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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적는 이번 파업의 비관적 전망
게시물ID : society_60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M
추천 : 4
조회수 : 111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20/08/30 03: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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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앞서서... 의사 주장이 맞니 정부 정책이 맞니 따지는 글은 여기저기 많으니깐 이 글에서는 그런 쪽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지방 3차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응급의학과 4년차 전공의입니다. 사실 이번 전공의 파업을 시작할 때부터 전 파업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의사들이 파업을 하는 건 기득권 층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날 수가 없고 이기든 지든 결국에는 손가락질만 받게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이렇게 대규모로 파업을 하기에는 의협에서 제시한 명분도 약하다고 생각했구요. 하지만 결국에는 파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파업의 심각성을 알기 위해서는 수련 병원 내에서 인턴과 전공의의 역할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의료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인턴이나 전공의(레지던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병원 안에서 왜 중요한지 잘 모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군대 안에서 이병부터 병장까지의 사병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환자의 진료에 대한 큰 결정을 내리는 것은 교수님들 (군대의 장교) 이지만 결정된 사항을 실제로 수행하거나 교수님들이 잘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인턴, 전공의 (사병) 입니다. 그 외에도 법적으로는 의사가 해야하지만 교수님들이 하기에는 귀찮고 짜잘한 일들부터 환자 사진정리, 차트정리 등등 많죠. 

교수님이 수술한 환자가 통증이 심해서 진통제를 달라고 한다? 전공의가 오더 냅니다.

입원해서 CT, MRI 찍어야하는데 환자한테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아야된다? 전공의가 동의서 받습니다.

다음날 내시경 해야해서 환자한테 관장을 해야한다? 인턴이 관장 합니다.

소변줄을 빼고 났더니 새벽에 소변이 안나와서 환자가 불편해한다? 인턴이 넬라톤으로 오줌 빼줍니다.

이처럼 대형 병원이 잘 굴러가는데에는 인턴과 전공의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싼값에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주 88시간까지 굴릴수 있으니 인턴과 전공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그렇지만 병원에서 인턴과 전공의를 무한정 많이 뽑지 못하는 이유는 각 과의 TO 는 그 과의 학회에서 병원 별로 정해주기 때문입니다.) 인턴과 전공의가 하는 업무를 전문의에게 시키려면 돈은 몇 배로 많이 주면서 일도 그만큼 못시키기 때문에 숫자도 몇 배로 더 뽑아야 하죠. 그런데 지금 병원에 있어 필수적인 인턴과 전공의가 모두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의사들의 파업을 보면 처음에 이슈가 되던 최대집 회장은 묻혀버리고 대전협이 선두에 나서서 정부와 투쟁하고 전공의들이 앞장서는 모양새입니다. 그리고 실제 제 주변의 전공의와 전국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의 말을 들어보면 앞으로도 더 악화될 수도 있을 것 같더군요. 이렇게 사태가 악화된데에는 몇가지 계기가 있다고 봅니다.



처음 파업 시작 후 8월 19일에 의협대표, 대전협대표, 복지부가 간담회를 했습니다. 그날 복지부 대변인으로 나온 분이 외과 4년차인 대전협 대표에게 자기는 2시간 밖에 못자서 피곤하다, 전공의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참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배우는 입장의 전공의들이 이런식으로 파업을 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전공의들이 지금 코로나가 얼마나 심각하고 일하는 것이 힘든지 잘 몰라서 이러는 것 같다, 이런식의 훈계 말투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 분은 대전협 대표는 그냥 의협 대표 옆에 따라나온 들러리 정도로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하신 것 같은데 사실 전공의 파업은 대전협에서 주도하고 있던 것이었죠. 


제가 보기엔 일단 거기서 대전협 대표와 전국의 전공의들의 파업 의사가 크게 올라갔습니다. 저도 복지부 대변인이 저런 꼰대소리를 하니 짜증이 났구요. 대전협 대표는 외과 전공의라서 레벨D 방호복 위에 수술복 입고 수술도 하는 상황이고 다른 전공의들도 코로나로 인해 고생하는 상황에서, 복지부 대변인이, 의사 출신이라던데 알고보니 인턴도 안하고 바로 정부일만 하면서 병원 실무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저런 말은 하니 당연히 협상은 쫑나고 전공의들은 전면 파업 유지로 가게되죠.


전공의들의 파업이 본격화되고 장기화 될 조짐이 보이면서 인턴과 전공의들의 업무를 매우던 교수님들, 그리고 전임의(펠로우)들도 일에 치여서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랬고 실제로 전공의들 사이에서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부분 복귀나 전면 복귀를 하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옵니다. 투표 결과도 전면 파업 지속과 부분 복귀가 3:1 이 될 정도로 파업 의사가 약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구요. 그 때 정부에서 전공의 복귀 행정명령을 내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행정명령에 불복할 시 고발하겠다고 했죠. 이때 전공의 단톡방은 다시 한번 뒤집어집니다. 그리고 다들 사직서와 수련포기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게 됩니다. 정부에서 우리에게 강제 복귀 명령을 내린다면 우리는 병원을 때려치운다! 하는거죠.


그런데 28일... 복지부에 전공의 10명을 실제로 고발합니다. 고발당한 전공의는 응급의학과, 내과, 외과, 소아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등 입니다. 이거 기사 났을 때 전공의들 분위기는 복지부가 정말 끝장을 보자는 거구나 였습니다. 고발당한 과는 전부 환자 생명을 다루는 과들인데 수련받는다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파업하다가 행정명령 어겨서 고발을 당하다니... 행정명령 거부한 전공의가 한둘이 아닌데 저 10명은 제비뽑기로 고발했나? 그럴거면 나도 고발해라! 그 전까지 아직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던 전공의들도 이제 다 동참하기 시작합니다. 이건 파업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우리가 물러나면 저 고발당한 10명의 전공의만 피해를 보고 끝나는 상황이 된거죠. 파업에 부정적이었고 복귀 의사가 있었던 저같은 전공의들도 이제 복귀는 커녕 전부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만약 저 10명의 전공의들이 정말 고발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다면 아마 전국에 있는 전공의들의 복귀는 진짜로 물건너 갈겁니다.



고발 기사의 댓글이나 여기 게시판의 글들을 보면 전공의들의 사직서는 뻥카이고 의사들은 다들 제 몸 챙기기 바쁘기 때문에 진짜 고발이 시작되면 쫄아서 복귀를 할거다 라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근데 개원의랑 전공의는 달라요. 이번 의사 파업에서 개원의들의 참여율이 10% 정도라는 기사가 있었죠. 전공의 파업률은 기사에는 70% 정도 된다고 하는데 휴가자랑 원래 오프인 사람을 빼고 계산한거고 제 주변을 봐도 그렇고 실제 파업 참여율은 90% 가 넘지 않을까 합니다. 개원한 의사들은 자영업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파업하면 그만큼 자기가 손해를 보는거고 나이도 있어서 먹여살려야 하는 식구들도 있습니다. 파업을 시작하기도, 오래끌기도 쉽지않아요. 그런데 전공의들은 미혼인 경우도 많고 크게 돈 들어갈 곳도 없어서 몇 달 돈 못받아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뭐 필요하면 마통을 써도 되고요. 

사직서 내는 문제도 비슷한데 지금 사직서 낸 전공의들 중에는 병원이 진짜로 내 사직서를 수리하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거고 나 젊으니깐 진짜 짤라보던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근데 병원의 입장에서 보면 인턴, 전공의를 못짜릅니다. 인턴, 전공의가 병원에서 필요한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는데 한두명 나가는거면 모르겠지만 전부 다 나가버린다고 하면 지금도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병원 입장에서는 정말 망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직서 낸 전공의들도 이 사실을 다 알죠. 즉 병원이 어차피 우리 못짜르는거 알고 있는데 혹시 진짜 짜르려면 짜르던가, 하는게 우리 속마음이라는 겁니다.

사직서 대부분 제출했다는거 구라고 사실 쫄리는 사람들은 안내고 냈다하는거 아니냐는 분들이 있을수도 있는데 전공의 사직서는 개인적으로 제출하지 않습니다. 병원 전공의 대표나 각 과의 대표가 다른 전공의들거 다 모아서 한번에 전달합니다. 그리고 이게 더 큰 이유인데, 전공의끼리는 4년 동안 같은 당직실 쓰면서 거의 매일 붙어지내는 사이입니다. 사이가 좋지않은 의국이 아니고서야 가족보다 더 자주보는 친한 사람들이고 다른 병원 다른 과의 이름 모를 전공의라고 해도 다 같은 전공의기 때문에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근데 복지부에 고발당한 전공의가 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너희만 피해를 보게 할 수 없으니 나도 사직서 내고 행정명령 거부한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는거죠.



정부와 대전협이 대화하는 걸 보면 서로 협상이 아니라 협박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대화를 하려고 모였지만 어그러졌고 이후 의협은 정부와 어느정도 타협을 보려고 했지만 대전협에서 정부 정책 전면철회 아니면 파업 지속을 외쳤죠. 그러다가 정부에서는 전공의 행정명령과 고발이라는 수를 던졌고 이제 대전협은 고발당한 전공의의 구제와 정책에 관한 협상 두가지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복지부와 전공의들 사이에는 깊은 감정의 골이 생겼구요.


파업이 길어지면 결국 피해는 환자들이 보게 될건데 그 중에서도 인턴과 전공의가 일하는 큰 병원들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중증 환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겁니다. 이미 이송 지연으로 2명이 사망했죠. 사태가 이렇게까지 오기 전에 막을 수 있었던 기회가 여러차례 있었는데 정부와 의협&대전협의 미숙한 협상으로 이젠 일이 커졌습니다.


파업이 끝나려면 정부 입장에서는 처음 내놓았던 정책에서 부분적으로라도 시행하는게 있어야 할거고 의사들 입장에서도 고발당한 10명의 전공의 구제를 포함해서 뭔가 얻는게 있어야 할겁니다. 근데 지금 봤을 땐 쉽지않아 보이네요...




사실 이 글은 정부나 대전협이 하는 행동들이 너무 감정적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쓴 겁니다. 두서없이 머리속에 떠오르는대로 쓴 거라 정리가 잘 안되어있을 수도 있겠네요. 

댓글에 제가 쓴 내용에서 잘못된 내용이나 반박할 내용이 있으시면 적어주세요. 질문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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