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해준 이야기입니다.
친구의 시점으로 쓰는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식사가 예정되어있거나 식사중이시라면 절대 이 글을 보지 마세요.
혹시 곤약을 섭취하실 예정이 있다면 더더욱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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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충 3년 정도 전이었나?
딱 이맘때였는데 나는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체 겨울에 뭘 그렇게 많이 처먹은 건지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배를 보며 이건 진짜 역대급인데 하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모든 다이어터의 시작이 그렇듯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며 다이어트에 대한 정보를 얻기로 했다.
어쨌든 운동은 귀찮으니까.
뭔가 내가 모르는 사이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해서 편안하게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고 있었다.
그 중에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곤약.
아니 이건 무슨 사기 아이템이란 말인가.
먹으면 배도 부른데 칼로리도 없다니, 이건 신이 만든 음식임이 분명하다.
이걸로 끼니를 대체한다면 나는 분명 더 더워지기 전에 다이어트에 성공할 것이며 몸이 좋아지고 바다도 가고 응? 막 옷도 벗고 응?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마트로 향했다.
그렇게 곤약을 잔뜩 사왔는데 막상 먹으려니 뭔가 맛이 안 난다.
실곤약 한 봉을 풀어서 질겅질겅 씹어보다가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에 국간장을 꺼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곤약과 국간장을 대충 이것저것 더 섞고 볶아보았다.
이거 제법 맛이 괜찮다.
곤약기 약간 질긴 식감이었지만 평소 라면도 대충 씹어 삼키던 걸 생각하면 뭐 별 큰일 있겠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삼켰다.
의외로 맛있었고 나는 한 봉을 다 먹은 뒤 포만감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알약 하나가 보였다.
변비약.
다이어트에 정신이 나간 이 미친 과거의 미친 나는 미친 그딴걸 처다보면 미친 안됐다 미친.
야채라고는 처먹을 생각을 안하던 나는 만성변비에 시달리고 있었고 매번 화장실에 다리가 저릴때까지 앉아 시간을 낭비하는게 싫었다.
그래서 하루는 약국에 가서 가장 강력한 변비약을 달라고 했고 약사 아저씨가 비장한 표정으로 준 그 약을,
자기 전에 한 알 먹고 자고 일어나면 장기 일부가 딸려나오는 기분으로 시원하게 밀어주던 그 약을,
보물처럼 모시고 살아서는 안 되었다.
그게 눈 닿는 높이에 있어선 안 되었다.
나는 곤약도 먹었는데 이것도 먹으면 더더욱 살이 빠지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 약을 처먹고 나는 좋다며 잠자리에 들었다.
깻다.
배가 이상했다.
배가 아프다는 것을 넘어 무언가가 있었다.
배꼽 아래에 뭔가 볼링공이라도 얹어 놓은 것 같은 갑갑함이 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몸을 일으키려 하자 별안간 언청난 복통이 밀려들어왔고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여러분은 이건 싸야 한다는 느낌을 받은적이 있나.
복통은 다양한 종류가 있고 싸야만 해결되는 복통이 있다.
배가 아파, 라는 말에 무조건 화장실 갈 거냐고 물어보면 그 배가 아니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그 배다.
그 배의 복통이었다.
단지 고통의 크기가 차원이 달랐을 뿐이다.
나는 우선 어떻게든 몸을 뒤집고 엎드려 허리를 최대한 둥글게 말아 중력을 이용해 배를 아래로 최대한 늘렸다.
생존본능이라는 게 이렇게 놀라운 것이다.
아무 생각할 수 없는 그 상황에 최대한의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가.
그걸로 고통을 최대한 줄인 나는 최대한 머리를 회전시켜본다.
이래보여도 나는 멘사 회원이다.
아무튼 팔 다리 중 어느 하나 제대로 편안히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잠시 이대로 쌀 수 있는지를 고민해본다.
그러나 자취방은 작았고 바닥은 나무 재질의 장판이었으며 틈이 많았다.
여기서 싸면 나는 이 순간의 고통을 기약없는 할부로 갚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아무튼 나는 이불을 온 몸으로 허우적대며 탈출했고 화장실로 기어가 변기를 붙잡았다.
그리고 내 모든 힘을 쥐어짜내 변기에 앉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나는 또다른 위험에 마주했다.
이거 힘 주면 파열이다.
파멸 아니고 진짜 파열이다.
여러분은 블랙홀의 한계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가.
블랙홀의 수많은 주름은 물론 그 크기를 엄청나게 증가시켜주지만 그게 무한하지는 않다.
그날 나는 내 블랙홀의 한계를 알았다.
쌀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크기는 나의 작은 블랙홀이 감당할 수 없는 그릇이었다.
싸야만 이 고통이 끝난다는 생각과 이거 싸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의 충돌은 블랙홀을 어중간하게 열게 만들었다.
나는 입으로 으어억...하는 신음만 내며 허공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분명 그 순간에 눈이 풀려있었을 것이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선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내가 내는 게 아닌 것 같은 희미한 성대 긁히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리고 간과한 사실은 하나 더 있었다.
나오는 게 살짝이라도 바깥 세상과 조우한다면 이제 주도권은 블랙홀이 아니라 나오는 것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악마같은 새끼는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했다.
블랙홀은 더이상 배출의 기능으로 열리려는 노력보다 어떻게든 자신의 파열을 막기 위한 디펜스 모드가 되어있었다.
싸면 죽는다. 싸서는 안 된다. 오 하나님. 그것은, 그 악마같은 덩어리 새끼는,
교회라고는 10년 전에 여자 잘못 따라갔다가 사이비 교회에 납치되어 산에 끌려갔다온 게 마지막인 나의 비루한 신앙심마저 우습게 꺼내 짓뭉개버렸다.
하나님 오 제발 저를 살ㄹ
ㅕ주세요. 와 전구가 잠까 꺼졌다 켜진 기분이었다.
분명 잠깐 정신을 잃은 거다.
나는 땀으로 온 몸이 뒤범벅이 된 채로 숨을 헐떡이며 새로운 공포를 직면했다.
내일 회사 출근을 못하면 어떡하지.
결근 사유에 급똥과의 사투가 끝나지 않음이라고 쓰면 되나.
아니 그것보다 진짜 변기 위에서 이대로 쓰러져 구조라도 될 상황이 되면 어떡하지.
나는 싸기로 마음먹고 침착하게 변기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다리를 바들바들 떨며 완전 일어나지는 못한, 어중간한 스쿼트 자세를 취했다.
이대로 앉아만 있으면 주도권을 그 지옥문을 열기 위해 발악하는 씹쌔끼에게 영영 빼앗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력으로 닫히지 않는 블랙홀을 둔근과의 협업으로 잠시 버틸 수 있도록 각도를 찾고,
상황이 조금 안정되자 나는 조용히 수건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곱게 말아 입에 물었고 다른 한장은 양손에 끝을 말아쥐었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변기에 다시 앉았고 눈을 감으며 입에 문 수건에 힘을 주었다.
이후 나는 체감상 그 악마와 기나긴 사투를 벌였다.
입에 문 수건과 차마 막히지 않은 입과의 틈새에선 목이 터져라 외치는 욕설이 뭉개진채로 새어나왔고,
양 손으로 잡은 수건은 목 뒤로 둘러 몸을 둥글게 말기 위해 최대한으로 당기며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이걸 싸야 한다.
여기까지 왔다면 남은 선택지는 없다.
배는 요동쳤고 골반뼈가 벌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블랙홀을 더욱 강력하게 비집고 나왓으며 끝나지 않는 고통과 맛본 적 없는 끔찍함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와중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자력으로 힘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나오는 단계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점점 고통이 극에 달하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다른 차원에 내던져지고 있었다.
제발 어서 끝나길 간절하게 기도했다.
펑.
여러분은 변기에서 어떤 소리까지 들어보았는가.
나는 그 소리가 마치 가히 대포의 그것과 같았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걸 싸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뱃속에 장기라고 하나 빠진 것 같은 공허함과 닫히지 않는 블랙홀이 배꼽 아래로의 감각을 모두 앗아간 기분이었다.
나는 다리가 부들거려 설 수 없었고 결국 한참 후에 벽을 짚으며 일어날 수 있었다.
변기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아니 솔직히 쓰다가 지웠다.
컵누들에 고소 당할 것 같았다.
그냥 비유 없이, 최대한 담백하게 말해본다면,
그낭 저녁에 먹은 모든 것이 먹기 전의 형태 그대로 덩어리져 뭉쳐있었다.
나는 남은 곤약과 변비약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쳐넣었다.
그날 이후 나는 곤약과 변비약을 절대 먹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