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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주의]학교
게시물ID :
panic_1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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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계피가좋아
★
추천 :
3
조회수 :
255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5/05 19:47:09
그런데, 복도 밖에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리는거야. ‘저기요’ 남자는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궁금한 게 앞서는 바람에 복도쪽 창문을 열었어. 그리곤 왼쪽을 쳐다봤지. 아무도 없었어. 그때 갑자기 반대쪽에서 아까보다 또렷하게 소리가 들리는거야. ‘저기요..’ 그상태에서 겁에 질린 남자는 고개를 왼쪽에서부터 천천히,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리기 시작했지. 시선이 이제 막 바닥을 향하던 찰나. 뒤통수에서 뭔가 감촉이 느껴지더니 위에서부터 시꺼먼 것들이 기분나쁘게 내려오더래. 왈칵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으면서 남자는 몇초간 그상태로 굳어 있었고 그 시꺼먼 것들은 남자의 머리카락과 기분나쁜 마찰음을 내면서 얼마동안 내려왔어. 그리고 남자는 알 수 있었지. 그 검은 게 사람의 머리카락이란 걸. 남자는 눈을 꼭 감았어.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스멀스멀한 느낌이 들었지. 그렇게 몇 분을 있었나? 눈을 감은 채 살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머리에서 이질스런 감촉도 안느껴지고, 왠지 진정이 되는거 같았지. 이제 갔나? 그래서. 남자는. 눈을. 떴어. 그러니까....눈앞에....시뻘건.... -으왁! -꺅! -아 썅! 놀랬잖아, 아.... -헤헤, 재미있지. -넌 여자가 되가지고 어떻게..그런 얘기 하면서 너가 스스로 좀 무섭다고 안 느끼냐? 10월 11일 토요일 저녁 11시. 지옥같던 중간고사가 끝나고. 고등학교 3학년인 소연, 은혜, 승훈, 동준은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 겸, 누가 먼저 제안했는진 모르지만 모여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남들은 이 시간에 모두 수능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오히려 그런 남들을 비웃으며 하루쯤 휴식일을 갖는 데에 마음을 모은 넷은 어릴 때부터 항상 그렇게 함께 해왔던 소꿉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이시대 고등학생의 필수품인 위조민증이란 걸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술집을 가긴 좀 힘들었다. 당연히 학교 근처 동네는 술집 주인이고, 편의점 알바고, 노래방이고 당구장이고 이 아이들이 학생인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 시내로 나가 봤지만. -저기 신분증좀 볼까? -음..이거 학생들꺼 맞아? 그럼 잠깐 조회 한번 해봐도 되지? 결국 한시간을 넘게 이곳저곳 돌아다녀 봤지만 마땅히 들어갈 술집을 찾지 못했고, 자연스레 그 넷은 어찌어찌 동네 편의점에서 소주와 맥주, 안주거리와 과자들을 사서 학교로 들어갔다. -자, 승훈아 인제 니차례야. 한잔 받고 무서운 얘기 하나 해. 은혜는 종이컵에 소주를 반쯤 따르고 나머지를 맥주로 채워 꽤나 도수 높은 ‘소맥‘을 만들어서 승훈에게 권했다. -술, 술 술 술이들어간다 쭉 쭉 쭉쭉~ 소연, 은혜, 동준의 필하모닉 합창단 부럽지 않은 멜로디는 약간의 취기가 더해져 교실을 울렸고, 막 승훈이 컵을 입에 대고 들이키려는 찰나. -야야야야야야, 잠시만 쉿. 동준이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잽싸게 그들을 밝히던 후레쉬를 껐다. 저벅. 저벅. 저벅. -야 수구려. 왔다. 잠시 후, 복도에서 울리는 발소리는 그들이 있는 교실을 그다지 밝지 않은 한줄기의 빛으로 대강 훑으며 지나갔다. -후, 야 이거 스릴있는데? -있어봐, 보고 올게. 승훈은 후레쉬를 들고 슬쩍 교실 앞문을 열고 나가, 저벅거리는 구두소리를 따라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록 승훈이 오지 않자, 셋은 슬슬 걱정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된 동준이 승훈을 찾아보려 교실 구석탱이에서 일어나는 순간, 교실 문이 끼긱 거리는 기분 나쁜 금속성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털썩. 희미한 달빛으로 식별해 보건데, 방금 열린 교실 문앞에 서있던 뭔가가 교실 안으로 내팽개쳐졌고. 문앞엔 또 누군가 서있었다. 그리고 교실을 밝히는 불빛. 모두가 긴장하고 있던 순간, -선물이다! 승훈의 목소리였다. -야이씨! 너 왜이렇게 늦은거야! 걱정했잖아. 어처구니없어하는 은혜. 한숨을 내쉬는 동준. 육두문자부터 나오는 소연. -아니, 내가 막 수위를 몰래 따라갔다? 그래서 수위가 본관 정문이랑 후문 잠그고 나가는 거 까지 확인하고 올라오는 데, 생각해 보니까 술은 너무 많은데 안주가 모자랄 거 같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해서 매점엘 갔더니 창고 문이 열려있는 거야! 땡잡았다 싶어서 거기 있는 걸 좀 담아왔지. 흐흐흐흐. 잘했지? 말을 마친 승훈은 바닥에 내팽개쳐진 마대자루를 질질 끌고 ‘술판’ 앞으로 갔다. -자, 그럼 이제 우릴 방해할 사람은 없는거네? 뭐..그건 그렇고. 하던 건 마저 해야지. 소연이 한손으로 승훈에게 헤드락을 걸며 아까 내려놨던 술잔을 가리켰다. 허탈한 표정으로 소연을 흘깃 바라보고는 술잔을 비운 승훈. 성대에 스크래치를 한번 넣고는 입가를 한번 스윽 닦고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형한테 들은 얘긴데 말야, 어떤 여고에.... 승훈의 실감나는 이야기가 절정에 가까워 지자, 은혜가 슬며시 동준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 모습을 힐끗 의식하는 승훈. 동준은 살짝 당황한듯 은혜를 쳐다보지만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승훈을 쳐다보며 얘기에 몰입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곤 다시 시선을 승훈에게로 향했다. ‘치, 괜히 이상한 생각 했네.’ 승훈이 하는 얘기가 전에 우연히 한번 들었던 거라 별 흥미가 없던 동준은 피곤한지 눈을 슬며시 감았다. 은혜가 그의 손을 쥐는 세기만 가지고 이야기의 진행을 대강 머릿속에 그리던 그는 이윽고 그녀가 손을 놓자 이야기가 끝난 걸 알아차리고 눈을 떴다. 괜찮은 감촉이었다. 이렇게 어느정도 술이 들어간 상태에서 손을 감싸쥐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은. 시간은 벌써 1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무서운 이야기의 소재도 다 떨어진 그들은 술만 연신 마시고 있었다. -야, 소연아 너 술 좀 마신다? 이거 의왼데? -응? 아직 끄떡없어! 야 이승훈! 병신 일어나 술받아! -흐으으으. 머리아파.. 신돈주우웅 개애애식기.. 소주 8병. 맥주 피쳐 2병. 드디어 사온 술이 동이 났고, 그렇게 잘 마시는 편이 아닌 승훈은 그저 분위기에 취해 혼자 미친듯 달리다 결국 한계가 온 듯 했다. 그에 비해 적당히 마신 동준과 소연, 은혜는 기분좋을 정도로 취기가 올라 있었다. -저..저기 소연아, 나랑 화장실좀 갔다 올래? 한참동안 아무말 없던 은혜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화장실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그럴까? 응, 그럼.. 동준아, 우리 화장실 갔다올게. -너희 둘이? 풉. 안무섭겠냐? 귀신나올지도 모르는데. 아까 그 귀신들. -아 씨, 왜 겁주고 그러냐. -소연이 넌 그냥 여기서 승훈이 보고 있어. 내가 따라 갔다 올게. -너, 혹시 은혜한테 이상한 짓 할려는 건 아니지? -미쳤냐 내가. 가자 서은혜. 이상한 짓이라. 동준은 속으로 코웃음을 한번 쳤다. 곧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 한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있는 은혜의 손을 잡고 여자화장실로 향했다. 둘의 발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렸다. 복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초승달은 희미하게 그들의 앞을 비췄고, 그 빛을 따라 얼마간 걸어서 화장실 앞에 도착했다. 내내 둘은 말이 없었다. -응? 뭐야, 수위가 나가면서 전원 끊고 나갔나보다. 불이 안들어오네. 계속 후레쉬의 빛에 의존해 놀던 그들은 학교에 전기가 끊긴 것도 모르고 있던 것이다. 결국 은혜는 컴컴한 화장실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동준은 최대한 은혜를 배려하기 위해, 그리고 무섭지 않게 해주기 위해 화장실 앞 복도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Even though it seems I have everything, I don't wanna be a lonely fool~ 노래가 끝나갈 무렵, 은혜가 손을 씻고 나와선 동준의 옆에 앉았다. -아휴,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무슨 화장실이 이렇게 깜깜하냐.. -야! 물 털지마 차가워! -치, 언제부터 깔끔떨었데 지가. -야 내가.. 흠, 그건 그렇고 너 아까 내가 불렀던 노래 뭔지 아냐? -그거 아냐? 너 맨날 노래방 가면 부르는거. -응. 근데 있잖아, 이 노래. 가사가 진짜 좋아. 대충 우리말로 해석하면, 세상 어떤 것을 가지더라도 니가 없는 난 완벽하지 못해 외롭다. 이런 뜻이거든. -이열. 신동준. 너랑 좀 안어울리는데? 헤헤. -그리구 이게 내가 지금 딱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야. -응? 무슨 소리래. 술을 코로 드셨나. -내가 너 좋아한다고 멍청아. 대뜸, 동준은 그렇게 말해버렸다. 약간은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고백 비스무리한 동준의 말에, 은혜는 당황한 눈으로 동준을 쳐다봤다. 마주봤다. 얼마간 그렇게 어색한 눈빛교환을 하던 중, 은혜가 슬며시 미소지었다. 그리고 동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알고 있었어. 동준은 고맙다고 짤막하게 한마디 하곤 은혜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누군가가 지나갔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쨌든 상황이 상황인 만큼 둘은 다시 그들이 있던 교실로 돌아왔고, 거기서 혼자 있는 소연을 보았다. -어? 승훈이는? -몰라, 너네랑 안마주쳤냐? 아까전에 화장실 간다고 하고 나갔는데. -못봤는데? 윗층으로 갔나. 절대 서로에게 신경쓰느라 못봤을 수도 있다는 말은 하지 않고, 셋은 승훈을 기다리며 남은 안주거리들을 집어먹었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록 승훈이 오지 않자, 셋은 또 다시 승훈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맨 정신도 아닌 애가, 화장실 간다고 한 지는 30분 가까이 됬다는데 오질 않고 있으니. 결국 셋은 자리를 정리하고 승훈을 찾기 위해 교실을 나섰다. 처음 목적지는 그들이 술을 마셨던 제일 꼭대기 층인 5층의 남자화장실. -이승훈! 안에 있냐? 동준이 밖에서 한번 물어봤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고, 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여기저기 확인을 해보더니 나왔다. -없는데? 어디로 갔지? -일단 내려가 보자. 셋은 그렇게 5층에서 내려가 4층 화장실로 갔다. 역시나 4층 화장실에도 승훈은 없었고 이제 3층으로 내려가려던 찰나, 소연이 말했다. -저기, 저 끝 교실. 방금 누가 문을 열고 들어갔어. 지금 시간에 그 셋 외에 학교에 있을 만한 사람이라곤 승훈 밖에 없으므로, 그 누군가가 분명히 승훈일 거라고 생각한 그들은 소연이 가리킨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그 교실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끼이익. -누구세요? 의외로, 안에서 잠오는 듯 한 어떤 남학생이 먼저 누구냐고 물어왔다. 어렴풋이 사람 형체가 보이는 곳으로 후레쉬를 비춰 보니 2학년 후배가 눈이 부신 듯 손으로 눈을 가리며 앉아 있었다. -너, 왜 지금 여깄냐? -아.. 그게 저도 지금 당황스러워요. 시험 끝나고 채점하고 오답풀이 막 하다가 잠깐 잠들었는데 지금이네요. -그래? 그럼 방금은 어디 갔다 온거야? -방금요? 말하기 부끄러운데.. 4층 화장실엘 갔더니 휴지가 없어서 3층에 교사용 화장실 갔다왔어요. 분명 그아이는 3층을 갔다 왔다고 했다. 그런데 승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 화장실에서 혹시 3학년 선배 한명 못봤어? 완전 술이 떡된 애. -흠. 그 선배인지는 모르겠고. 제가 화장실에 있을 때 누가 복도를 지나가는 소리가 나긴 했는데, 선배님들 아니었어요? -우린 지금 5층에서 내려오는 길이야. -어라, 그러고 보니까 이상하네. 분명 혼자였는데 그사람은. 그리고 후문계단으로 해서 올라가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전 무섭기도 하고 해서 동문계단으로 해서 올라왔구요. 이 건물에는 출입문이 동문, 정문, 후문으로 나있고 문에 가까이 딸린 계단이 하나씩, 총 3군데가 있다. 동준과 소연, 은혜는 중앙계단을 통해 내려왔다. 그리고, 이 후배의 말에 따르면 승훈은 후문계단을 통해 5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 된다. -동준아, 그럼 승훈이가 다시 올라 갔겠지? 우리도 올라가 보자. -응. 이새낀 도대체 화장실을 어디까지 갔다 온 거야. 어이 후배님 제보 고마워. 그럼 잘 자. -아, 저기 선배님, 저 아까 저녁부터 지금까지 자서 잠도 안오는데, 저도 같이 데려가 주시면 안되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동준. 은혜는 그런 동준을 바라보더니 그렇게 하자는 눈빛을 보냈다. -술은 안남았지만 괜찮다면. . -뭐? 니가 최원학이였냐? 후배가 자기 이름을 입밖에 꺼내자 마자 동준은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최원학이라면 종종 학교 정문에 붙는 징계학생 명단에 빠지지 않는 녀석 아닌가.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녀석이 시험이 끝나고 오답풀이따위를 하러 학교에 남아 있었다니. 분명 이것도 선생이 시킨 거겠지. -야, 원학아. 근데 너 진짜 잘생겼다! 여자친구는 있어? -아뇨, 없는데요. 크큭. -어쭈, 소연이 본능 나온다? -시끄러 서은혜이년아. 응, 그래 원학아. 폰번호좀 알려줄래? 누나가 나중에 맛있는거 한번 사줄게. 뭐 다른 맘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니니깐 걱정말구! 후후. 원학과 동준, 소연, 은혜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5층까지 올라왔고 드디어 그들이 처음 술을 마셨던 교실 앞에 다다랐다. 교실 저 구석에 누군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고, 넷은 드디어 찾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승훈아! 문을 여는 순간, 이제까지 있던 알콜 냄새는 온데간데 없고, 역겨운 피비린내가 그들의 코를 찔렀다. -이..건..무슨.. 제발 그것이 승훈이 아니었다면. 승훈으로 추정되는 그‘것’은 담요에 몸이 친친 감겨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다. 동준은 급히 은혜의 눈을 가렸고, 원학은 소연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안을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출입문 바로 앞 책상에는 승훈의 핸드폰이 놓여져 있었고, 피가 얼룩덜룩 묻은 액정엔 ‘도망칠 생각 마라. 너흰 갇혔다. 다 죽는다.’ 라는 작성중 메시지가 떠 있었다. 숨 돌릴 틈도 없었다. 동준이 문을 막고, 셋에게 이 상황을 정리해주려 뒤로 도는 순간 복도 저 끝에서 무언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하, 씨발. 이거 뭐야. 일단 이쪽으로 와. 빨리! 그는 옆 교실로 들어가 소연과 은혜, 원학과 함께 수업용 대형 TV 뒤로 숨죽여 숨었다. 지이이익. 저벅. 무언가 딱딱한 것을 바닥에 긁는 소리와 함께, 복도의 발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지이이익. 저벅. 그들이 있는 교실 바로 앞까지 왔다. 발소리가 멈췄다. 끼이이이.. 문이 열렸다. 소연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 봤다. 그리고 그곳엔 검은 모자와 뿔테안경, 마스크, 검은 재킷에 검은 바지를 입은 수위가 서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수위의 복장이 어찌나 우중충하게 보이던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소연은 TV 뒤에서 나와 수위에게 다가갔다. 은혜와 원학은 아직 숨죽여 있었고, 동준은 혹시라도 일어날 상황에 대비해 몸을 드러내진 않고 조용히 소연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아저씨, 지금 저기 옆 교실에.. 수위 바로 앞까지 간 그녀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던 동준은 고개를 숨기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위든 소연이든 둘중 누군가라도 말을 잇길 기다렸다. -저.. 저기. 얘들아. 몇 초간 침묵을 지키던 소연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동준 일행을 부르는 듯 했다. 잘 풀린 건가. 마음이 약간 놓인 동준은 TV 뒤에서 나왔고, 수위를 등지고 울먹거리며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동준이 뭔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소연이 갑자기 소리쳤다. -도망쳐!! 이 사람.. 말을 차마 끝내기도 전에 소연의 배를 무언가가 꿰뚫고 튀어나왔다. 그의 외침에 숨어있던 은혜와 원학이 밖으로 나왔고, 그 참혹한 광경을 보며 잠시 말을 잃었다. 무너져 내린 소연의 뒤에서 검은 마스크를 쓴 수위가 1미터쯤 되는 파이프를 질질 끌며 셋에게 성큼성큼 다 가왔다. 저새끼가 왜 저러는 진 모르지만, 이대로 있다간 저놈에게 전부 죽는다. 동준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은혜와 원학을 끌고 남자가 있는 반대쪽 문을 향해 뛰었다. 교실에 있는 책상이란 책상은 다 넘어트리며 쫒아오지 못하게 결국 교실을 빠져 나왔고, 미친듯이 달려서 그들이 들어간 곳은 2층 동문계단 옆의 교사용 휴게실. 이미 모든 문들은 셔터가 내려가 밖에서부터 잠긴 상황이었다. 원학은 큰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고 은혜는 소리내어 울었다. -흑, 흐흑, 동준아, 어떡해, 소연이 불쌍해서 어떡해, -서은혜, 울지마. 울지마. 소연이랑 승훈이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우리부터 빠져나갈 생각을 하자고. 울지마 제발. 동준도 충격을 받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자기가 이성을 잃으면 은혜까지 위험해 진다는 생각에 최대한 냉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최대한 청각에 모든 집중을 기울여 바깥 상황을 재어 보고 있을 때, 전화왔다~메세진데, 속았지? 원학의 핸드폰에서 빛이 났다. 멀티메일 전송중...전송 완료 놀랍게도 원학의 핸드폰 액정에 보여지는 것은 저 멀리 뛰어가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는 그 검은 남자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파일이름. 0810120159 / 본문. 동준아위허 /2008.10.12 02:11 소연선배 소연은 분명 잃어가는 의식 속에서 문자를 보냈다. 이상한 점이라면 원학의 핸드폰으로 보내면서 동준에게 경고를 주는 것이었지만, 자기가 번호를 찍어 준 것 때문에 제일 위의 통화목록에 있어서 급한 김에 그렇게 보냈을 거란 원학의 말로 이해가 됬다. -아차, 일단 112에 전화부터 하자. 지금 동아고등학교에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니 빨리 와달라는 내용의 신고를 하고, 경찰 측에서 빨리 출동하겠다는 대답을 받아 한시름 놓은 셋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보다 잠깐, 저 파일 이름은 분명 년도.월.일.시.분 순서일 텐데. 12분 전에 저기서 출발을 했으면 지금쯤 벌써.. 동준이 은혜를 꼭 안고 중얼거리고 있던 찰나 교사용 휴계실의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 그가 서 있었다. -찾았다. 소름끼치도록 짧은 한마디를 내뱉은 그 남자. 그리고 왼손에 들려있는 가늘고 긴 파이프. 그는 천천히 셋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사정거리에 닿기 한 걸음 전. 꽉 쥔 주먹에 들어가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떨고 있던 원학이 갑자기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씨발새끼가! 하지만 그건 남자의 오른손이 쥐고 있던 작은 나이프를 보지 못한 채 저질러버린 어리석은 짓이었다. 한 번. 옆구리를 찔린 원학은 잠시 주춤하다가 이내 이를 악물고 일어났지만. 두 번. 목덜미에 박혀버린 칼은 그를 무릎꿇게 했고, 수위가 왼팔을 휘두르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원학의 몸뚱이는 옆으로 넘어갔다. 그 모습에 은혜는 간신히 잡고 있던 정신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경찰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은혜와 함께 탈출해야 한다. 오로지 이 두생각으로 사로잡혀 있던 동준의 눈에 테이블 위의 재떨이가 보였다. 그는 검은 남자가 원학의 목에 박혀 있는 칼을 회수하기 위해 잠시 그 쪽으로 몸을 돌리는 틈을 타서 재떨이를 냅다 던졌다. -크악! 머리를 겨냥한 재떨이는 남자가 눈치채고 몸을 돌리는 바람에 명중시키진 못했지만 그의 오른쪽 정강이를 강타했다. 남자는 무척 고통스러워 했다. 이 정도면 상황정리 까진 아니지만 도망칠 여유가 생겼다고 판단한 동준은 실신한 은혜를 안고 휴게실을 빠 져 나왔다. 1층으로 내려가자 언제 왔는지 경찰들이 정문을 열고 동준을 부축했다. 출동한 두 대의 경찰차 중 한 대에 몸을 실은 동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2층 교사휴게실을 올려다 보았다. 그 창가엔, 검은 마스크를 쓴 수위가 동준을 직시하고 있었고, 몇 초 후 사라졌다. 이튿날, 병원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동준은 경찰서에서 부름을 받고는 아직도 자고 있는 은혜를 뒤로하고 택시를 잡았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숨 돌릴 틈도 없이 한 경찰이 검은색의 공책을 보여주며 동준에게 물었다. -이승훈군을 언제 마지막으로 목격하셨습니까? -승훈이라면.. 저희 교실에서.. 죽.. -그 사람은 수위로 판명됬습니다. 약 11시경 사망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승훈군이 행방불명입니다. 경찰이 승훈이의 집에서 찾았다며 보여준 공책의 한 페이지에는 분명히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역시 10년 을 기다리던 어쨌던 동준이새끼한텐 안되는건가. 도대체 그년은 왜 그런 병신같은 새끼가 좋다는 거지. 출처 웃대 - 새드카페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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