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에서의 첫 글이 고민글이 될 줄은 상상도 안해봤는데 말입니다. 여기밖에 말할 곳이 없네요...
어제 엄마가 갑자기 저보고 호프집 어디있냐고 문자를 했어요.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문자보고 시간을 보니 밤 10시반이더라고요. 뭔가 이상해서 왜 그래? 치킨 먹으려고? 그랬더니 울화통이 터져서 너랑 술 한잔 해야겠다 그러시더라고요. 성인이 된지 4년이나 지났지만 한번도 엄마랑 단둘이 술잔을 나눠본적이 없어서 약간 당황했어요.
문 닫는 시간이 늦는 지하철역 근처 치킨집으로 가서 생맥이랑 치킨 시켜놓고 가볍게 오늘 어땠는지 정도 얘기했어요. 어릴 때부터 동갑이신 부모님들 사이에서 꽤나 많은 부부싸움을 보고 자란터라 그냥 이번에도 일상적인 다툼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엄마가 말을 꺼내더라고요. 아빠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깨져버렸다고요. 저 어렸을 때 10년 전에 만났던 여자와 최근에도 연락한 적이 있답니다.
가정형편이 12년 전쯤에 많이 안좋았어요. 아빠가 새로운 사업을 했는데 망해서 그동안 번 돈 다날리고 이사도 여러번 다니고 했지요. 그래서 아빠는 회사택시기사로 엄마는 파출부 일을 시작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몰랐는데 당시에 택시는 지금처럼 콜 어플이 있는 게 아니어서 그랬는지 술집 사장들이 택시를 연결해줬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도 처음에는 아빠가 자꾸 나가는데 남자 사장이겠거니 생각하셨다고. 그런데 그게 아니고 술집 여자 마담이 아빠랑 연락하고 하는 걸 알고는 엄청나게 화를 내셨대요. 자세한 얘기는 못들었지만 결국 아빠가 그 여자한테 전화해서 '이제 안 만난다고' 그랬다네요.
그러고나서 점차 집 사정이 나아졌습니다. 부모님은 야간에 영업하는 식당을 하셨기 때문에 수입이 확실히 늘었습니다. 식당일이 고되었기 때문에 건강을 많이 해친터라 동생이 성인이 되자 부모님은 가게를 접으셨어요. 가게를 접고 대신 개인택시 일을 아빠가 시작하셨죠. 엄마는 집에서 쉬고요. 저는 제일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도 일하니까 엄마아빠도 이제 바쁘지 않게 사시겠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최근에 엄마가 십년전 그여자와 아빠가 만난 걸 안거예요. 그 여자로부터 예전처럼 콜 연락이 몇번 온걸 문자로 봤고, 위치추적 어플을 보니 그여자가 하는 술집에 있었기도 했더랍니다. 아빠는 자기 친한 사람도 그술집을 알아서 우연이 신기해 한번 갔더랍니다. 무슨.... 가지를 말았어야죠ㅋㅋㅋ어이가 없어서 치킨 먹다 뱉었습니다.
그리고 더 웃긴건 아빠 친구중에 오래된 친구가 있어요. 맨날 쉬는날마다 아빠가 보러가는 친한 동생이죠. 그 아저씨가 보낸 카톡이 정말.. '형님 가신 후에 주무세요. 예쁘시네요' 엄마가 사진 찍어놨길래 카톡 날짜를 보니 작년 2월이더라고요. 가게 접기도 전이요. 대체 언제부터 연락을 했던 걸까요. 근데 엄마가 제일 분해하는 건 자신이 웃음거리가 됐다는 사실이에요. 아빠 친한 동생은 저도 알고 엄마도 알아요. 아저씨가 하는 식당가서 밥도 여러번 먹었어요. 엄마랑 나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하니 기가 막히더라고요ㅎㅎㅎ
엄마가 불안해해서 아빠 폰에 위치 추적 어플을 몰래 깔았어요. 근데 이상한 위치에 가있는걸 제가 한번 엄마가 한번 발견했어요. 거긴 전혀 갈일이 없는 옆옆옆옆동네라서 엄마는 계속 의심하더라고요. 아빠는 친구 집이다 그러고.
저는 모르겠네요. 엄마가 전부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건지 아빠가 거짓말하는건지. 이미 전적이 있기에 의심받는 사람이 큰소리칠 게 못되는데도 아빠는 '그런식으로 자신을 억누르면 잘못 나가는 수가 있다' 그러네요.
엄마한테 이혼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나라면 한다고. 마음이 떠나간 게 느껴지고 상처받는 건 엄마뿐인데 생각해보라고요. 저번에 엄마가 싸우고 병원에 실려가다시피해서 걱정이 되더라고요.
해결방법이 전혀 안보여요. 엄마는 어플만 보면서 매일마음 졸일 거고 아빠가 하는 거짓말에 신경을 곤두세울거고 아빠는 일하고 술먹고 사람만나고 또 몰래 여자 만나고 하겠죠. 이미 아빠는 여자를 만난 사람이고 주변에 친구들도 다 아무렇지않게 세컨드 얘기하는 사람들인데 뭐가 달라질까요.
엄마는 아빠랑 절대 못 헤어진데요. 생각도 안한대요. 그냥 답답해서 나밖에 없으니까, 나한테 얘기하는거라고. 우리딸 이제 성인이라니까.
근데 엄마가 점점 신경질 적이 되어가요... 기분 좋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고 아빠랑 그제 산에 갔다왔는데 바위에서 아빠가 자기를 떨어뜨려 해칠 것 같더래요....
저는 아빠랑 엄마 둘 중에 고르라면 단연 엄마예요. 고민할 생각도 없어요. 아빠가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자식에게 헌신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아빠를 보면 전혀 호감이 안생겨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초등학교 때 아빠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라고 교회에 가서 기도했던 기억이 요즘 들어 다시 나네요. 그때는 정말 집에 부부싸움 끝에 불지르려던 아빠가 무척이나 미웠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