죄의식 때문인지..”
나: “…”
서연: “자꾸 그 애의 말투나 습관이 튀어나오는 것 같아. 그 때마다 너무 괴로워.”
나: “그랬구나..”
나는 서연을 감싸 안으며 달래려고 했지만, 서연은 거부했다.
서연: “그래서 그런 거야. 온 몸의 문신.”
나: “문신?”
서연: “그래.. 그 때부터 나를 공양한다는 생각으로 문신을 새겨 넣었어. 불경으로 감싸고.”
나: “그랬던 거구나.. 그래서 등에 금강경을 썼구나..”
서연: “금강경이 아니야. 고인을 위해서 49재 때 쓰는 불경을 써 넣은 거야.”
보통은 몸에 금강경을 새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금강경이라고 나는 추측했었지만, 약간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나: “그래..”
서연: “문신을 해 놓으면 한 동안은 괜찮아져.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또 해리성장애가 생겨.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더라고.”
나: “응..”
서연: “그래서 그 때마다 좀 다른 걸 몸에다 새겨넣고 있어. 효과가 있을까 싶어서.”
나: “몸에다가 부적을 그린다는 느낌이구나?”
서연: “비슷해.. 가끔 효과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어..”
나는 대답은 평온하게 하고 있었지만, 이제 서연의 존재로부터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던 어느 날, 서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연: “바빠? 일하는 중이야?”
나: “아냐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서연: “응.. 그게.. 이제 정말 안될 것 같아.”
나: “안되다니 뭐가?”
서연: “갑자기 이런 얘기 해서 미안한데, 내 전남친을 정말 화장해주고 싶어.”
나: “아.. 그 얘기구나.”
나는 이런 일에 말려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꺼림직한 것도 있었지만, 허락 없이 남의 시신을 화장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 수 있을까?
서연: “내가 가끔 자다가 이마에 무릎을 붙이고 자는 모습도, 사실 그 남친이 죽었을 때의 상태야.. 이런 모습으로 잠에서 깨면 정말 죽고싶어..”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그 기괴한 모습에 그런 의미가 있었을 줄이야.
서연: “어제도 잠에서 깨 보니 그런 모습을 하고 있더라고. 더 이상 문신할 곳도 없고, 이제는 정말 화장을 해야될 것 같아. 그 친구가 아직도 땅 속에서도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 너무 괴롭고 힘들어.”
나: “그럼 그 친구 부모님에게 가서 정중히 화장을 부탁해 보는 게 어떨까?”
서연: “자식을 죽인 게 난데, 나를 만나서 그렇게 해 줄 것 같아? 내가 음주운전 과실치사로 재판받을 때, 나한테 엄벌해달라고 합의도 안해 준 사람들이야..”
나는 갈등을 느꼈지만, 이성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나: “알았어 그럼, 내가 방법이 있는지 좀 알아볼게.”
서연: “아니야..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서연은 내 대답에 실망한 듯 싶었다.
서연은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 날, 서연의 집을 찾은 나는 깜짝 놀랐다.
서연이 수면제를 과하게 먹고 자살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
나는 그녀를 얼른 병원에 데려갔다.
위 세척과 중화제 투여 후에 그녀는 정신을 되찾았다.
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약의 성분이나 양으로 볼 때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내가 해리성 인격장애에 관한 문의를 했지만, 의사는 내과의라 잘 모르는 데다가, 그런 기록은 못 봤다고 했다.
서연: “너무 괴로웠어.. 뭐 하러 살렸어? 고통속에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나: “그래.. 이럴 거면 차라리 내가 도와줄게.”
서연: “돕다니?”
나: “남친을 화장해서 성불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
서연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온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미소를 보는 것 만으로도, 나의 결정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
서연이 퇴원을 하자마자, 나는 그녀와 울산으로 갔다.
그녀 전남친의 가족묘는 생각보다도 더 후미진 곳에 있었다.
울산역에 내린 뒤에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탔다가 몇 시간이나 산을 탔다.
그러고 나니, 인적이 뜸한 곳에 봉분이 몇 개 만들어져 있었다.
가족묘 치고는 잔디와 봉분이 방치되어 있는 것처럼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해가 지고 노을이 졌다.
이렇게 인적이 드믄 곳이었다면 굳이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서 저녁에 오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연과 나는 준비한 야삽을 펴고 봉분을 파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흙이 굳지 않아서 쉽게 팔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여자의 몸으로는 힘든 것인지, 서연은 파다가 말고 뒤에서 앉아 휴식을 취했다.
열심히 봉분을 파헤쳐 보니 무엇인가가 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관이 아니었고, 생매장 되어 있는 사람들의 시체였다.
놀라서 뒷걸음을 쳤을 때, 나는 허리에 벌에 물린 것 같은 따끔함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서연은 내 척추 쪽에 뭔가 날카로운 것을 찔러 넣어 있었다.
군대에서 본 모르핀 자동주사 같은 모양의 주사기였다.
나: “뭐 하는 거야?”
나는 몸을 돌려 저항하려 했지만, 허리부터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광경을 서연은 피하지도 않고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장딴지 힘이 점점 풀리더니, 나는 그대로 무덤 안 쪽으로 굴러떨어져 버렸다.
서연이 혀를 차며 야삽으로 내가 쓰러진 곳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서연은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며 야삽으로 주변 정리를 했다.
서연: “음주운전 얘기는 거짓말이었어. 미안해 거짓말을 많이 했어. 그래도 남자친구들은 맞아.”
나는 간신히 입을 움직였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서연: “그러길래 식당에서 왜 내 편을 안 들고, 점원 편을 든 거야? 내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는지 알아?”
서연이 파헤친 봉분에서 시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서연: “그래도 나는 너 좋아했어. 네 이름도 내 몸에 새겨서 간직해줄게.”
서연이 뿌리는 흙이 내 뺨을 간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